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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체 Sep 08. 2023

걸으며 명상하기

우리의 발걸음이 단순한 이동이 아닌 영혼의 산책이 될 때 

플럼빌리지에 가기 전에 내게 명상이라고 하면 딱 한 가지의 이미지만이 떠올랐다.

눈을 감고 허리를 반듯이 펴고 앉아있는 모습. 하지만 플럼빌리지에서 명상은 앉아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상의 많은 순간에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걷기 명상과 식사 명상이 그중 하나인데 먼저 걷기 명상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다. 


틱낫한 스님은 가만히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 특히 걷기 명상을 해보라고 하신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화가 났을 때는 걷기 명상이 앉아서 하는 것보다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하면 산책을 나가서 생각을 정리하고, 그러면 대부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져서 집에 오게 되는데, 같은 원리이지 않을까 싶다. 플럼빌리지에서는 점심 먹기 전인 11시에 다이닝 홀 앞에서 모두 원을 그리고 모여 노래를 몇 곡 함께 부르고 나서 걷기 명상을 시작한다. 


걷기 명상은 아래에 소개할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골라서 하거나 혹은 이 모든 것을 쪼개서 그때 그때 내 마음 상태에 맞게 자기 방식대로 해도 된다. 


걷기 명상을 하는 세 가지 방법


1. 발에 닿는 느낌에 온 마음을 집중을 하고 한 발짝 한 발짝을 의식적으로 내딛으며 걷기: 스님들은 맨발로 걸으시기도 하는데 신발을 신고 걸어도 발에만 집중을 하다 보면 내 몸의 무게중심이 어떻게 움직이고 각 발걸음마다 느낌이 어떻게 미묘하게 다른지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다. 

2. "I have arrived. I am home" 만트라를 반복하며 걷기: 영어로 해도 되고, 자기 나라 말로 하면 더 마음에 와닿을 수 있다고 해서 한국어로도 해보고 내 나라 말은 아니지만 내가 사는 나라 말인 스웨덴어로도 해봤다. "도착했어. 집에 왔어." 틱낫한 스님은 물리적인 집의 존재의 여부와 관계없이 수행을 통해서 우리는 항상 집에 왔다는 느낌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하셨다. 

3. 들숨과 날숨동안 몇 걸음을 걷는지 세며 걷기: 이과생들에게 잘 맞는 방법이라고 농담을 하며 알려주신 방법. 그저 내 들숨과 날숨 사이에 몇 걸음을 걷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들숨에 더 많이 걷는지, 날숨에 더 많이 걷는지, 들숨과 날숨의 길이가 같은지. 그런 것들을 알게 된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호흡이 깊고 길어진다.


함께 걸어서 기쁜 순간들 


자유 시간에는 혼자서 걷기 명상을 할 수도 있고, 새벽명상을 하러 숙소에서 걸어갈 때나 숙소로 돌아갈 때 역시 혼자서 완전한 침묵 속에 걸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하루에 한 번 우리가 다 함께 걷는 순간들이 너무 좋았는데, 침묵 속에서 걸으면서도 이웃집 강아지가 우리 행렬에 끼어서 맹렬히 달리며 기운 좋게 월월 소리치는 모습에 모두가 웃음이 터지거나, 스님이 다른 참가자의 손을 살포시 잡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순간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함께하는 고요함 속의 울림들은 내 안에 항상 큰 파동을 일으켰다. 



또, 걷기 명상을 할 땐 자연의 무수한 색과 결이 눈에 선명히 그리고 부드럽게 들어오는데 그 모든 장면을 찬찬히 바라보고 내 눈으로, 호흡으로 쓰다듬는 그 순간들을 겪는 동안에는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 더 가까워졌던 것 같다. 마침 봄이어서 막 돋아나오는 새순들과 봄꽃들은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지고 선명해졌다. 자작나무에서 새로 나온 이파리들은 동그랗게, 마치 막 지은 새둥지 같은 모양으로 가지 이곳저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었다. 처음엔 그 모습에 어리둥절했고 나중에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 새들이 새둥지로 착각하고 날아들 것만 같아 혼자 큭큭 웃음이 나기도 했다. 자연은 자꾸 나에게 자세히 보고, 상상하는 법을 알려준다. 자연스럽게.


피포와 피루엣


피포는 이웃집의 강아지로 걷기 명상에 참여한 명예동물친구인데, 3km 정도 그러니까 작은 강아지 다리로는 아주 많이 달려야 하는, 먼 곳에 사는 이 작은 강아지는 자꾸 플럼빌리지에 놀러 온다고 한다. 힘이 어찌나 넘치는지 쉴 새 없이 짖고 여기저기 총알처럼 달려 다니는 피포를 보면 자꾸 웃음이 났다. 그리고 내 파트너가 생각났다. 갈 때 써준 편지에서 자기나 스톡홀름에 대한 건 다 잊어버리고 여기서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라는 그의 말이, 걷기 명상 중 또 잡념에 빠진 내게 힘차게 월월 소리치는 피포를 통해서 다시 상기가 되었다. 


고양이 피루엣은 Lower Hamlet이라고 내가 지냈던 곳보다는 조금 더 큰 공동체에 사는데 우리가 틱낫한 스님이 계셨던 Upper Hamlet에 가는 날 참가자들과 함께 Lower Hamlet에서부터 함께 걸어왔다고 한다. 이 천연덕스러운 만사태평 아기고양이는 우리가 명상하는 동안 화분 위에 올라가 낮잠도 자고 개구리도 쫓아다녔다. (내가 이걸 아는 이유는 중간에 너무 졸려서 잠시 땡땡이를 쳤다는 건 비밀...) 


피루엣도 피포도 우리와 함께 걷기 명상을 했다. 그들은 우리가 뭘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조용조용 걷는가 하면 갑자기 뜀박질을 시작해서 딴생각에 빠지고 있던 우리들을 다시 이곳, 이 순간에 데려다 놓기도 했다. 틱낫한 스님에게도 이들이 좋은 동무가 되어줬지 않을까. 


스톡홀름에 돌아오고 나서

사실 집에 오고 나서는 첫 2-3번의 주말 아침 걷기 명상을 제외하고는 많이 수행하지 못했다. 마음이 바빠질 때 1-2분 걸은 게 다였을까. 하지만 이게 시작일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그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들이 생각나고, 나는 내 마음의 고향으로 잠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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