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한 개인 기록용 감상문
2026.2.25.
사람마다 애니메이션 실사화에 대해 생각이 다를 것이다. 나는 못 봐줄 정도로 엉망이지 않으면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어줍잖게 원작을 존중한다고 CG를 쓰거나 억지로 분장을 하는 것만 아니면… ‘초속 5센티미터’는 내가 싫어하는 실사화 요소를 가지지 않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다.
영화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가 16년을 헤매다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아무래도 원작을 보았기 때문에 어떤 점이 원작과 달라졌는지 신경을 쓰느라 제대로 감상하지 못한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결말만큼은 원작보다 낫게 그렸다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프로그래머인 주인공 노토 타카기는 사회부적응자라고 선 그을 수 있을 만큼 주위와 교류를 하지 않는다. 타인과 자신에 대해 털어놓고 감정을 나누는 걸 불편해 한다. 오죽하면 여자친구인 미즈노와도 절제된 대화만 나눈다. 그런 그에게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 첫사랑 스노하라 아카리다. 그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감정을 솔직하게 터놓은 상대이다. 두 아이는 자연스레 가까워지고 고백하지 않았을 뿐 서로를 좋아한다. 하지만 아카리의 전학으로 두 사람은 헤어진다. 편지로 연을 이어가지만 이와후네의 만남 이후로 두 사람은 연락이 완전히 끊긴다. 그 이후로 타카기는 아카리와 함께 올려다보았던 밤하늘과 달을 보면서 과거를 그리워한다. 그래서 타카기는 두 명의 연인을 잃는다. 한 명은 고등학교 시절 타카기를 좋아한 스미다 카나에, 한 명은 성인이 되고 사귄 미즈노 리사. 그는 현재를 보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과거에 얽매이고 있다는 것과 아카리가 그러지 않기를 바란다는 걸 알고는 한 발 나아가기로 한다.
아카리와의 재회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는 조금 아쉬웠다. 원작을 알면서도 두 사람을 만나게 하면 좋지 않을까? 란 철없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면 이 영화가 ‘초속 5센티미터’일 필요가 없다. 다만 현실의 쓴맛만 실컷 선보인 원작과 다르게 디테일을 살린 건 다행이다. 아카리는 16년에 걸친 약속을 타카기가 잊었기를 바란다. 잊었더라도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과거는 과거인 채로 두었으면 한다고 말이다. 타카기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많은 현재를 놓치고 살았는가 깨닫고 오열한다. 변하기로 결심한 타카기는 미즈노에게 빌렸던 우산을 돌려주면서 미즈노의 좋은 점을 말한다. 미즈노와 다시 만나나 싶었지만 두 사람이 결국 갈 길 가는 점이 현실적이어서 아쉬우면서도 현실적이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막판에 두 사람이 포옹하고 키스하면 도리어 연결이 깨진다.
창작물이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곤 한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막연한 해피엔딩이 아닌 과거는 아름답지만 그것에 빠져서 현재의 행복을 놓쳐선 안 된다는 메시지이기 때문에 씁쓸한 결말이 옳다.
이와후네의 만남이 타카기와 아카리의 미래에 결정적이었다. 타카기는 그 만남에서 아카리에 대한 사랑과 시작을 깨달았고 아카리는 타카기에 대한 사랑과 마지막을 깨달았다. 타카기는 아카리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만 아카리는 타카기에게 너라면 괜찮을 거라고 말한다. 이것이 두 아이의 차이다. 나의 사랑이 끝났을 때 당신의 사랑은 시작한다, 이런 대사가 떠오른다. ‘헤어질 결심’이었나.. 정확하진 않다.
타카기가 아카리에게 조금만 더 빨리 마음을 전했다면 어땠을까. 차이더라도 스미다가 타카기에게 마음을 전했으면 어땠을까. 항상 조금의 망설임이 미래를 영영 먼 곳으로 보낸다. 보이저 1호와 2호가 영영 다른 우주를 떠도는 것처럼. 타카기와 스미다가 갈래길에서 다른 길을 가는 것처럼. 스미다에게 친구가 좋아하는 걸 알아도 고백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는 대사를 하는 게 영화의 전체적인 메시지를 담은 대사로 느껴진다. 그러니 지금 망설이고 있다면 저질러버리자.
기억에 대한 연출이 마음에 들었다. 타카기의 시점에서는 안 보이는 게 아카리의 시점에서는 보이고 아카리의 시점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이 타카기의 시점에서는 보인다거나 하는 것. 같은 추억과 시간을 공유했더라도 어떤 이에게는 기억되고 어떤 이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을 잘 표현했다. 기억의 어긋남이 서로에 대한 마음을 더 깊게 만들고 멀게 만들고 한다.
영상미도 좋았다. 특히 카고시마가 배경일 때 풍경이 자주 나오는데 일본 여름하면 떠오르는 것들, 뭉게구름, 노을, 바다 같은 것들을 아름답게 담았다.
개인적으로는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가 눈물 버튼인데 틈틈이 나와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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