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5.11.26.
2001년에 일본에서 개봉한 ‘뱀파이어 헌터 D’가 2025년에 정식 개봉했다. 오래 전부터 존재를 알았는데 명작이라 불려서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정식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각종 영화제에서는 제법 공개했지만) 손만 빨고 있었는데 이번에 메가박스에서 독점 개봉했다. 11월 12일에 개봉했는데 이런저런 일 때문에 2주가 지난 지금 보게 되었다.
내용은 던피르(뱀파이어 아버지와 인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D가 뱀파이어 헌터로서 의뢰를 해결하는 이야기다. 의뢰란 귀족—뱀파이어— 마이어에게 납치당한 딸 샬롯을 구출해달라는 것. 만약 샬롯이 뱀파이어가 되었다면 죽여달라는 내용까지 포함되었다. 의뢰를 받은 건 D뿐이 아니었다. 현상금 사냥꾼 마커스 형제도 참전한다.
의뢰를 받았으니 해결하는 것이 인지상정. 역시나 과정이 중요하다. 현재 지구의 생태계, D의 과거, 마커스 형제의 우애, 마이어와 샬롯의 관계가 드러난다. 스토리상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마이어가 샬롯을 납치한 게 아니라 마이어와 샬롯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이다. 마이어와 샬롯은 카밀라의 체터 성으로 가 별의 도시로 함께 떠날 계획이었다. 마이어와 샬롯은 부하들의 희생으로 체터 성에 도착하지만 전부 카밀라의 음모였다. 카밀라는 자신이 부활하기 위해 마이어를 현혹하고 샬롯을 습격한다. D는 카밀라에게 일격을 먹이고 카밀라의 부활을 저지한다. 남은 건 마이어와의 결판. 여러 합을 주고 받은 끝에 D의 칼이 마이어의 어깨를 찌른다. 심장이 꿰뚫릴 줄 알았던 마이어는 이유를 묻는다. 샬롯의 반지를 가져가면 유족들도 이해할 거라며 싸움에서 물러난다. 마이어는 죽은—혹은 기절한 샬롯을 데리고 별의 도시로 떠난다.
영화는 뱀파이어의 진실한 사랑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게는 ‘영원’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였다. 마이어와 샬롯의 서사가 그러하지만 D와 레일라의 서사도 앞선 둘과 비교해봄직하다. 레일라는 마커스 형제의 막내로 유일한 홍일점이다. 레일라는 D와 계속 접점이 있고 로맨스를 기대하게 한다. 물론 로맨스는 없다.
영원히 산다, 는 건 불가능한 만큼 기적처럼 들린다. 인간은 불가능을 동경한다. 창작물을 넘어 현실에서도 노화와 불사를 위한 연구가 활발하다. 그만큼 오랜 숙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랑에 빠진 샬롯은 영원을 바란다. 자신의 영원한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이어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 하지만 마이어는 샬롯의 아름다운 목덜미를 물기를 망설인다. 왜? 창작물에서 숱하게 나온 이야기. 영원히 산다는 건 저주에 가깝다는 이유. 꽃이 피고 지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처럼 생명은 죽음과 맞닿아 있을 때 더 아름답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경지이기 때문에 외치는 정신승리처럼 보인다. 너무 부정적일까?
여하튼 마이어는 샬롯을 데리고 별의 도시로 떠난다. 샬롯의 죽음을 확실하게 나오지 않지만 숨이 붙어있는 한 마이어가 살리지 않을까 상상한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체터성(우주선처럼 부스터가 불을 뿜고 날아간다)을 보며 레일라는 날아가라고 힘주어 소망한다. 방금 전까지 마이어를 죽이려 했고 샬롯을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으면서 둘의 사랑을 자기도 모르게 응원한다.
마이어와 샬롯을 보낸 뒤 레일라는 D에게 한쪽이 죽으면 그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하자고 흘리듯 말한다. 그리고 결말에서 레일라의 장례식에 D가 참석한다. 멀리서 몰래 보는 D를 레일라의 손녀가 발견한다. D는 레일라의 손녀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떠난다. 미소를 띄운 채. 이 장면만으로 이 영화를 볼 가치가 충분했다.
나는 죽음에 대해서 종종 생각한다.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상상. 늙지 않는 경우와 늙는 경우를 나눠야 할 것이다. 영원히 사는데 늙는다면 저주일 것이고 영원히 사는데 늙지 않는다면 꽤 재밌을 것 같다. 여기서 또 병에 걸리는 경우와 걸리지 않는 경우를 나눠야 한다. 상상의 꼬리잡기는 여기서 그만.
영화를 보니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한 물음이 한층 깊어졌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영원히 살 가치가 있지 않을까? 만약 마음이 변한다면 그 사랑은 저주가 될까? 창작물에서는 영원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약속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제로 사랑을 느끼는 기간은 2,3년이 최대라고 한다. 그 이후는 정으로 가는 거라고. 결혼과 출산을 했다면 육아와 생존 문제로 옮겨가기 때문에 다른 감정이 대체된다고 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영원히 사는 것이 반드시 좋다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듯 이건 인간이 겪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정신승리 하는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로 영원히 사는 건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 특히 모두가 영원히 산다면 이 세계는 멈출 것이다. 발전할 이유가 없다. 동기 부여도 없을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없으니 심적 부담도 없다. 우리는 이길 수 없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끊임없이 패배하며 무력하게 지낼 것이다. 쾌락만을 쫓을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상상만 떠오르지만 반대로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에 도전 정신이 불타오를지도 모른다. 역시 겪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누구도 알 수 없다.
‘뱀파이어 헌터 D’는 명성만큼이나 작화가 대단하다. 그림체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지 몰라도 작화에 대해선 모두 박수를 보낼 것이다. 전통의 매드하우스이니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정적인 부분이 제법 있고 뱀파이어와의 사랑을 다루는 작품이 워낙 많기 때문에 내용에 대해서 신선함이 조금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작품을 보는 맛이 있다. 다크판타지라고 홍보를 해서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인 줄 알았는데 디스토피아 SF에 더 가깝다. 사막 만타나 D의 애마, 마커스 형제의 장갑차, 레일라의 오토바이, 카밀라의 체터 성 등 눈이 휘둥그레지는 SF적 설정이 많았다.
최근에 재개봉이 많은데 내가 볼 수 없었던 영화를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그래도 새로 개봉하는 영화들도 많았으면 하는 게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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