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6.19.
‘28주 후’의 후속작. 이라고 하면 안 되고 ‘28일 후’의 정식 후속작. 시리즈의 2편에 해당하는 ‘28주 후’는 ‘28일 후’를 이었지만 설정 오류가 너무 많은 탓에 이번 ‘28년 후’는 ‘28일 후’의 후속작이라고 봐달라는 각본가의 인터뷰를 보았다.
사실 ‘28일 후’를 너어어어무 오래 전에 보았기 때문에 기억이 잘 안 난다. 분노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들판을 미친듯이 질주하는 장면만 기억에 남아있다. 좀비는 느려 터져야 한다는 공식을 깬 작품이기 때문에 충격적이었다. ‘28주 후’는 ‘28일 후’에 비해서 자본을 들인 티가 나고 분위기 자체가 달라서 후속작임에도 전혀 다른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에일리언’과 ‘에일리언2’의 분위기 차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 후속작인 ‘28개월 후’가 금방 나올 줄 알았으나 어른들의 사정(아마도?)으로 무산되었다가 거진 20년 만에 ‘28년 후’로 돌아왔다. 원래라면 4편에 해당하는 제목이겠지만 현실과 비교해도 28개월보다는 28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났으니 ‘28년 후’가 더 적절할 것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때는 분노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한 어느 날. 지미가 사는 마을은 분노 바이러스 감염자의 습격으로 전멸한다. 지미는 성직자인 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지만 아버지는 심판의 날이 왔다며 기꺼이 감염자에게 몸을 내어준다. 지미는 아버지에게서 십자가 목걸이를 받고 잠옷 차림으로 마을에서 멀리 달아난다.
그리고 28년이 흐른다.
세계에서 완전히 격리된 영국, 섬마을 홀리 아일랜드에서 소년 스파이크는 성인식 비스무리한 의식을 치룬다. 원래는 14, 15살에 받아야 하지만 아버지 제이미의 주장으로(그렇게 보인다) 12살인 스파이크가 본토 체험 의식을 치룬다. 그것은 본토로 넘어가 감염자를 죽이는 것. 제이미와 함께 본토에 나선 스파이크는 처음이니만큼 고생을 한다. 슬로우 로우, 알파 등 관객들에게 감염자들을 부르는 방식을 알려주고 본토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 있는 것을 말과 상황으로 알려준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제이미와 스파이크 부자는 마을로 무사히 돌아오고 성대한 환영식을 가진다. 스파이크는 억지로 술을 마시는 등 요란한 밤을 보내고 그 사이 제이미는 로지라는 마을 유부녀와 거사를 치룬다. 그것을 본 스파이크는 분노하며 어머니 아일라를 데리고 마을을 떠나 의사를 찾는다. 아일라는 섬망을 겪고 헛소리를 내는 등 몸이 아프다.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운 스파이크지만 제이미의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참을 수 없다. 진짜 의사는 없다고 하지만 외할아버지 샘의 말을 믿고 본토로 아일라를 데려간다.
영화의 후반부는 스파이크와 아일라의 이야기이다. 영국이 세계적으로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 알려준다. 통신도 안 통하고 영국에 들어가면 절대 사람들이 나오지 못하게 한다. 배가 좌초되어 영국에 상륙한 스웨덴 군인 에리크의 도움으로 스파이크와 아일라는 목숨을 구한다. 기묘한 조합의 세 명은 한동안 같이 다닌다. 아일라는 임산부 감염자에게서 아이를 받는다. 그 과정에서 당황한 에리크는 아기를 죽이겠다고 소리를 지르고 알파 ‘삼손’에게 페이탈리티(..)를 당해 죽는다. 스파이크와 아일라는 또다시 죽을 뻔 하지만 여정의 목적인 진짜 의사 켈슨을 만난다. 켈슨은 제이미가 말한 것과 다르게 미치지 않았다. 감염자, 비감염자 등 사람들이 죽으면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는 두개골을 쌓아올린 것으로 예고편에서 나온 해골탑이다. 켈슨은 아일라가 암에 걸렸고 뇌에 전이된 것으로 보인다며 아일라를 안락사해준다. 스파이크는 ‘메멘토 모리’를 외우며 아일라의 두개골을 해골탑 가장 높은 곳에 안치한다. 알파 삼손의 습격으로 켈슨이 죽을 뻔하지만 스파이크의 신속한 행동으로 간신히 살아남는다.
스파이크는 감염자가 낳은 아기(감염되지 않았다)를 데리고 홀리 아일랜드로 돌아간다. 하지만 스파이크는 제이미에게 남긴 편지와 아기를 두고 마을을 떠난다. 그냥 걷고 싶다면서,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고 싶다면서. 28일이 지나 스파이크는 본토 생활에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습격하는 감염자를 능숙하게 처리하고 물고기도 사냥한다. 하지만 혼자서 처리하기엔 감염자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막다른 길에서 우왕좌왕하지만 의문의 패거리가 나타나 스파이크를 돕는다. 패거리를 이끄는 남자가 스파이크에게 악수를 청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지미. 스파이크는 지미의 손을 잡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1편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조금 아쉬웠다. 기억도 잘 안나는 주제에 무슨 기대를 했겠냐만은 오래된 시리즈의 부활에는 기대감이 뿜뿜하는 법이다. ‘탑건’이 그러했고 기대감을 200퍼센트 충족해주었다. ‘28년 후’는 그에 비해선 아쉬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28일 후’가 나온지 20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고, 1편에 대해 영감을 많이 받은 작품들이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나왔다. 영화, 드라마, 게임까지 합치면 정말 많다. 아마 ’28년 후’의 각본이 오래 전에 써있었다고 해도 세계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이야기를 만들기가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28년 후’는 오랜만에 만나는 관객들과 해당 세계관을 처음 만날 관객들에게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진도가 느리다. 진부하게도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들이 원류라고 해도 말이다.
켈슨 의사가 스파이크에게 알려주는 ‘메멘토 모리’는 이미 많은 작품에서 언급이 되어왔다. 디스토피아 중에서도 좀비를 다루는 세계에서는 특히 이러한 교훈을 다루는 게 많다. 죽음을 기억하라.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아일라의 죽음에서 사랑해야 함을 기억하라, 는 ‘메멘토 아이모리(Memento amare)’는 스파이크의 성장에 중요한 교훈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여정을 너무 쉽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게 아쉽다. 물론 작품이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찬찬히 깔아놓았고 오로지 충격을 주기 위해 엉뚱한 방향으로 튀는 것은 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아쉽다고 할까. 이미 다른 작품들에서 익히 보아온 이야기에서 인물만 바꿔 반복한 것처럼 느껴졌다. 병든 엄마, 육체적으로 강인하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아빠, 비정상이지만 비정상인지 모르는 어딘가 어긋난 소규모 사회, 그런 현실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아픈 엄마를 살리고 싶은 아이 등 인물만 봐도 어떤 이야기가 펼쳐지겠구나 예상할 수 있는 건 관객에게 안정감을 주면서도 아쉬움을 남긴다.
개인적으로는 혐오감이 드는 장면이 다수 있었다. 날것에 대한 표현이지만 그게 영 보기 좋지 않았다. 슬로우 로우가 지렁이를 스파게티마냥 빨아먹는 장면이나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기행종처럼 알몸으로 달려드는 감염자 무리, 정신 나간 지미 패거리의 패션 센스(..) 등은 내 취향은 아니었다. 배경이 영국이고 이런 날것의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게 영국 영화인 줄 알았는데 제작은 미국… 역시 자본은 미국 못 따라가나.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만약 ‘28년 후’를 보러간다면 이 작품이 3부작의 1부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나는 3부작의 1부라는 걸 알았지만 모르고 본 사람들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 화를 낼 것이다. 풀리지 않은 떡밥들도 잔뜩 있다. 알파 삼손이 감염자 아기를 찾아 헤매는 장면이나 감염자들도 어느 정도 정신이 있는 것처럼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또한 마지막에 등장한 지미 패거리도 그러하다. 지미는 역십자가로 목걸이를 걸고 있는데 이것이 지미의 돌아버린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본다. 어떻게 비뚤어졌는지 그것이 스파이크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 혹은 변질되게 할 것인가도 궁금하다. 자신의 잘못을 아는 제이미 또한 섬을 떠나 스파이크를 찾으러 갈 것인지, 감염자 아기 ‘아일라’가 비감염자로 자랄 것인지 감염자로 자랄 것인지 아니면 혼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지도 궁금하다. 이렇게 보니 1부는 진짜 세계관 소개만 했네? 2부는 볼지 말지 고민했는데 2부까진 봐야겠다. 이러고 3부까지 보겠네…
쿠키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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