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6.19.
최근 재개봉 열풍이 불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재개봉이 유행했지만 작년, 올해만큼 왕성했던 때가 있었나 싶다. 재개봉한 영화는 아주 아주 높은 확률로 명작, 못해도 수작이기 때문에 재개봉 소식이 나오면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재개봉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TV나 OTT로 몇 번이나 보았지만 스크린에서 보는 건 또 맛이 다르기에 개봉 날짜만 기다리던 차 왓챠피디아에서 시사회 응모가 열렸고 운 좋게 당첨되어 개봉보다 한 주 먼저 보게 되었다.
스토리는 많은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 영향을 주었을 만큼 유명하다(감독인 하야오 옹은 ‘나우시카’를 다른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바람계곡에 사는 나우시카 공주가 주위 나라의 전쟁에 휘말린 바람계곡 마을과 오무를 지키는 이야기, 정도로 간추릴 수 있겠다. 기본 뼈대는 이러하지만 결과까지 이어지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부해로 뒤덮인 숲에선 마스크 없이 숨을 쉴 수 없다. 바람계곡은 바람이 불어와서 부해의 영향이 적지만 주변 나라는 진작 부해에 의해 멸망해버렸다. 나우시카의 아버지인 왕은 부해에 당해 몸이 굳어가 사실상 바람계곡은 지도자가 없는 상태다. 거기에 전쟁을 일으켜 인간을 통합시키겠다 주장하는 토르메키야 왕국과 토르메키야 왕국에 멸망해 복수를 꿈꾸는 페지테가 끼어든다. 나우시카를 위주로 따라가고 그림체가 아기자기해서 동화스러운 세계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암울하다.
이런 세계 속에서 나우시카는 정말 올곧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완성형 인물, 초인처럼 느껴지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어찌되었든 마무리가 되었다고 본다. 만약 나우시카가 그 나이처럼 방황하고 징징대고 도망치는데 급급했다면 이야기가 산으로 가지 않았을까. 새삼 느끼는 거지만 나우시카가 인생 2회차처럼 행동하지 않고 그 나이 또래처럼 굴었다면 영화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귀여운 맛은 없지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소녀의 성장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에 와닿은 대사가 있다. ‘불은 숲을 파괴하는데 순식간이지만 물과 바람은 생명을 키우는데 백 년이 걸린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늬앙스다. 이전에 보았을 때도 오랫동안 곱씹은 대사였는데 스크린에서 보고 큰 스피커로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인간은 파괴하는데 능하지 무언가를 키우는데는 서툴다. 건물을 짓는 것처럼 뚝딱뚝딱 세우면 된다고 쉽게 생각하지만 건물 세우는 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하다. 그런 걸 알면서도 부수는 게 더 쉬우니 먼저 그 방법을 떠올린다. 페지테도 그렇다. 자신들이 토르메키야 왕국에게 당한 일이 있으니 복수에 눈이 머는 것도 이해하지만—그들이 복수를 해선 안 된다는 말도 안되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일을 겪었을 때 파괴하는 것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자신들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서 전혀 관계없는 바람계곡 사람들을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 방법이 또 얼마나 잔인한가. 어린 오무를 미끼 삼아 오무 떼로 사람과 마을을 휩쓸어버릴 계획을 세운다. 오무 떼에 휩쓸리면 어떻게 되는 줄 뻔히 알면서. 또 오무가 죽으면 그곳이 부해로 뒤덮이는 숲이 된다. 그러면 인간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가?
인간은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나온 84년도 아마 그러했을 것이고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지금은 더하다. 지구온난화가 대표적인 사례겠다. 지구 규모의 조별 과제는 이미 실패했고 우리는 그 대가를 치뤄야 한다.
그러면 페지테는 어떻게 했어야 하냐 물으면, 사실 잘 모르겠다. 죽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선물 받은 강아지를 잃은 존 윅에게 복수하지 마세요, 라고 어찌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그들의 행동을 옹호하고 싶지 않다. 복수의 연쇄는 한쪽이 포기하지 않으면 (대체로 복수할 명분이 있는 쪽) 끝나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무언가 깨닫고 잘못을 뉘우치고 먼저 움직이는 사람은 아이들과 여성들이다. 나우시카가 페지테 사람들에게 잡혔을 때 그를 돕는 건 사정을 들은 페지테의 여성들과 아스벨이다. 아스벨도 처음에는 복수심에 불타지만 나우시카를 만나면서 무엇이 옳은지 깨닫는다. 여성은 생명을 품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고, 아이들은 미래를 바꿀 수 있고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그것을 뉘우치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존재이다. 나우시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여기서 성별의 우열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바람계곡을 통치한 왕과 나우시카를 돕는 유파도 남성이다. 그들은 튼튼한 울타리처럼 사람들을 보듬고 지키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모두가 조화롭게 어우러졌을 때 기적만이 유일한 해결책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완벽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이 자연을 쉽게 파괴하는 행동을 지적했지만 이 모든 문제를 한 소녀에게 기대고 또 기적을 통해 해결된다는 점은 아쉽다. 동화스럽지 않다고 했는데 결말은 동화스럽게 끝난다. 되살아난 나우시카에게 바람계곡 마을 사람들이 얼싸 안으며 하하호호 웃는다. 사실 바람계곡이 오무에게 짓밟히지 않았다 뿐이지 해결된 게 없다. 거신병을 잃었다고 하나 토르메키야 왕국은 아직 건재하고 페지테 사람들의 복수심은 어떻게 될지 해결된 게 없다. 코믹스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준다는데 한 번 봐야겠다(오래전에 사놓고 아직 읽지 않았다. 지금 읽기 딱 좋다!)
반대로 생각하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같아 안타깝다. 정녕 인간은 일어날리 없는 기적과 신의 도움밖에 바랄 수 없을까.
84년에 나온 영화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지브리가 참 대단하다며 감탄했다. 4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다. 물론 현재 퀄리티 좋은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기술력 발전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현재 어설프게 나오는 애니메이션 영화보다 훨씬 퀄리티가 좋다. 괜히 지브리 지브리 하는 게 아니다. 하야오 옹 대단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후 나온 지브리 영화는 전부 극장에서 본 사람으로서 이번 재개봉이 반갑다. 극장이 어려워서 오래 전 명작들을 꺼내오는 빈도가 늘은 건 개인적으로 속상하지만 덕분에 때를 놓쳐 보지 못한 영화를 큰 스크린에서 보고 빵빵한 스피커로 들을 수 있어서 좋다. TV와 OTT로 봤을 때도 좋았는데 확실히 극장에서 보는 게 몰입감이 다르다. 특히 흥분한 곤충들을 진정시킬 때 쓰는 바람피리(?) 소리와 메베(나우시카가 타는 행글라이더 같은)가 기동하는 소리가 잘 들려서 좋았다.
얼마전 미국에서 ‘모모노케 히메’를 재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조만간 우리나라에서도 재개봉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받았던 비판점을 확장하고 변주한 이야기라서 좋고 내가 가장 처음 본 지브리 영화라서 더욱 기대한다. 만약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번 재개봉을 통해서 극장에서 보는 건 어떨까? 절대 후회하지 않으리라 감히 추천한다.
+ 시사회에 참여하는 기회를 준 #왓챠피디아 감사합니다!
#미야자키하야오 #바람계곡의나우시카 #나우시카_시사리뷰 #6월25일개봉 #영화 #영화감상 #기록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