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9.24.
한때 ‘원나블’에 이어 ‘귀주톱’의 시대가 온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다. ‘귀주톱’에서 ‘톱’을 맡은 ‘체인소맨’은 많은 각광을 받으며 애니화가 되었지만 썩 좋은 평은 받지 못했다.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연출이 아쉬웠다.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만이 가지는 강점—비현실적인 움직임과 구도, 속도감 등—이 있는데 TVA 감독이 실사 영화에 어울리는 연출을 고집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레제 편’이 극장판으로 나온다고 했을 때 같은 감독이 맡으면 큰일 나는 게 아니냐고 했었는데 다행히(?) 감독이 바뀌었다.
TVA가 아쉽다는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레제 편’의 연출, 특히 혹평을 받았던 액션 연출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레제는 폭탄의 악마의 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폭탄 능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데 폭발 연출을 내 상상 이상으로 보여주었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번쩍이고 대결 상대와 구도를 바꾸면서 화려하게 폭탄의 악마 능력을 마음껏 뽐낸다. 폭발할 때 발하는 섬광이나 불이 붙은 도화선, 절단된 신체에 각종 미사일과 폭탄이 자라나는 표현은 직접 보는 걸 추천한다. TVA가 아쉽다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제작사인 MAPPA 측에서도 공을 들인 티가 난다. 맨몸 액션도 좋고 ‘체인소맨’ 특유의 오프닝도 요네즈 켄시의 ‘IRIS OUT’과 찰떡이라 체인소맨 세계에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KICK BACK’은 지금도 종종 듣는다.
레제와의 짧은 학교 데이트와 불꽃놀이 축제 등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는 연출도 마음에 들었다.
연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체인소맨’을 대충 요약하자면 덴지—체인소맨의 심장을 가지기 위해 악마들이 공격하는 이야기로, ‘레제 편’은 그 악마들 중 하나인 폭탄의 악마 ‘레제’가 덴지를 집중 공략하고, 그 전말이 밝혀지면서 전투가 벌어지고 소동이 마무리되는 일련의 과정을 담고 있다. 덴지는 언제나처럼 애인을 사귀고 섹스하는 것밖에 머리에 없기 때문에 아주 작은 호의에 홀랑 넘어가버린다. 그런데 레제가 하는 행동을 보면 안 넘어갈 사람이 있나 싶다. 특히 움직이는 레제는 만화보다 더 요망해졌다. 덴지는 마키마를 사랑(?)하지만 레제에게 홀딱 빠진다. 레제와의 전투가 끝나고 나서는 도망칠 생각까지 할 정도로.
등장인물들은 이야기 내내 심장과 마음을 말한다.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내 멋대로 끄적인 해석이므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고 이해해주면 감사하겠다.
내게 심장과 마음은 하나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가져가는 사람이 덴지의, 체인소맨의 심장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생각해보면 심장을 가져가는 건 어렵지 않다. 체인소맨을 흠씬 두들겨 패서—두들겨 패서 쓰러뜨릴 수 있을 때 가능하지만— 심장을 가져갈 수 있다. 영화에서도 레제가 거의 성공했었고 빔—상어의 마인이 아니었다면 성공했을 것이다. 이처럼 심장은 물리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마키마도 그렇고 레제도 그렇고 덴지에게 연인인 척 마음을 설레게 하며 공략한다. 심장이 아니라 마음을 탐내는 것처럼.
마키마는 마음을 조종하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그 방법밖에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에 반해 레제는 귀찮게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처음 덴지를 비오는 날 공중전화 박스에서 습격했다면 쉽게 심장을 가져갔을 것이다. 하지만 레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레제 역시 마키마와 천사의 악마에게 죽어가면서 왜 그러지 않았을까 복기한다. 이건 레제가 방법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처음 덴지를 만났을 때 죽었던 개가 떠올랐다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그 대사를 들었을 땐 덴지를 꼬시기 위해 엉뚱미가 있는 여자처럼 보이려는 고단수의 술수인 줄 알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저 대사가 진실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었던 개가 떠올라서 덴지를 죽이고 심장을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레제는 본능적으로 덴지의 심장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공략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게 아닐까? 마음을 가져오면 자연스레 그—의 몸이, 몸 안에서 쿵쾅대는 심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멀리 떨어져도 알아서 찾아올 테니까.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우화 ‘시골쥐와 도시쥐’에서 말하는 교훈이 전부로 보인다.
안전하고 재미없는 시골에서 살 것인가? 위험하지만 자극이 넘치는 도시에서 살 것인가?
비단 체인소맨 세계관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만 봐도 그렇다.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면 서울보다 싼 가격으로 집을 살 수 있다(집값이 절대적으로 싸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도 적고 시끄럽지 않는 곳에서 한가로이 살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울로 밀고 들어온다. 살기 죽겠다면서 부득부득 서울에 거처를 마련하고 지옥같은 출퇴근을 견딘다. 고물가를 버티고 고성방가에 귀를 막는다. 그러는 이유가 무엇일까? 서울에는 맛있는 음식도 많고 재밌는 이벤트도 많이 한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방한하고 외국 유명 가수들이 콘서트를 연다. 뭐만 하면 죄다 서울에서 한다. 하지만 그만큼 범죄도 많이 일어나고 기상천외한 일도 많이 일어난다. 툭하면 콘서트장을 폭파시킨다고 으름장을 놓고 시위를 한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고독사하는 사람들도 많다. 젊은 청년들은 꿈을 잃고 노인들은 죽을 날만 기다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서울을 떠나지 않는다. 왜일까?
레제는 왜 살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덴지가 기다리는 카페로 향했을까? 도망가지 않으면 죽을 위험이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위험을 감수하고도 쟁취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위험과 덴지와의 재미난 생활을 저울질했을 때 비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레제는 죽고 말았고 덴지는 또다시 실연했다.
레제가 멍청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덴지의 대사처럼 맛있는 거 먹을 수 있고 편히 누워 잘 수 있고 조금씩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심리적으로 나아지는 생활을 기대했던 것이다. 덴지와 함께라면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은 것이다. 물론 작가가 원하는 게 레제의 행복이 아니니 가만두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그리 생각하니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흐르는 요네즈 켄시와 우타다 히카루가 부른 ‘JANE DOE’가 구슬프게 들렸다.
혹자는 ‘체인소맨’에 진지한 감상을 남기는 걸 보고 너무 심각하게 해석하는 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화려한 액션으로 눈이 즐거웠으면서 마음 속에 남는 건 레제의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였다. 미래의 악마와 계약하지 않은 우리는—계약했더라고 볼 수 있는 건 몇 초 후지만— 일어날 일을 절대 알 수 없다. 우리의 선택과 그에 대한 결과만이 남을 뿐이다.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더라도, 그래서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살 수도 있다. 폭력의 마인에게 도움을 받은 아키처럼.
후속 이야기는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다. ‘귀멸의 칼날’처럼 청사진이 공개된 것도 아니라서 ‘레제 편’처럼 극장판이 또 나올지 아니면 TVA로 돌아갈지 모르겠다. 만화책은 2부도 나오고 있는데 1부만큼의 파급력과 스토리가 아니라서 어떻게 될지.. ‘레제 편’이 잘 팔리면 1부 끝까지는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겠다. 미래따위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내게 나쁜 미래라면 미리 봐서 좋을 게 없다.
원작 ‘체인소맨’을 좋아하고 움직이는 레제를 보고 싶다면 극장 관람은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선택은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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