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09.25.
아 기다리고 고 기다리던 박찬욱 감독의 신작. 박찬욱 감독 작품을 거진 다 보았고 극장에서 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부터는 개봉날에 맞춰서 보았다. 이번 작품을 개봉날에 보지 않은 건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을 받기 위함이었는데 인쇄 문제(염혜란 배우를 엄혜란 배우로 인쇄했다고..)로 한 주 밀리는 바람에 그냥 하루 늦게 보았다. 오리지널 티켓 아쉽긴 하지만 다음주는 PTA 감독 신작이 나오니까!
‘어쩔수가 없다’를 위해서 원작 ‘액스’도 읽었으니 꽤나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할 수 있겠다. 평소였다면 원작은 영화를 보고 나서 읽는 편인데 제작 들어간다고 했을 때 읽었으니 벌써 2,3년 전이다. 박찬욱 감독이 이 작품을 만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으니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우리나라 리메이크니까 상당 부분 바뀌었을 거라고 믿었고 예상대로 디테일한 부분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줄거리는 시놉시스 그대로다. 제지 공장에서 해고 당한 유만수(이병헌 분)가 재취업을 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다.
원작과 다른 점을 생각나는 대로 짚자면 원작은 여섯 명인데 영화는 세 명으로 딱 절반이 되었다. 원작과 달리 아내 이미리(손예진 분)는 불륜을 저지르지 않는다. 그런 의심이 가도록 설계하는데 아내가 바람을 폈다면 만수는 더욱 처절하게 무너졌을 것이고, 만수가 일을 해나가는 원동력인 가족의 힘이 약해졌을 것이다. 아내의 불륜 속성(?)은 사라지지 않고 구범모(이성민 분)의 아내 이아라(염!혜란 분)에게 옮겨 갔다. 이외에도 딸이 생겼다거나 만수에게 식물을 기르는 취미가 있다거나 하는 디테일이 추가되었다. 내가 미처 짚지 못한 부분도 상당히 많다.
원작에 대한 감상문에는 범죄 소설보다는 사회 고발 소설이라고 적었다. 영화 역시 그와 비슷하다. 원작은 당시 국가 시스템을 까는 거였다면 영화는 그것에 더해서 현대 문제, AI와 로봇 문제도 다룬다. 전자동 시스템은 인력이 필요없고 그것을 관리하는 1명만, 어쩌면 그마저도 필요 없다. 소중한 한 자리를 얻기 위해 사람들은 혈전을 벌인다. 말 그대로 피를 튀긴다.
영화는 급격하게 빨리 변하는 사회에서 인간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묻는다. 취업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만수의 살인—행위에 초점이 가지만 그것의 밑바탕을 생각해야 한다. 구범모가 아내에게 ‘25년 동안 종이밥을 먹고 살았는데 어떻게 바꿀 수 있냐고. 나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울분을 토하는 장면에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결말에 유만수가 면접에서 ‘바꿔야죠. 시대에 맞춰 가야죠.’라고 순응하는 모습은 먹고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만수의 성장이다. 어쩔 수 없는 변화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만수는 영화 초반에 있었던 면접에서는 자신의 단점을 ‘싫은데요! 라고 말할 수 없는 점’이라고 뻗대다가 떨어진다. ‘올해의 펄프맨’을 받은 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겠지만 아직 덜 배고프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 번의 선택으로 만수는 살인을 저지르는 일까지 저지르게 되니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내가 만수였다면 비슷하게 행동했을 것 같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는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고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어디서든 불러줄 거라고 기다려야 할까. 애석하게도 수십 년의 경력을 인공지능과 로봇은 단번에 따라잡는다. 공평하게 부의 분배가 이뤄진다면 노동의 부담이 주는 건 환영이다. 다만 그런 세계가 오려면 적어도 십수 년, 제도 정착과 사람들의 인식 변화까지 포함한다면 수십 년은 요할 것이다. 어쩔 수가 없는 시대의 변화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변화에 올라타야 한다.
서글픈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쌓아올린 경력이 단번에 종잇조각이 되는 현실은. 그 영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말할 것이다. 어쩔수가 없다고.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도 제법 있었다. 박찬욱 감독 영화 중에 가장 좋아하고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던 영화가 ‘헤어질 결심’이다. ‘헤어질 결심’은 극장에서 보면서 미쳤다,고 장면마다 닭살이 돋았었다. 그렇게 기대치가 올라갈 대로 올라간 상태에서 ‘어쩔수가 없다’를 보니 영화 흐름도 아쉽고 편집도 아쉬웠다. 뭔가 모르게 뚝뚝 끊기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박찬욱 감독답게 미장셴도 좋고 연출도 좋다.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나 교차 편집을 통해 극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또 관객에게 의심의 씨앗을 심는 것도 좋았다. 그럼에도 뭔가 장면 장면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 가끔씩 들었다.
실내 공간이 꽤 많이 바뀌는데 비슷하게 느껴지는 점도 조금 아쉬웠다. 펄프맨들의 취향이 비슷하다는 걸 표현한 것이었다면 성공이지만 구범모의 집과 최선출의 별장 내부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분명 다른 공간이고 물리상으로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 공간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시조(차승원 분)을 살해하는 과정도 아쉬웠다. 원작에서는(원작과 꼭 같아야 하는 건 아니다) 사전 작업—동선을 미리 파악하는 장면이 있어 만수가 고시조(원작에 해당하는 인물)를 도로에서 만나고 그를 살해하는 과정을 납득할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설명이 부족했다. 만약 다른 길로 퇴근을 한다면 어떻게 고시조를 맞딱뜨릴 길이 없다. 혹시 내가 못 보고 놓친 부분이 있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만수와 미리의 아이들의 행동이 엄청 거슬렸다. 오냐오냐 자랐다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겠지만 또 나중에 가서는 부모님 말을 고분고분 듣는 걸 보면 위화감이 느껴졌다. 만수가 더 힘을 내야 하는 기폭제인 리원도 그러했다. 영화 중반까지 리원이가 아픈 게 나오지 않는데 그것을 알기까지는 애가 왜 저럴까, 이런 생각 때문에 엄청 거슬렸다. 그런데 아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니 시원이는 미리가 데려온 아이이고, 리원이는 아픈 아이니 어쩔수가 없이 오냐오냐 키울 수밖에 없었구나 싶다. 아이들 하니 시원의 친구인 동호에 대해선 얘기해야겠다. 너무 자연스럽게 집에 있고 같이 놀아서 맨처음에는 시원이가 쌍둥이인 줄 알았다. 너무 빠르게 지나가서 얼굴 구분도 잘 되지 않는다. 변명이 아니다!
아쉬운 점도 말했지만 영화는 재밌었다. 지루할 틈도 없다. 배우들 연기야 말할 게 없다. 진짜 최고. 특히 이성민 배우가 울분을 토하는 장면은 보는 나까지 울컥하게 했다. 인물들이 잘못해서 잘린 사람은 없다. 시대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났을 뿐이다.
박찬욱 감독 작품 중에서는 이번 작품이 코미디가 많이 들어가 있다고 하는데, 박찬욱 감독 유머 코드와 내 유머 코드는 잘 맞지 않는 걸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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