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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by 송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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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5.


제목만 보고서 예전 영화를 재개봉한 줄 알았다. 전도연과 최민식이 나왔던 영화. 요즘 재개봉이 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전혀 볼 계획이 없다가 네오 소라 감독이 사카모토 류이치의 친아들이라는 모두가 아는 사실을 알고나서 흥미가 돋았다. 보려고 결심한 계기가 부끄럽지만 좋은 영화를 만났는데 뭐가 대수야!


영화는 서두에 흐르는 자막처럼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현실과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첨단 기기를 두르지 않고 기껏해야 얼굴 인식 기술이나 하늘에 떠있는 구름 주위로 실시간 뉴스가 떠있는 정도의 기술이 보인다.


영화는 두 소년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유타와 코우. 두 소년은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붙어 지낸 절친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 소년은 조금씩 거리를 두게 된다. 촉발한 순간은 있지만 그보다 전부터 쌓인 것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두 소년은 출발점이 다르다. 코우는 재일한국인 4세으로, 불심 검문을 당할 때마다 특별영주등록증(명칭이 확실하지 않다)를 요구 받고 그것을 소지해야 할 의무가 없음에도 매번 경찰에게 끌려간다. 이렇게 코우는 은연중에 차별을 당하며 살아왔다. 이건 코우만 다른 게 아니다. 유타와 코우가 속한 음악 연구 동아리 다섯 명 중 세 명이 외국인이다. 코우, 밍, 톰. 각각 한국, 중국(또는 대만), 미국. 아이들은 사회는 물론 그들을 지켜주어야할 학교에서도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교사 뿐 아니라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런 기류가 흐른다. 일본식 예절을 모른다는 대사를 들었을 때는 머리가 띵했다. 같은 나이에 같은 세대더라도 아이들 사이에 은근한 차별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유타와 코우, 밍, 아라, 톰의 관계가 특별하고 애틋해 보였다.


단순히 일본 사회에 기조한 차별만을 다루었다면 교조적인 영화가 되었겠지만 네오 소라 감독은 영리하게도 어른으로 한 발 나아갈 아이들의 변화도 함께 다룬다. 코우는 새로운 친구—후미를 만나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다. ‘지금 영위하는 삶이 옳은가’, ‘이 사회가 옳은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하지만 매번 장난 치기 바쁘고 음악에 빠져사는 유타는 코우가 가진 고민—이제 우리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에 눈치를 채지 못할 뿐더러 전혀 흥미가 없어 보인다. 아마 여기서 코우는 유타와 자신이 다르다고 느낀 것 같다. 유타의 집은 자기보다 유복한데다 일본인이다. 차별을 받아본 적 없다고 생각한다.

유타와 코우가 크게 싸우지 않았는데도 둘 사이는 미묘하게 삐걱거린다. 코우는 일본인 아이—후미를 만나 그들을 억압하는 규율과 법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규칙이라고 해서 모두 지켜야 한다는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그 규칙이 옳게 만들어진 규칙인가 하는 것부터 다시 생각을 하는 것이다. 영화 속 일본은 대형 지진 같은 대규모 재난이 일어나면 총리가 마음대로 법을 고칠 수 있는 헌법을 개정 중이다. 이와 비슷하게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감시하고 그 행동에 따라 벌점을 매기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교칙을 지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교칙을 핑계로 아이들의 행동을 하나하나 규제한다. 옷을 빼입는 정도로 벌점을 부과하고 감시 카메라에 대고 손가락욕을 했다고 벌점을 부과한다. 감시 시스템이 완벽했다면 반발이 덜했겠지만 완벽하지도 않았다. 카메라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는 유타와 코우에게 야구부 주장이 꽁초를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항의하는데 그것을 보고 시스템이 벌점을 부여한다. 야구부 주장이 그것에 놀라 꽁초를 버리자 벌점을 받고 그게 아니라고 꽁초를 다시 주우니 벌점을 또 부여하는 웃긴 장면도 연출된다. 이처럼 완벽하지 않은 감시 시스템에 아이들은 하나씩 자유를 빼앗긴다. 결정타를 날린 것이 바로 자위대 대원 수업이다. 일본인이 아니면 자위대에 지원할 수 없으니 외국 혼혈 아이들을 교실에서 내보낸다. 평생을 일본에서 살아온 아이들은 이를 부당하다 여기고 교장실을 점거하고 감시 시스템 철거를 요구한다. 교장은 감시 시스템을 철거해도 너희들이 졸업한 다음인데 왜 이러냐고 회유하고 먹을 것으로 유혹하는 장면은 영화 속 사회와 실제 현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결국 아이들은 교장에게서 감시 시스템 철거를 재검토하는—제거하겠다는 확답도 아니다— 제안을 받아들인다. 다음날, 교장은 말을 바꿔 자신의 비싼 스포츠차를 직각으로 세운 범인이 자수하면 재검토를 검토하겠다고 한다. 범인은 유타와 코우. 유타는 직접 자신이 그것을 했다며 자수하고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퇴학 당한다.

음악 연구 동아리에 속한 다섯 친구는 졸업식을 마치고 각자 제 갈 길을 간다. 밍과 아라는 밍의 부모님을 만나러, 톰은 미국으로 유학을, 코우는 대학 장학금을 받는다. 유타는 집에서 쫓겨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사회 진출을 서두른다. 영원히 함께 하자던 아이들은 그 약속이 무색하게 뿔뿔이 흩어진다. 어른이 되는 건 만남과 이별 속에서 소중한 과거에게서 멀어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장센과 메타포가 마음에 들었다. 영화 내내 인물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건 ‘지진’이다. 영화 속 일본은 백 년마다 찾아오는 대규모 지진 때문에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총리가 특별 재난법을 만든 것도 이 때문. 그렇게 위험한 상황인데도 지진 경보가 제대로 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물들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난 때문에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다. 이런 불안한 이미지를 받는 게 코우이다. 지진이 멈추고 코우의 흔들리는 책상으로 장면이 넘어간다. 처음에는 지진이 일어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코우가 다리를 떠는 것이었다. 이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이 코우에게도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진동은 영화 곳곳에서 드러난다. 기억에 남는 건 코우가 대학 장학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 장면이다. 그때 코우 엄마네 가게에 모인 사람들이 축하해주는데, 한 남자가 일어나다가 전등에 머리를 부딪친다. 흔들리는 전등을 아저씨가 멈춰 세우고 그 밑에 코우와 코우 엄마가 있는데 마치 모자를 지켜주는 것처럼 보였다. 진동은 음악과도 연결이 될 수 있겠다. 유타와 코우는 디제잉을 하는데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은 우퍼가 쾅쾅 울리는 리듬감 있는 음악이다.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톰이 디트로이트로 떠나면서 테크노의 성지로 오라고 하는 걸 보면 그들이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테크노인 것 같다. 여기서 진동은 불안을 잊으려는 행동과 그들이 이루고 싶은 꿈과 이어진다.


미장센도 좋았다. 중간 중간 인물 없이 사물을 비추는 장면들을 끼워넣는데 그것이 고요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평화로워 보이는 세계 아래서 사람들이 품은 불안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처럼 보였다. 마음에 들었던 건 육교 장면이다. 유타와 코우는 집 가는 방향이 달라 항상 등을 지고 헤어져야 한다. 둘 사이에서 항상 먼저 떠나는 건 코우이며, 둘 사이를 길게 가로 지르는 노란색 시각 장애인 도움 블록을 넘는 건 항상 유타이다. 코우는 유타가 변하지 않는다고, 항상 어린애라고 말하지만 그런 순수함을 가질 수 있는, 어쩌면 순수한 척 하려고 노력하는 게 유타라고 보였다. 그렇기에 유타의 천진난만한 행동이 버거울 때도 있지만 톰이 말했듯 그렇기에 모두 유타를 좋아하는 거라는 의견에 공감했다. 변하는 게 나쁜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게 나쁜 것인가. 거기에 정답은 없다. 변해야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변하지 않는다고 어른이 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각자 다른 삶의 방식을 취할 뿐이다.


망해가는 세상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이냐는 질문도 흥미로웠다. 코우는 세상이 망해간다고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하고, 유타는 어차피 망할 세상에서 즐겁게 지내는 게 어떻냐고 생각한다. 나는 체념하는 쪽에 가깝다. 즐겁게 지내지도 못하고 맞서싸우지도 못한다. 참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큰 주제는 ‘규칙’과 ‘자유’, 그것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점점 세계화가 되어가는 요즘—이건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은연중에 퍼져있는 차별에 대한 질문도 빼놓지 않는다. 주인공을 어른이 되기 직전인 아이로 내세움으로써 그 질문들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이렇다할 액션은 없지만 묵직하게 가슴을 찌르는 것이 올해 본 영화 중에서 제일이다.


여담으로, 일본 영화계가 부러웠다. 영화는 문화 산업의 최정점으로 돈이 많이 드는 산업이지만 이렇게 예술적이고 훌륭한 영화를 내놓는다는 게, 그리고 그걸 찍은 젊은 감독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칸 영화제에 비경쟁, 경쟁 포함 한 작품도 내지 못했다는 게 개인적인 충격이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국제 영화제에 출품한 작품을 보면 신진 감독보다는 유명 감독이었다. 요즘 훌륭한 감독들이 OTT로 넘어가는 추세라서 아쉬운데 이런 영화까지 보니 더 아쉬워진다. 산업적으로 좋은 감독을 키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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