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10.06.
2025년 제78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작품. 안 볼 수가 없다.
씨네필은 아니지만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은 재미 있든 재미 없든 매년 챙겨보려고 한다. 작년엔 ‘아노라’, 재작년엔 ‘추락의 해부’, 재재작년엔 ‘슬픔의 삼각형’. 모두 재밌게 보았고 한번쯤 보면 좋을 작품들이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칸의 성향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일반 관객은 메시지도 메시지지만 재미도 있어야 한다.
시놉시스조차 보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 제목과 영화 도입부만 보고서 우연히 뺑소니 사고를 내고 그것을 수습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일 거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영화는 내 빈약한 상상을 비웃듯 더 깊고 현실적인 지점으로 관객을 끌고 들어간다.
영화는 이란의 현재 상황을 알지 못하면 얼마만큼 심각한 상황일지 모를 것이다. 내가 그랬다. 나는 영화에서 나오는 상황이나 인물의 대사로 유추할 수밖에 없었는데 뒷배경을 그리는데 어렵지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 관객은 그럴 것이다. 우리네 조상들이 겪었던, 어쩌면 아직 겪고 있는 이야기와 닮았기 때문이다.
영화 전체를 보고 나면 ‘참 쉽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끔찍하고 몇 년을 허비할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금방 잊혀질 일에 불과하다. 그에겐 하루하루 해치워야 할 업무일 뿐이다. 거기에 자신의 취향을 아주 조금 넣었을 뿐. 인간은 망각하지 않으면 뇌가 과부하에 걸려서 일정 주기로 불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지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잊었으면 하는 일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겪은 일보다도 더욱 고통스러운 방향으로 왜곡되어선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괴롭힌다. 바히드, 시바, 골리, 하미드 모두 그렇다.
종반부 외다리 에그발의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진 엉뚱한 사람을 납치한 게 아닐까? 불안했다. 바히드는 눈을 가리고 있었고 오로지 기억하는 건 삐그덕거리는 외다리 에그발의 의족 소리. 그것만 듣고서 어떻게 우연히 만난 에그발을 알아챌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시바와 골리, 하미드의 도움을 받는다. 하미드는 눈을 감고 에그발의 다리를 어루만지는 걸로 에그발의 정체를 알아낸다. 나는 ‘이걸로 정말 정체를 알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앞서 말했듯 기억은 진실을 왜곡한다. 실제로 기억 왜곡에 대한 목격자에 관한 논문도 보았다. 그런 경험 때문에 바히드가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 속에서 그가 겪은 과거를 잊지 못하는 이야기로 이어질 줄 알았다. 이것도 꽝. 내가 너무 세상을 순진하게 바라보나 보다. 아니면 끔찍한 현실에서 억지로 눈을 돌리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면 인물들이 겪은 고통을 별것 아니라고 치부한지도 모른다. 이처럼 남의 고통은 별것 아닌 사고로 단정 짓는다.
복수를 다짐하지만 바히드와 시바는 에그발을 죽이지 못한다. 나는 타고난 심성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모진 고문을 한 당사자를 만나도 복수하지 못한다. 만약 바히드가 에그발과 입장이 반대였다면 바히드는 에그발이 했던 것처럼 고문을 했을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다. 명령 불복종으로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바히드가 에그발의 딸의 전화를 받고 에그발의 아내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것도 모자라 입원비를 내는 모습을 보면서 웃기기는커녕 속이 터졌다. 하미드가 말한 것처럼 왜 멍청하게 구냐는 것이다. 아내와 딸은 에그발의 악행을 모르고 그가 한 일과 무관하다고 하더라도 태평하게 대할 수 있냐는 것이다.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해야하는 일일까? 하지만 영화 도입부에서 개를 친 남편에게 ‘그저 사고일 뿐.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말하는 아내를 봐선 부창부수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가 있으니 잡혀왔을 것이고 고문 받아도 당연하다고.
마지막 장면은 가슴이 졸렸다. 나는 고작 100분이지만 바히드는 무려 5년이나 겪었다. 엔드 크레디트가 올라가서도 들리는 삐걱대는 의족 소리는 끔찍했다. 바히드를 잡으러 온 걸까? 바히드가 에그발을 아주 우연히 만난 것처럼 우연히 근처를 들린 걸까? 아니면 바히드는 환청을 들은 걸까? 에그발을 죽인 게 아니니 언제든지 에그발이 자신을 찾아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떠는 것이다. 뭣같은 의족 소리와 비슷한 소리만 들어도 얼어붙고 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전자라고 본다. 에그발 같은 악독한 인간은 자신이 겪은 일을 쉽게 넘길 리 없다. 어떻게 해서든 찾아서 복수하려 들 것이다. 설마 아내를 구해줘서 고맙다고 찾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겉만 보면 어떤 아픔을 겪는지 알 수 없다. 동류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 간에도 그것에 대처하는 방식도 다르다. 흘려보내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있고 적극적으로 복수하려는 사람도 있다. 복수하다가도 제 풀에 풀어지는 경우도 있고 울분을 전부 쏟아내고 마지막의 마지막에서 손을 놓는 경우도 있다. 복수란 끝이 있을까? 애초에 시작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일어난 일을 없던 것으로 할 순 없다. 복수의 굴레를 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다시금 생각한다.
이란의 현실을 영화로나마 알게 되어 고마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찾아보니 이란 사회파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이런 아픔을 모두가 겪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겁부터 난다. 우리는 유례 없는 태평성대의 끝자락에 있는 건 아닐까.
#자파르파나히 #그저사고였을뿐 #영화 #영화감상 #기록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