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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체 Feb 13. 2024

자두마을 사람들- 한국 시스터 편 1

시크한 그녀와 부드러운 스웨터

플럼빌리지에 갈 때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은 부분은 의외로 같이 일주일을 동고동락할 수행자들.

왤까. 돌이켜보면... 사람을 좋아하는 나지만 여기에 갈 땐 너무 피곤했었고 나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자는 마음으로 갔기에 좋은 친구를 만나면 좋겠다던가 어떤 영적 스승을 찾아야지라던가 그런 기대를 품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삶은 가끔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양팔 가득 안겨줄 때가 있다. 여기서 만난 자두마을 사람들은 그랬다. 산타는 없다고 믿는 아이가 아침에 눈을 떠 머리맡에 가득 쌓인 선물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지는 그런 느낌을 받게 해 줬다. 그 선물의 시작은 내가 만난 한국 시스터 두 분이다. 오늘은 그중 한 분과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인 입양아 미국인인 그녀는 사실 내가 플럼빌리지에 내려 처음으로 만난 시스터들 중 한 분이다. 그녀의 첫인상은 친절함 속에 군더더기 없고 시크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줬다. 우리가 묵을 방을 알려주고 차로 데려다준 그녀는 유유히 다시 차를 몰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날 명상을 마치고 요가수업이 있다고 하여 찾아간 블루문홀에는 그녀가 있었다. 단정하고 맑은 얼굴로 요가매트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비행기와 기차, 차를 번갈아타며 지쳤을 우리를 위해 몸을 늘리며 부드럽게 해주는 인요가 수련을 가이드해 주셨는데 요가를 지도하는 모습에서도 뭔가 멋있음이 묻어났다. 그래서 조금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이분은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여기서 수행을 하게 되셨을까... 그런 것들.


삼일 째. 그녀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한국인이죠? 하고. 본인은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되어 거기서 자랐고 스페인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한국에서도 요가 강사로 시간을 보냈다고. 그러고 나서 플럼빌리지에 왔을 때 여기서 수행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몇 차례의 재방문과 고민의 시간 끝에 이 결정을 하게 되었다는 것 같았다. 


오일 째. 봄의 남부 프랑스에 대비해서는 옷을 충분히 가져왔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나 보다. 바람이 찼고 가지고 온 옷을 다 입었지만 추웠다. 오전 일과 중에 조금 추워하고 있는데 "추워요? 옷 빌려줄까요?" 하고 물어보시기에 그러면 감사하겠다고 했고 그녀는 오후에 포근한 어두운 회색 스웨터를 내게 건넸다. 깨끗하게 입고 돌려드린다고 하자 그녀는 그럴 필요 없다고, 이제 너의 것이라고 했다. 이 스웨터를 입을 때마다 여기서 느낀 온기를 기억해 달라는 말도 덧붙이며. 


이곳을 기억할 유일한 방법은 있는 동안 열심히 찍고 그리고 쓰는 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플럼빌리지를 기억할 물건이 생겨버렸다. 스웨터는 보드랍고, 관리가 잘 되어있었고, 시스터들의 따뜻한 포옹 같았다. 


집에 돌아가기 전 보르도에서도, 추운 스톡홀름에서도 여전히 나는 그녀가 내게 산뜻하게 건네준 그 온기를 기억한다. 그 온기에 담긴 마음을 기억하고 곱씹는다. 


나는 그녀 덕분에 그곳의 향기, 색감, 온도와 더불어 보드랍고 포근한 감각으로도 그곳을 기억한다. 


시스터, 잘 지내고 계시나요? 저는 특별히 마음에 온기가 필요한 날에 이 스웨터를 꺼내 입습니다. 고마워요. 평안히 지내시고 계시기를.


그 날의 따뜻함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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