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스톡홀름 여행
미지의 세계에 혼자 내던져지기를 원했던 것도 결정했던 것도 전부 나였는데, 막상 발걸음을 떼려고 하니 그게 얼마나 어려웠는지 모른다. 평소와 같이 집을 나서는 것뿐이었는데도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만 같았달까. 그건 아마도 이 여행의 무게가 내게 그만큼이나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당겨온 활시위는 늘어날 만큼 늘어나 있었고, 활대는 자신의 최선을 다해 휘어진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던 건, 그리고 해야했던 건, 붙잡고 있는 화살을 망설임 없이 놓아주는 것과 화살이 무사히 날아 과녁에 닿기를 바라주는 것, 그뿐이었다.
인천공항까지 혼자 가는 것도 제2터미널을 이용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이후에 펼쳐진 모든 일들이 전부 처음이었으니, 조금은 새삼스러운 이야기다. 그럼에도 처음은 늘 처음처럼 특별했고, 그래서 처음의 처음은 조금 더 특별했다. 출발의 두려움과 설렘을 같이 느껴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없다는 건 어색했지만, 신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양말을 바라보면서, 나의 여정을 응원해주는 이들의 메시지를 읽어가면서, 그렇게 공항으로 향했다.
누군가들의 설렘과 누군가들의 아쉬움이 뒤엉켜있는 곳. 나는 이곳에 설렘을 한 움큼 더했다.
MOSCOW와 STOCKHOLM. 두 장의 보딩패스를 한참 동안 쳐다봤다. 이 도시들이 내게 남겨질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들은 그렇게 느닷없이 나의 시간 속으로 들어왔다. 하긴, 생각해보면 꽤 많은 일들은 난데없이 밀려오니까, 그리고 우리는 그저 그런 대로 또 살아내니까. 그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장장 10시간에 달하는 비행.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며 갔는데, 우연이라고 믿어왔던, 가끔씩은 인연이라고 믿고 싶었던 어떤 관계들은 어쩌면 서로의 간절함이 서로에게 닿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그 관계들이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우리가 우리였던 순간만큼은 서로가 서로를 향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알 수 없는 강한 믿음이 특히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문자도 전화도 되지 않는 기내였음에도, 구름 밑 누군가들에게는 나의 진심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텔레파시를 더 열심히 보냈다. 어찌, 잘 닿았으려나?
그렇게 날다 보니, 어느덧 창문에는 낯선 땅, 낯선 불빛과 낯선 빗방울이 맺혔다.
다른 이들에게는 목적지가 되어주는 이곳이 내게는 그래주지 못했다. 더 이상 같은 곳을 향하는 사람이 없었고, 그제서야 혼자라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안 그래도 환승도 처음인데 같이 환승하는 사람도 없다니. 잔뜩 움츠러든 채로 작고 고요한 환승 수속대와 보안 검색대를 통과했다. 그래도 모든 걸 마치고 문밖으로 나오니, 나를 기다려주던 모스크바가 펼쳐져 있었다. 덕분에 나는 몸도 마음도 조금씩 펼 수 있었다.
비록 네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공항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머무르는 것뿐이었지만, 넓디넓은 러시아 어딘가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던 터라 터미널 곳곳을 돌아다니며 러시아를 감각했다. 국가원수의 사진이 박힌 굿즈들은 신기했고, 사회주의의 이미지가 강한 털모자들은 매력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우주 강국의 남다른 자판기는 특히 빛났다. 우주 여행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진 것만 같아서 괜히 그 앞을 계속해서 서성였다. 물론, 도전 정신의 부족으로 인하여 실제로 무언가를 뽑아보진 못했지만, 무척이나 인상깊었던 우주 음식 자판기.
다시 2시간 30분짜리 비행을 했다. 일어난 지 하루가 다 되어가고 있던 나는 졸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그 와중에 기내식 꾸러미는 또 잘 받아서 먹었다.
그렇게 눈을 감았다 뜬 지 몇 번, 기다려왔던 곳이 창문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밟은 스웨덴. 입국 심사을 받기까지의 과정은 힘들었다. 느긋하게 줄을 선 데다가 심사가 길어지는 까닭에, 거의 마지막 타자였던 나는 입국 심사를 받기 위해서 30분을 넘게 기다렸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전화하면서까지 무언가를 확인하는 듯한 그들의 치밀함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긴장되었으니, 나의 차례가 왔을 때는 더욱 긴장될 수밖에 없었다. 2주 동안 혼자 어딜 가냐고 묻는 심사원의 말에 키루나를 간다고 답하니, 그는 그 추운 데를 도대체 왜 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오로라를 보러 간다는 나의 이야기에 그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지만, 동시에 철없는 여행객임이 증명되었는지 심사대는 금방 통과할 수 있었다.
긴 시간을 함께 날아온 친구. 환승하다 보면 수화물이 분실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인천에서부터 셰레메티예보를 거쳐 알란다까지 잘 와줬다. 한낱 캐리어일 뿐인데도 괜히 기특하고 고마웠다.
공항을 나와서는 스톡홀름 중앙역까지 가는 버스를 탔다. 2주치 짐이 들어 있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캐리어를 버스 안에 실어야 했던 까닭에 낑낑거리고 있었는데, 먼저 올라탄 한 남성분이 다시 내려오더니 나의 캐리어를 들어올려선 보관함에까지 넣어주셨다. 내릴 때도 나를 보고는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하더니 대신 내려주셨다. 덕분에 스웨덴의 첫 장면에는 높게 뻗은 침엽수, 그 위에 쌓인 눈, 그리고 그 계절을 녹일 만큼의 따뜻함이 남겨졌다.
집을 나선 지 꼬박 하루 만에 10은 중력 없는 달나라에 무사히 착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