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7.24.
판타스틱 4. 정말 사연이 많은 시리즈다. 오래 전 미국에서 만든 드라마나 영화를 제외하고 내 기억에만 벌써 2번째 리부트다(미스터 판타스틱 배우만 치면 네 번째). 제시카 알바가 나온 ‘판타스틱 4’ 시리즈는 제법 재밌었다. 당시에 히어로 영화라고 해봐야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 ‘슈퍼맨’ 정도여서 기준치가 높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린 탓도 있을 거고. 여하튼 가끔 OCN에서 방영하면 지나가면서 볼 정도는 된다. 두 번째 ‘판타스틱 4’는 악명이 높아서 아직 보지 않았다. 내 시간과 정신 건강을 위해서. 여하튼 세 번째 ‘판타스틱 4’는 어떨까 걱정이 많이 앞섰다. 미국에서는 이 히어로들의 역사가 긴 만큼 팬층이 두텁기 때문에 어떻게해서든 살리려고 하는 거라고 들었다. 케빈 파이기도 엑스멘만큼이나 좋아한다고 했었고(오래 전에 읽은 인터뷰라 확실하진 않다). 잡설이 길었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지구-828에서 4년동안 사랑받은 판타스틱 4가 새로운 위협—갤럭투스에 맞서 싸우고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판타스틱 4은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리처드와 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플랭클린을 갤럭투스에게 넘기고 지구를 위협에서 벗어나게 할 것인가. 플랭클린을 주지 않고 승리할 가능성이 없는 갤럭투스와 싸울 것인가. 잔인한 선택지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건 히어로의 힘으로만 세상을 구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구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하나하나 모아 지구를 구하기 위해 애쓴 점이 좋았다. 무엇을 할지 모르겠다면 삽을 들어라, 라는 벤의 대사는 백지장도 맞들면 영웅에게 보탬이 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히어로 영화에서 일반 시민들은 영웅이 위기에서 우리를 지켜주길 바란다. 우리의 영웅이라면서 치켜세우지만 정작 목숨이 위험하면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우리의 영웅, 우리의 가족이라면서 그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한다. 판타스틱 4에게 닥친 일이 내게 일어난다면 어떨까? 갓 태어난, 그것도 포기했었던 아이가 기적적으로 찾아왔다면. 과연 순순히 내놓을 수 있을까? 넓게 보면 작디 작은 생명 하나지만 내 가족이라면 관점이 달라진다. 내 아이를 희생해서 모두를 살릴 수 있다면 그 아이를 희생하는 게 옳을까? 우리는 적이 내놓은 A와 B 중 하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떠올리고 고를 줄 알아야 한다. 정해진 문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그것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노력한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만 그것이 현실과 거리가 있는 동화같은 상황처럼 느껴졌지만(내가 지나치게 아니꼽게 보는 걸지도?) 지구-828은 착한 사람들만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메세지를 제외하고 영화 내적인 면에만 집중하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인물들이 아쉬웠다. 리처드는 천재라서 그런건지 사회성이 떨어져서 그런건지—그러기엔 퓨쳐 파운데이션 회장?이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부담이 많아서 그런지 최악에 대비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나쁜 점만 읊는 게 호감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히어로 능력(고무고무~)가 화려한 액션을 보이기엔 한계가 있다. 수도 그렇다. 임신을 했고 아이를 위해서라지만 시종일관 날이 서있다. 특히 리처드가 하는 말마다 족족 신경질을 낸다. 리처드가 항상 최악을 떠올리기 때문도 있지만 쥐잡듯이 잡는 게 이해가 되면서도 묘하게 현실적이라 거리를 두고 싶어졌다. 조니는 이전 휴먼 토치에 비하면 덜 까불지만 조니 스톰 자체가 까불이라서 그 캐릭터성을 완전히 버릴 순 없다. 밝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지만 배우가 애쓰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벤이 나았는데 더 씽은 캐릭 자체가 귀엽지 않아서.. 이렇게만 말하고 나니 트집 잡으려고 트집을 잡는 느낌이네.. 정리하자면 인물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다.
때깔은 좋다. 70, 80년대 어쩌면 더 전 시대의 영화 느낌이 나서 고전 영화를 보는듯했다. 디자인도 클래식하면서도 미래적인 방향으로 뽑아서 참 이쁘다. 다만 ‘4’와 ‘파랑’ 사랑은 못 말려서 온갖 물건에 저 두 가지를 다 집어 넣는 건 웃겼는데 신발 밑창에도 ’4’를 집어넣은 집착은 조금 무서웠다. 나중에 이것이 힌트가 되는 상황이 올까?
재미 면에서 아쉬웠던 건 갤럭투스와의 싸움이 그를 때려 눕히는 게 아니라 그에게서 도망 가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애초에 리처드가 갤럭투스에서 도망치는 걸 전제로 작전을 세운다. 갤럭투스가 판타스틱 4의 숙적인 건지 아니면 갤럭투스를 선보여서 팬들의 이목을 사로 잡으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갤럭투스를 이번 작품의 메인 빌런으로 내세운 건 다소 아쉬운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으니까 기대를 할 수 없다고 할까. 시작점이 문제일까? 기원을 다루자니 이미 너무 많이 다뤄져 왔고 그렇다고 비교적 시시한 적을 상대하자니—영화에서는 ‘몰맨’을 비롯해 사이즈가 작은 적들이 몇몇 등장한다— 다음 연계되는 작품이 ‘어벤저스’이니 어느 정도 이들의 능력과 활약을 보여줘야 한다. MCU 사이즈가 너무 커져 버린 탓에 생기는 딜레마다. 물론 ‘판타스틱 4 : 새로운 출발’은 케빈 파이기의 말대로 어떤 영화나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이전까지 MCU를 접하지 않았어도 이 영화를 즐기기에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다만 도파민 터지는,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의 맛을 느끼기에는 아쉽다. 기준이 너무 높아져 버린 탓일까… ‘썬더볼츠’도 이기기 어려운 적을 상대하지만 그 나름대로 서사가 쌓여 보는 맛이 있었고 캐릭터들간의 케미만으로 재밌었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공감이 되었고. 하지만 ‘판타스틱 4’는 뭔가 아쉬웠다. 선택의 강요와 그 선택에서 벗어난 결정, 그것은 모두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히어로 영화에서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많은 영화에서 다뤄졌기 때문에 아쉬웠다. 메시지 측면에서도 영상 측면에서도 도파민 측면에서도. 또 MCU에 기대한 내 잘못일까?
이래도 다음 MCU 영화가 나오면 또 볼 것이다. 기꺼이 봐야지. ‘아이언맨’을 극장에서 봤을 때부터 이미 나는 저주에 걸리고 말았다. 이것의 흥망성쇠를 지켜볼 의무가 있다. ‘어벤저스 : 시크릿 워즈’까지 끝나고 등장할 엑스멘 사가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 전에 MCU가 망하는 건 아닐까…
+ 쿠키는 두 개. 짧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하나. 모든 크레디트가 올라가고 하나. 앞선 쿠키는 다음 작품과 아주 조금 연결이 되어 있고 뒤에 나온 쿠키는 서비스 차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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