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7.09.
내가 태어나서 본 ‘슈퍼맨’ 타이틀로 나온 영화와 드라마만 해도 대여섯 편은 될 것이다. ‘스몰빌’부터 시작해서 최근 헨리 카빌이 맡은 슈퍼맨까지 정말 많은 클라크 켄트를 봤다고 할 수 있다. 그간 슈퍼맨들은 감독보다는 배우에 집중했었다. 제작사 측에서도 그걸 더 어필했었던 것 같다. 잭 스나이더가 ‘맨 오브 스틸’을 만들 때는 조금 다르려나. 여하튼 이번 ‘슈퍼맨’은 새로 맡은 배우, 데이비드 코런스웻보다 DC 스튜디오를 이끌고 ‘슈퍼맨’의 감독인 제임스 건에게 관심이 더 갔다. 제임스 건은 MCU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맡은 감독으로 성공적으로 3부작을 마무리 지은 명감독이다. 그랬기 때문에 이번 ‘슈퍼맨’에 기대했다. 최근 미국이 저지르는 행동 때문에 미국을 상징하는 슈퍼맨의 흥행이 좋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현실은 현실이고 영화는 영화다. 이 부분에 대해서 영화가 짚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내용은 간단하다. 외계인 슈퍼맨을 싫어하는 렉스 루터가 갖은 혐오스러운 방법을 사용해서 슈퍼맨을 괴롭히고 공격한다. 슈퍼맨은 낭떠러지에 매달리지만 그것을 어찌저찌 극복하고 일어서는 내용을 담는다.
슈퍼맨은 이미 소비될 대로 소비된 IP이기 때문에 그의 기원을 다루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영화 속 지구가 메타 휴먼이 존재하고 그걸 모두 알고 있다고 나오며 클라크 켄트—슈퍼맨의 과거를 아주 짧게 자막 처리한다. 영리한 선택이다. 기원에 대해 오랜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면 지루했을텐데—이 작품으로 슈퍼맨을 접하는 관객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고 슈퍼맨이 쥐어터진 상태로 시작하는 건 신선했다. 그리고 바로 등장하는 슈퍼개 ‘크립토’. 원작 팬들에게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나는 처음 보는 캐릭터였다. 아주 천방지축인 강아지인데 힘이 더럽게 쎄서 슈퍼맨도 감당 못한다. 하지만 생긴 건 아주 귀여우니 많이들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저스티스 갱—그린 랜턴 가이, 호크걸, 미스터 테리픽 같은 익숙하고도 낯선 캐릭터들도 등장하고—호크걸이 나올 때마다 매 울음 소리 나오는 건 웃겼다— 빌런은 슈퍼맨의 아치 에너미인 렉스 루터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배우인 니콜라스 홀트가 렉스 루터 역할을 맡았는데 아주 좋았다. 선한 인상에서 오는 시기심, 질투심은 그를 찌질하게 만들면서도 공감 가도록 연기하니 매우 마음에 들었다. 키도 커서 슈퍼맨에 밀리지 않아서 좋았다. 머리를 밀었는데도 어쩜 이리 잘 생겼는지.
제임스 건이 호언장담한 만큼, 기대한 만큼 잘 만들었다. 그랬기 때문일까. 아쉬움도 컸다. 개인적으로는 인물을 대하는 방식이 아쉬웠다.
제임스 건 영화에 나온 캐릭터들은 항상 유쾌하다. ‘가오갤’에 나오는 인물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피터 퀼’만 보더라도 아버지는 셀레스티얼이지만 버림 받고 우주 현상금 사냥꾼들 손에 거칠게 길러지고 그를 키운 양아버지도 죽고, 친아버지는 제 손으로 죽이고, 어머니는 친아버지가 뇌에 암을 심어서 죽이고, 여자친구는 그의 아버지한테 죽는 등 개인이 가진 고난은 텍스트로만 접했을 때 폐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지만 그는 유쾌하다. 동료들과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를 때면 모지리 같지만 할 때는 하는 인물이다. 이건 다른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도 멋들어져 보이는 인물도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져있다. 진지하게 해야 할 때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유머스럽다는 게 흠은 아니다. 앞선 두 영화는 그 톤이 잘 어울린다. 하지만 ‘슈퍼맨’은 그렇지 않다. 내가 보아온 슈퍼맨의 역사 때문에 생긴 편견일지 몰라도 슈퍼맨은 어딘가 진중해야 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초월자 같은 분위기가 있는데 본 영화의 슈퍼맨은 그렇지 않다. 화도 쉽게 내고 쉽게 삐친다. 크립토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본 슈퍼맨이 무겁기만 했으니 이런 해석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선하기까지 하다. 문제는 유쾌하고 모자란 슈퍼맨이 아니다. 모든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 같다는 점이다. 로이스도 그렇고 미스터 테리픽도 그렇다. 가이도 그렇고 호크걸도 그렇다. 심지어 렉스 루터마저 그렇다. 인물들이 가벼워서 싫은 게 아니라 인물들을 다루는 방식이 ‘유쾌’ 하나라는 게 아쉽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슈퍼맨이 혼자서 모든 걸 해결하지 않았다는 건 좋았다. 직전에 나온 ‘저스티스 리그’는 그것의 캐치 프레이즈 ‘세상은 한 명이서 구할 수 없다’가 무색한 내용이었다. 슈퍼맨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내용이었지만 이번 ‘슈퍼맨’에서는 자신이 모든 걸 해결하려하지 않고 동료—저스티스 갱을 믿고 그들을 분쟁 지역에 대신 보내는 결정은 매우 좋았다. 꼭 혼자서 해결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보면 ‘유쾌한’ 슈퍼맨이 극에 잘 어울린다.
메시지도 좋았다. SNS나 언론에 휘둘리는 사람들. 심지어 슈퍼맨마저도 그렇다. 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나를 대표한다, 는 울부짖음은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현대 사회를 꼬집는다. 슈퍼맨 같은 초인도 그러한데 범인들은 오죽할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같은 방식으로 처리한 것도 좋았다. 칼엘이 아닌 클라크 켄트로서, 지구를 사랑하는 지구인으로서 매듭 짓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말미에 모습을 보인 슈퍼걸도 기대가 되었다. 잠깐이었지만 술에 취해 등장한 모습이 귀여웠는데 오히려 그런 모습이 제임스 건의 유쾌함을 이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제임스 건이 ‘슈퍼걸’의 감독은 아니나 수장인 만큼 그 분위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슈퍼맨이 가진 편견을 깨는데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막 보고 나왔을 때는 재밌지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감상을 정리하다보니 아쉬운 점보다 좋은 점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흥행이 잘 될까 하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폭풍처럼 휘몰아친 히어로 영화가 슬슬 지겨워지는 것이다. 악에게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슈퍼맨을 둘러싼 현실이 너무 현실과 비슷해서 그런 걸까? 뉴스 하나에 여론이 휙휙 바뀌는 모습은 또 아쉽네. 참… 이랬다가 저랬다가 나도 곤란하다.
새롭게 리부트한 만큼 재밌는 이야기를 그려주었으면 좋겠다. 재밌는 히어로 영화를 보는 건 즐거우니까.
+ 쿠키는 짧은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한 번,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가고 한 번. 총 두 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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