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8.01.
최근에 확실히 예전 영화들의 재개봉이 잦다. ‘이사’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에서 개봉한 적이 없다고 한다. 23년에 4K 리마스터링 작업을 하면서 주목을 다시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보다는 조금 늦게 개봉했다. 1993년에 일본 현지 개봉한 ‘이사’는 소마이 신지 감독 후기작 중 걸작이라고 한다(포스터에 그렇게 써있다). 이전에 보았던 ‘태풍 클럽’도 그러하고 예전 일본 영화가 개봉하면 보게 된다. ‘이사’도 처음에는 별로 볼 생각이 없었는데 도발적인 포스터에 이끌려 보고 싶었다(첨부하지 않은 강렬한 빨간색 배경에 머리가 헝클어진 렌의 얼굴을 양쪽에서 잡아 당기는 포스터).
영화가 시작하면서 당황한 것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교토 사투리를 사용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부모의 별거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교토 사투리를 사용한 것에 놀란 건 당연히 표준어가 나올 줄 알았던 내 편협한 사고 방식 때문이고, 별거 장면에서 놀란 건 이 영화가 절대 밝은 영화가 아니겠구나 싶은 것이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별거를 시작한 부모를 다시 화해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렌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한 단계 성장했다는 말은 맞지 않겠다. 성장했다기 보다는 달라졌다고 말하는 게 더 옳겠다.
초반부 렌은 부모가 다시 합칠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부모의 별거를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장난같이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렌의 아빠가 진중하지 못한 성격인 것도 한몫했다. 렌의 엄마가 왜 지쳤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렌의 아빠는 딸과 잘 놀아주지만 남편으로서는 꽝이다. 자기 짐을 빼는 이사날조차 후배에게 짐을 나르고 정리하는 것까지 미루는 행동은 자신의 일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아내에 대한 미련이 남은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았다. 힙 플라스크를 항상 소지하면서 홀짝홀짝 마시는 모습은 한량처럼 보이기 충분했다. 그렇지만 딸에게는 상냥한 아빠라서 재밌게 놀아준다. 그에 반해 엄마는 잔소리가 심하고 통제가 심하다. 그러니 딸인 렌도 엄마가 함께 복싱 (놀이)를 하자고 하니 엄마는 그런 거 싫어하지 않냐고 말한다. 엄마는 요새 살이 쪘다며 자신도 할 거라고 하니까 렌은 ‘엄마는 맨날 피곤하다고 하잖아’라고 한다. 이런 걸 보아 엄마는 워커 홀릭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량인 남편을 대신해 가장 노릇까지 도맡았다고 할 수 있겠다.
렌은 어떻게해서든 엄마, 아빠 사이를 이으려고 하지만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이 틀어졌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극후반부에 아빠가 다시 셋이서 시작하자고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다. 렌은 엄마, 아빠 몰래 비와호수 근처 호텔과 기차표를 예약해서 엄마, 아빠를 모으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렌은 무작정 뛰쳐나와 여기저기 떠도는데 여기서 많은 걸 깨닫게 된다. 길에 물을 뿌리는 할아버지한테 말을 걸었다가 물벼락을 맞는 사고를 당하는데 그 할아버지 댁에서 푸딩을 얻어먹는 넉살 좋은 짓을 한다. 렌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딸과 추억—기억에 대한 짧은 대화를 나눈다. 너무 많은 걸 기억하고 있으면 행복하지 못할 수 없다고. 잊어버릴 수 있는 건 잊어버려야 한다고. 렌은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좋은 기억을 어떻게 놓을 수 있냐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극후반부 몽환적인 이미지로 그 의미에 대해서 렌은 절절이 깨닫는다.
렌은 어둔 밤, 숲에서 헤매다가 비와호수에 들어간다. 그곳에서는 마츠리 가마를 들고 나오는 행렬과 마주하는데 거기에는 엄마, 아빠가 있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엄마, 아빠. 거기엔 자기 자신도 있다. 그들을 보며 렌은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마츠리 가마는 불에 전소해 버리고 엄마, 아빠는 다시 호수 깊은 곳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그들이 물을 서로에게 뿌리고 장난치던 모습은 이전에 비와호수에서 있었던 행복한 추억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거이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다. 미래는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다. 반복할 수 없다. 그렇게 사라진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신에게 렌은 하늘 높이 팔을 들고 공중에 휘젓는다. 그리고 소리 친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계속 소리 지른다. 애기 목소리라서 높기는 엄청 높아서 신경에 거슬린다.(내가 싫어하는 음역대라서 더 그럴지도?) 렌은 현실의 엄마와 만난다. 엄마는 뭘 축하하느냐고 묻고, 행복했던 가족을 보낸 렌은 뭍으로 올라와 잔불이 남은 장작에 갈대를 꺾어 넣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렌은 엄마에게 숨겼던 이혼 서류를 건넨다. 마음의 정리가 끝난 것이다.
렌과 부모, 세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함께 밥을 먹자는 약속을 하지만 그것도 제대로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렌은 한 달에 한 번이어도 괜찮다고 말하지만 엄마, 아빠의 분위기는 나쁘다. 렌은 그런 모습을 보고 화를 내지 않는다. 신경질적으로 오코노미야키(또는 몬쟈야키) 반죽을 열심히 휘저을 뿐이다.
엔딩롤이 올라갈 때, 렌의 미래가 이미지처럼 지나간다. 아빠의 후배 커플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두 사람도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을 한다. 이걸 렌이 보았고 나중에는 왜 자신을 낳았냐며 엄마, 아빠에게 대든다. 그것 때문에 엄마는 손을 다친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잘 산다. 이런 저런 이미지가 지나가고 머리를 기른 렌이 중학교 교복을 입고 다가오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태풍 클럽’처럼 이 영화도 중간부터 이미지 위주로 흘러가서 조금은 지루하고 파편적으로 느껴진다. 렌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보여진다. 비와호수에 놀러갔을 때가 확실히 그러한데 교토의 기온 마츠리와 오봉 다이몬지가 겹쳐지면서 렌의 복잡한 마음을 더욱 잘 표현했다. 기온 마츠리와 오봉 다이몬지는 일본에서도 손 꼽히는 마츠리면서 대표적인 명절 의식이다. 불꽃놀이도 많이 하고 사람들도 많이 몰린다. 명절이라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데 렌은 그렇지 못하다. 엄마, 아빠는 이혼을 결정했고, 렌은 아빠와 더는 만나지 못한다. 거기에 이혼한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한다. 영화 내에서 도쿄에서 전학 온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부모의 이혼이다. 렌도 자기가 경험하기 전까지는 다른 아이들처럼 그 아이를 욕한 것으로 보인다. 자기가 겪지 않으면 안 보이는 세상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거워 할수록 렌의 마음은 바닥으로 치닫는다. 그 격차가 렌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세상과 나의 주파수가 항상 맞는 건 아니구나, 몸소 깨닫게 된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을 정리해보자.
하나는 아빠와 렌이 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장면이다. 아빠와 렌은 계단벽 때문에 서로를 볼 수 없다. 얼굴을 마주하려면 동시에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데 아빠가 렌을 볼 때는 렌이 그림자에 숨어 있고, 렌이 아빠를 볼 때는 아빠는 계단에 주저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다(앵글 밖으로 사라진다). 달빛(조명)을 영리하게 사용하는데 아빠가 렌을 볼 때는 아빠의 얼굴에 빛이 닿고, 렌이 아빠를 볼 때는 렌의 얼굴에 빛이 닿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싶지만 얼굴을 보지 못한다. 그리고 아빠가 찾았던 기린 인형—수납장 깊은 곳에 있어 먼지가 뽀얗다—을 주었을 때, 아빠는 인형을 받지 못한다. 이것이 미래를 암시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기회가 있었을 때 받지 못하는 아빠. 간직하고 있지만 너무 깊은 곳에 넣어서 무시했던 걸 찾지만 그건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 더럽다.
다른 하나는 ‘불’의 이미지다. 불을 떠올렸을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 악한 것을 불태워 정화하는 존재? 축제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불꽃놀이?
영화에는 불과 관련한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가장 처음 불이 나오는 건 아빠의 이사날이다. 이사를 마친 아빠는 가족 사진을 불태운다. 렌은 왜 태우냐고 불속에서 꺼내지만 이미 사진은 우그러져 망가진다. 렌은 과학 실험 시간에 왜 괴롭힘 당하는 애를 커버하냐고 추궁하는 아이들에게 불을 붙인 알콜램프로 위협한다. 그리고 책상에 떨어뜨려 화재 사고를 일으킨다. 이처럼 불은 모두에게 위험하다.
하지만 불은 기념하는데 쓰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이몬지는 다이몬지야마에 큰 대 자 모양으로 불을 피우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서로의 안녕을 기원한다. 마츠리 하면 불꽃놀이를 빼먹을 수 없다. 사람들은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놀이를 보면서 즐거워 한다. 또한 불은 악한 것을 불태우고 정화한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지만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의 쥐불놀이처럼 불타는 짚을 빙글빙글 돌리는 놀이가 있는데 우리나라 쥐불놀이와 비슷한 목적이지 않은가 싶다.
이것은 또 렌의 환상과도 이어진다. 렌이 환상 속에서 본 마츠리 가마가 불에 타는데 이것은 소멸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양손 가득 쥐어도 넘쳐 흐르는 소중한 추억을 불의 이미지를 빌려 하나씩 놔주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물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호수에 빠져 흠뻑 젖은 렌이 뭍으로 나오면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종교적으로 물을 얼굴에 끼얹거나 몸을 담구었다 빼는 세례를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공표한다. 렌의 경우에는 새로운 사람—소중한 것은 모두 손에 쥐어야 하는, 절대 놓칠 수 없어 불가능한 일에 떼를 쓰는 어린 아이에서 좋아하더라도 놓아줄 수 있는 건 놓아줄 줄 아는 어른으로 변했다는 걸로 보였다.
나는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된 것을 성장이라고 보지 않는다. 긍정적인 깨달음이라면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처럼 안타까운 경험은 성장보다는 변화라고 말하고 싶다. 깎여 나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언제까지고 어린 아이인 채로 있을 수 없지만 이런 식의 변화는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해도 마음이 아프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디로 가냐고 묻는 질문에 렌은 소리 높여 대답한다. ‘미래’로! 라고.
‘미래’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 어린 아이의 미래에는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사’에서는 마냥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렌에게 나쁜 일이 있을 거라는 저주가 아니라 어른이 되면서 현실을 깨닫는, 어린 아이로는 살 수 없는 렌의 변화가 씁쓸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포커스가 흔들린 렌은 웃고 있는 걸까? 아니면 현실 나아가 미래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예전 일본 영화, 특히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주목을 받은 영화들은 하나같이 씁쓸하단 말이지. ‘태풍 클럽’도 그러했고, ‘이사’도 그렇고. 고작 두 편 가지고 성급한 일반화를 할 수 없겠지만 아이들의 성장을 마냥 아름다운 걸로 포장할 수는 없다.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이미 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
+ 찾아보니, ‘태풍 클럽’ 감독이 소마이 신지네?! 왠지 톤이 비슷하다 했더니만.
+ 공식 포스터는 아니지만 영화 내내 렌의 달리는 모습이 인상 깊어 저 포스터를 골랐다. 이제 보니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보여 안쓰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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