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by 송건자
‘국보’ 포스터

2025.11.20.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 거기에 감독 이상일. 안 볼 수가 없다.


영화는 타치바나 키쿠오를 따라간다. 1964년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타치바나 키쿠오가 하나이 토이치로, 하나이 한지로를 거쳐 인간 국보(우리나라로 치면 무형문화재)가 되는 이야기다. 영화의 스토리는 앞선 설명을 들으면 감이 오듯 키쿠오의 파란만장한 삶을 거쳐 그의 꿈을 이루기까지를 다룬다.


가부키라는 우리나라에선 생소한 소재를 다룬다. 가부키라고 하면 하얀 분칠을 한 배우가 현대 일본어도 아닌 고어로 요상하게 높은 목소리를 섞어 대사를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서 대사에 가부키에 관한 용어가 나오면 어쩌지, 걱정했었는데 센스 있게 극에 대한 설명을 자막으로 띄워준다. 줄거리를 포함해서 설명하는데 덕분에 걱정없이 볼 수 있었다. 사실 가부키를 전혀 모르고 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는 한 인간의 절망과 실패, 좌절과 성공을 다루기 때문에 외부 소재 정도로 미루고 넘어가도 영화를 이해하는데 하등 문제 없다.


영화는 핏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느 분야든 비슷하지만 어떤 피를 이었는지 누구의 자식인지가 큰 영향을 준다. 예술, 특히 전통을 따지는 분야는 심하다. 하나이 한지로의 이름을 받을 사람은 누구인가. 결국 한자이 한지로의 아들 한야가 받지 않겠느냐. 키쿠오처럼 다른 판에서 굴러온 돌이 아무리 재능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주인공 자리를 꿰찰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키쿠오는 타고난 재능이 있었고 스승은 그를 높이 평가, 한자이 한지로의 이름을 물려준다. 하지만 그가 죽는 상황에서 아들 슌스케를 찾는 모습은 부모가 없는 키쿠오에게 큰 상처가 된다. 피를 잇지 않은 키쿠오가 3대 한자이 한지로가 되지만 가족의 울타리에는 끝내 들어가지 못한다. 허공을 쫓는 키쿠오의 눈동자가 너무나 슬퍼 보였다.

키쿠오는 핏줄이 뭐가 중요하냐며 온몸으로 거부하지만 그의 몸에 흐르는 피(키쿠오는 야쿠자 두목의 아들)는 속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성공하기 위해서 혹은 재기하기 위해서 마음에 없는 여자—아키코와 잠을 자고 그를 매니저처럼 부린다. 결국 아키코는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키쿠오를 떠난다. 키쿠오는 다시 가부키로 돌아와 한때 도망쳤던 한야와 한 조가 되어 ‘한한 콤비’로 멋지게 재기하는가 싶지만 하늘이 가만 두지 않았다. 슌스케는 당뇨로 왼쪽 다리를 잘라내고 끝내 목숨을 잃는다. 의형제이자 애증 관계였던 슌스케마저 떠나고 키쿠오는 혼자가 된다.

결국 키쿠오는 그토록 바라던 ‘인간 국보’가 된다. 그 기념으로 ‘백로아가씨’ 무대를 공연한다. 영화 중간중간 다른 가부키 극도 제법 나오지만 길게 나오는 건 ‘백로아가씨’가 처음이다. 왜 가부키 같은 걸 재밌게 볼까? (여기서 가부기 같은 것은 전통극을 말한다. 부끄럽지만 전통극은 대체로 심심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라는 의문이 있었는데 ‘국보’를 보고나니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부키를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전통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에 절제미를 맞붙이니 낯설지만 재밌고 아름답다. 직접 보면 다를 거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로 보면 참 재밌어 보인다.


영화는 키쿠오를 중심으로 흐르지만 슌스케도 더블 주인공로 보인다. 어찌보면 슌스케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피해자다. 당연히 3대 한자이 한지로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살았을 텐데 키쿠오라는 굴러온 돌 때문에 원하지 않는 비교를 당하고 3대 자리마저 빼앗긴다. 영화를 보면 슌스케는 키쿠오만큼 노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가 다를 뿐 슌스케도 키쿠오만큼 열심히 노력했다. 다만 키쿠오의 재능에 밀렸다. 키쿠오는 피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슌스케는 그 피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평생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야 했고 키쿠오라는 의형제이자 친구에게 비교 당해야 했다. 2대 한자이 한지로가 차사고로 대역을 세워야 할 때 키쿠오에게 밀린 장면은 키쿠오가 느낄 부담도 부담이지만 슌스케가 걱정되었다. 무대에 올라 멋진 공연을 선보이는 키쿠오를 본 슌스케는 도망치지만 다시 가부키로 돌아온다. 진정한 배우가 되기 위해 처음부터 노력하고 보답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불행은 끝이 아니니 키쿠오가 부러워한 피는 ‘당뇨’라는 저주에 덧씌워 왼쪽 다리와 목숨을 앗아간다. 키쿠오와 함께한 슌스케의 마지막 공연에서 괴사 중인 오른쪽 다리가 드러나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피는 다른 사람이 설 수 없는 출발선을 앞당기기도 하지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저주와도 같다.


영화는 감동적이다. 그 속에 다양한 부정한 감정이 뾰족하게 잔뜩 들어가 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내가 이런 류의 스토리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낯선 소재에 깊이 공감하게 한 감독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이상일 감독 영화는 어쩌다보니 극장에서 계속 보고 있는데 취향에 맞는다. 악인, 분노, 유랑의 달 모두 재밌었다.


영화가 완벽한 건 아니다.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아쉬운 부분도 있다.

소설과 달리 영화는 시간 예술이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서 이야기를 전부 풀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을 많이 건너 뛴다. 그래서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은 관객이 알아서 메꿀 수밖에 없다. 시간을 건너 뛰는 건 한 인물의 일생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이해한다고 해도 그 탓에 등장인물이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사라지거나 그들의 맥락을 읽을 수 없어 이해하기 어려웠다.

첫 번째는 하나에. 하나에는 키쿠오를 끝까지 쫓아간다 맹세한 여자친구다. 그런데 키쿠오가 2대의 대역을 맡는 날 도망치는 슌스케를 데리고 8년간 잠적한다. 둘 사이에 아들도 낳는다. 하나에가 키쿠오와 잠자리를 가진 후, 키쿠오의 최대 후원자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슌스케를 이용한 걸까? 아니면 키쿠오의 재능을 자신으로는 뒷받침 할 수 없다는 걸 알고 뒤돌아섰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로 보이는 슌스케에게 마음이 돌아선 걸까? 그 가능성 말고는 하나에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는 후지코마. 후지코마를 이해하기 어렵다기보다는 후지코마와 연을 맺은 키쿠오가 이해가지 않는다. 둘 사이에서 사생아도 낳을 정도인데 단순히 몸을 섞는 관계였는지 혹은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시간에서도 연을 끊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 사진기사가 된 딸 아야노와의 만남을 보면 연을 이어가지 않은 것 같다.

세 번째는 아키코. 아키코는 바닥으로 떨어진 키쿠오를 보좌하는 인물로, 왜 아키코와 키쿠오가 연을 맺게 되었고 아키코가 왜 키쿠오를 놓지 못했는지 극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관객을 상상할 수밖에 없는데(키쿠오가 무대에 서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 그의 등장만큼이나 퇴장도 갑작스럽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 세 인물에 대해 자세하게 풀었을 것 같은데 영화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잘라냈나 보다. 조금 아쉬운 부분.

네 번째는 배우들의 분장이다. 청년부터 노년까지 성인 배우들이 맡아 연기를 하는데 마지막 70대 노인 분장은 정말 어울리지 않았다. 만기쿠를 연기한 노배우가 앞서 나온 탓에 분장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노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주름진 손은 대역을 썼는지 괜찮았지만 가부키 분장을 하지 않은 일상에서의 노인 분장은 몰입을 깰 정도였다.


영화는 ‘핏줄’과 ‘재능’을 끊임없이 대조한다. 피를 이어도 재능이 없으면 반짝일 수 없다. 재능이 있어도 피가 없으면 무대에 설 수 없다. 핏줄은 축복이면서 저주다. 뛰어난 재능은 현실에 부딪쳐 이뤄질 수 없음을 한탄하며 더 나아가기를 바라고 악마와 계약하려 든다. 최고의 가부키 배우가 될 수 있다면 모든 걸 바쳐도 좋다. 키쿠오의 소원은 이뤄진다. 악마 같은 재능은 그를 인간 국보로 만들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다. 인간 국보였던 만기쿠 선생처럼 키쿠오는 아무도 없는 단칸방에서 생을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끝이 초라하더라도 키쿠오는 바라던 풍경을 보았으니 행복할까?


제멋대로 하나 더 해석하자면, 현실과 무대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배우들은 자신의 위치를 잃는다. 배우는 항상 아름다운 것에 둘러 싸여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만들어진 것이다. 머리를 푸는 것도 화장을 하는 것도 옷을 입는 것도 혼자서는 어렵다. 무대로 올라가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스스로 걸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키쿠오는 아버지를 잃었을 때부터 현실과 무대의 경계가 무너진 것처럼 보인다. 타치바나파 두목인 키쿠오의 아버지는 적대 조직의 급습으로 총에 맞아 죽는다. 눈 내리는 마당에서 상대 조직원을 칼로 베어 버리려는 키쿠오의 아버지는 무대에 선 배우처럼 목숨을 잃는다. 현실감 없이 총알 하나에. 키쿠오와 키쿠오 아버지 사이에는 유리창이 있었는데 그것은 현실과 무대처럼 보였다. 가까운 듯하지만 닿을 수 없는 공간. 가부키도 마찬가지다. 무대는 좌석보다 높이 서있어 관객이 난입할 수 없다. 하지만 지방 호텔에서 공연을 할 때는 계단 하나뿐인 협소한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무대 위로 관객이 난입하고 분장하는 곳까지 따라와 키쿠오를 희롱하고 때린다.

무대는 현실이지만 현실이 아닌 곳이다. 키쿠오는 아버지의 죽음을 봤을 때부터 현실과 무대가 뒤섞인,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곳에서 버텨온 게 아닐까. 그래서 가부키에 열중했고 피—운명에 의해 꿈이 좌절될 때 피에 각인된 폭력을 이용해 남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한 것이다. 등에 새긴 수리부엉이 문신처럼 벗어날 수 없다.


#이상일 #국보 #영화 #영화감상 #기록 #2025년

keyword
작가의 이전글프레데터 : 죽음의 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