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을 고르고 가야 할 것 같을 때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맑고 다정하며 일처리마저 완벽한 덴마크 친구 A는 작년 어느 날 갑자기 병가를 내게 되었다는 말을 전했다. 사유는 번아웃.
번아웃이 이유라는 것에는 놀라지 않았다. 광고회사의 번아웃은 흔하니까, 나도 아주 직전까지 갔었고.
하지만 나를 놀라게 했던 건 그녀는 번아웃을 겪으면서도 평소처럼 사람들에게 공평하고 따뜻했다.
그래서 그녀가 속으로 아주 많이 힘들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도, 많은 사람들도 몰랐다.
A는 프랑스 남쪽으로 Retreat을 하러 간다고 했다. 그렇구나, 몸과 마음을 잘 돌보고 푹 쉬고 돌아와 이런 비슷한 말을 나는 했고 그녀는 잠시 떠났다.
어느새 돌아온 그녀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그녀가 간 곳의 이름이 Plum Village, 플럼빌리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와 귀여운 이름이네.
리트릿이라고 하면 위파사나 혹은 요가 관련 리트릿에 대해서만 듣고 봤기 때문에 이곳의 정체는 뭘까… 궁금해졌다. 어땠냐고 물어보는 나에게 섣불리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거기서 배운 것들은 자신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경험이라고 했다. 그녀 다운 말이었다.
삶을 바꾼 경험이 아닌 삶을 바꿀 수도 있는 경험.
이미 끝나버린 어떤 시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일상에,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어떤 것으로 들렸다.
“I don’t want to get ahead of myself but I think what I learned there might change my life.”
이 말이 계속 마음에 남아서 일단 그녀가 추천해 준 Plum Village에서 만든 팟캐스트를 들어보기로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달 후 암스테르담에서 컴퓨터 스크린 밖에서 처음으로 만난 그녀가 “삶에서 휴식이 필요하거나, 마음 챙기는 법을 배우고 싶을 때 가봐.”라고 내게 해준 말을 기억해 뒀다.
유독 길고 지겹고 어둡고 춥고, 운동할 때조차 생기가 없던 올해 초 겨울의 어느 날 플럼빌리지를 떠올렸다. 푸석거리고 잔뜩 마른 이 마음으로 봄을 맞이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나를 돌봐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이 봄에 찬란하고 새롭게 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는 날 하루, 오는 날 하루를 더해서 총 열흘. 휴가신청을 했고, 3월 넷째 주의 Spring Retreat을 예약했다. 명분은 서른한 살의 내게 주는 선물. 이거면 충분해.
삶을 바꿀 수도 있는 시간에 한발 짝 가까이, 눈을 질끈 감고 다가가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