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10.01.
PTA의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영어 원문이 제목이면 어떤 뜻인지 모른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찾아봐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초반부에 대사가 나왔다. 끝없는 전투. 끝없는 전투, 라고 하니 영화 초반에 보여준 ‘자유’를 위한 투쟁이 지겹도록 나올 거라고 예상했다. ‘자유’에 대해 다루는 건 맞지만 예상과는 달랐다. 그것을 다루는 방식도.
영화에서 일어나는 소동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퍼피디아 베벌리힐스는 나사 두세 개는 빠진 인간이다. 자유 투쟁 단체 프렌치 75의 실질적 리더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자유를 외치며 밀입국을 하려다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한다. 폭탄 테러와 은행 강도도. 바쁜 와중에 밥 퍼거슨을 마음에 두고 그와 연인이 되고 아이를 가진다. 한 가지 문제점이라면 퍼피디아는 상당히 도발적인 성격이다. 영화 도입부에서 밀입국자 해방 작전을 행하면서 그 시설 책임자인 스티븐 록조의 성적 판타지를 만족시키고 그로 인해 스토킹을 당한다. 그 결과 스티븐 록조는 퍼피디아를 비롯한 프렌치 75을 궤멸시킨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영화 내내 ‘혁명’과 ‘자유’ 등 듣기만 해도 가슴 뜨거워지는 단어가 수없이 나온다. 그런 단어를 들을 때마다 낯 뜨거워졌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 중에서 그것을 감히 말해도 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프렌치 75가 하는 일은 억울하게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해주는 데에 멈추지 않는다. 그들의 뜻과 맞지 않은 의원 사무실에 폭탄을 설치하고 은행 강도짓을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넓은 의미로 봐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테러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은행 강도짓은 어떻게 해서도 용인할 수 없는 짓이다. 그것이 어떻게 해서 자유와 이어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저들이 보안을 위해 하는 행동들이 전부 코미디처럼 보였다. 시구절 같은 말을 주고 받고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읊어야 하는 행동들은 그들에게 사명감을 주지만 그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딸의 행방을 모르는 밥에게 암구어를 대라고 반복해서 묻는 장면은 ‘지금이 몇 시냐?’라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가 간직해야 하는 시간을 물으며 사명감에 대해 되새김질하는 의도겠지만 한 발 떨어져 있는 관객 입장에서는 코미디였다. 보안? 중요하다. 하지만 친구의 여자 취향으로 쉽게 풀릴 보안이다. 만약 그들의 암구어가 이미 적들 손에 떨어졌다면 그들이 강조하는 보안은 무용지물이다. 언제적인데 아직도 기억하냐며 까먹었다고 딸의 행방을 알고 싶다고 절규하는 밥의 모습은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이들이 우습다고 해서 그 반대편인 백인 우월집단—대안 우파? 집단인 크리스마스 모험가가 옳은 건 아니다. 퍼피디아에게 사법 거래를 하면서 ‘주류 사회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대사는 반대로 얘기하면 그들이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존재하는 걸 인정하는 셈이다. 주류 사회가 아닌 사회를 왜 포용하려고 하지 않을까?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그들이 백인이 아니라서? 미국에서 인종을 나누는 것만큼 웃기는 일이 없다.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이다.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인데 인종을 따진다. 크리스마스 모험가 입단을 위한 질문에는 반유대인 조상을 두고 있는가? 유색 인종과 성관계를 맺은 적이 있는가? 등 듣기만 해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인종차별적인 대사를 남발한다. 크리스마스 모험가도 프렌치 75만큼 역할극에 심취한 집단이다. 다른 점은 오로지 돈이다. 크리스마스 모험가는 평범한 집 지하에 모여 회의를 하고 그들 나름대로 지부를 나눠서 그들 입맛에 맞게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암구어를 외치지 않는다뿐이지 프렌치 75와 다를 게 없다.
이런 두 가지 집단 사이에서 밥은 딸 윌라와 만나기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이 우스우면서 처절했다. 밥에게 자유 투쟁이란 과거의 영광이다. 현재 전선에 나서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알제리 전투’ 같은 과거 영화에 빠져서는 그들이 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현재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로지 관심 있는 건 딸의 행방이다. 밥을 보면서 사람들이 열과 성을 바쳐서 했던 일들이 현재에 밀려서 전부 포기하는 건 아닐까? 타성에 젖어서 중요한 것을 놓치는 현재가 괜히 찔렸다. 가족만큼 중요한 건 없다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달려드는 사람들을 비웃어선 안 된다. 밥은 어쩌다가 자유 투쟁 같은 혁명에 뛰어들었을까? 그의 과거에 대해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유추할 수밖에 없는데 반쯤 재미 때문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보였다. 감독이 어떻게 설정했을지 알 수 없지만 윌라가 태어나자마자 혁명에 등 돌리고 ‘그런’ 건 남들이 하게 두라는 태도를 보면 혁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밥은 뭐가 답답해서 ‘혁명’이라 외치는 테러 행위에 뛰어들었을까?
이야기의 결과이자 주인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윌라. 윌라는 일련의 소동을 통해서 여러 진실들과 마주한다. 윌라의 엄마가 영웅이 아니라 배반자였다는 것. 밥은 윌라에게 엄마는 영웅이며 스티븐 록조에게 죽었다고 알렸는데 스티븐 록조에게서 죽지도 않았고 영웅도 아니었다. 또한 윌라의 유전적 아버지가 밥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윌라는 퍼피디아와 스티븐 록조의 딸이다. 스티븐 록조가 퍼피디아의 테러 행위를 눈 감아 주는 대신 한 번 잠자리를 가진다. 영화에서는 잠자리를 가졌다,는 늬앙스보다는 성적 판타지를 채운 식으로 묘사되었는데 잠자리를 가진 게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이가 태어날 수 없다. 윌라는 단시간에 마주한 여러 진실들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목표를 명확하게 잡은 것으로 보인다. 자유를 위해 3시간 30분이나 떨어진 오클랜드로 차를 몰고 갈 만큼 자유를 위한 투사가 되기로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오르락내리락하는 도로 추격 장면이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통해 추격자가 보이고 안 보이는 장면은 관객에게 긴장감을 선사할 뿐 아니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인생은 눈앞에 곧게 뻗은 도로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게 오르막내리막이 있다. 그뿐이라면 다행이지만 곤경에 빠뜨릴 추격자가 쫓아올 때도 있다. 그것은 별것 아닌 어려움일 수도 있지만 죽음처럼 위험한 것일 수도 있다. 나쁜 것만 있는 건 아니다. 곤경에서 구해줄 구원자일 수도 있다. 인생은 파도처럼 나쁜 것이 올 때도 있고 좋은 것이 올 때도 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제목이 말하는 ‘끝없는 전투’란, 자기 모순과의 끝없는 전투로 보였다. 퍼피디아는 자유를 외치지만 은행 강도짓을 한다. 스티븐 록조는 백인 우월주의를 외치지만 흑인 여자를 좋아한다. 밥은 혁명을 외치지만 그것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없다. 이들이 입으로 외치는 것과 행동은 이율배반적이다. 사람에게 다양한 면이 있다지만 모순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모순이 있다면, 그 사실을 다른 사람이 안다면 누가 그를 믿을 수 있을까. 자기 스스로에게 얼마나 확신이 생길까. 삶이란 자기가 성취하고 싶은 신념과 현실에서의 행동의 갭을 줄여가는 것이다. 이미 어른들은 그들이 외치는 대로 살지 않았으니 남은 건 아이들이다. 윌라는 어떤 삶을 선택할까? 그리고 그 삶을 지킬 수 있을까?
나아가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행동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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