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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체 Oct 28. 2024

이스탄불에서 시민덕희가 되었다 1

당한 사람이 아니고 사기꾼이 나쁜 거야.

시민덕희를 보다.

스톡홀름에서는 가을마다 아시아 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는 서울의 봄과 명량을 포함해 한국영화가 서너 편 상영되었고 그중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라미란 배우가 주연인 시민덕희(citizen of a kind). 이 영화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으나 평범한 시민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중년여성이 보이스피싱 사기범을 잡는다는 플롯에 마음이 갔다.


덕희의 용기와 절박함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영화를 함께 본 모두의 눈가를 촉촉하게 했다. ‘당한 게 바보 같은 게 아니고 속인 놈이 나쁜 겁니다’라는 단순하지만 어쩌면 수치심에 가려 잊기 쉬운 이 사실을 내게도 타인에게도 항상 적용하자고 마음을 먹은 밤이었다.


25년 만에 돌아온 무해한 여행객에게 등장한 나쁜 놈

5박 6일 이스탄불 여행. 엄마와 나는 25년쯤 전에도 이곳에 함께 왔었다. 그때의 엄마는 젊었고 나는 어렸다.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젊었던 엄마에서 환갑을 지난 엄마 하지만 여전히 명랑하고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이곳에 다시 한번 올 수 있다는 사실에 출발하는 날 마음이 꽤 들떴다. 


공항에서 택시를 부르려는데 스웨덴에서 쓰는 Bolt가 안되길래 대안을 찾던 중 믿을만한 블로그에서 본 BiTaksi라는 앱을 발견한 것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터키의 카카오택시와도 같다는 말에 안심을 하고 다운을 받은 후 평소처럼 목적지 주소를 넣자 한 드라이버와 매칭이 되었다.


그는 우리에게 앱 메시지로 차를 주차해 둔 게이트 근처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우리를 보자마자 내 손에 들고 있던 수트케이스도 바로 대신 끌어주는 등 처음엔 그야말로 평범한 택시기사 청년이었다. 한 가지 차에 타기 전에 나를 조금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것은 분명 현대차가 온다고 했는데 이 기사가 가져온 차는 시트로엥이었다. 원래차는 정비를 맡겼겠지- 하고 탔다. 그게 시작이었다.


운전은 잘하는데... 뭔가 이상하다

사비하괵첸에서 시내로 나가는 길은 교통체증이 엄청났다. 20-30km로 달려야 하는 수준. 엄마와 나는 시간도 늦었으니 좀 눈을 감고 쉬려고 하는데 기사가 계속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중요한 통화겠지. 길을 보는 거겠지 하며 오버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스마트폰 두 대를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하며 (운전하면서) 메시지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이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이 와중에 차선변경도 잘하고 운전 하나는 잘하길래 이게 여기의 문화인가... 조금만 참자한 생각반, 말 시켜서 폰 좀 그만 보게 해야겠다는 생각반에 자꾸 궁금하지도 않은 질문들을 던졌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운전 중에 그렇게 계속 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통화를 한 것이 누군가와 작당을 하고 계속 작전을 짠 것일까? 그런 의심도 든다.


택시비의 반도 아니고 세배를 부르는 나쁜 놈

숙소 앞에 도착해서 요금을 내려는데 2360TL(한화 9만 원 정도)를 부른다. 분명 800-900TL정도가 나올 것이라고 앱에 나왔는데 그 세배를 부르니 기가 찼다. 아. 남편의 바가지조심하라는 말이 머릿속을 스쳤다. 왜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을까. 너무 비싸다고 우리가 알고 온 가격은 800-900TL라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자꾸 영어를 모르는 척하며 구글번역기에 자기가 할 만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이다. 망할 자식.  


긴 하루에 지친 우리는 말도 안 통하고 한국에서는 공항택시비로 9만 원이 아주 못 낼 가격은 아니니 일단 카드로 결제하고 나중에 앱을 통해서 컴플레인을 걸자는 생각으로 카드결제를 하려는데... 결제페이지에서 넘어가지 않길래 왜 이러냐고 보여줬더니 갑자기 앱을 밀어서 끄는 것. 여기서 한번 더 '뭐지?' 하는 싸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앱을 켜니까 갑자기 현금결제가 되었다고 뜨는 것. 내가 빨리 승인버튼을 안 눌러서 그렇던 다. 허 참.  


점입가경

이제 카드는 안되고 현금으로 결제를 해야 한단다. 우리는 현금이 없다고 하자 곤란한 척을 하더니 자기 폰에 깔린 카드결제 시스템으로 결제를 하란다. 그래서 금액을 확인하고 결제를 하는데 1339씩 두 번에 나눠서 결제하는 것이다. 그래서 왜 200리라를 더 붙이냐고 물었더니 카드 수수료란다. 현금으로 내지 않고 카드에 흔적이 남으니 그래도 다행이다 싶은 와중에 엄마카드사에서 온 문자를 보니 1339리라가 3번이 결제된 것. 


'what the...'


왜 세 번 결제가 되었냐 하자 자기 택시앱을 보여주면서 자기 통장에는 2600리라만 들어왔다고 계속 잡아뗀다. 밤은 늦어가고 주변에 사람은 없고 우리는 외국인이고.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엄마를 얼른 쉬게 해주고 싶었다. 온라인으로 각종 문의와 컴플레인 경험이 있는 나를 믿고, 카드결제내역이 남아있는 것을 믿고, 마지막으로 이 터키의 카카오택시라는(개뿔) BiTaksi를 믿고 일단 숙소에 들어가기로 했다. 


숙소에 들어왔는데 기분이 더러웠다. 오랜만에 온 이스탄불에서 처음 만난 터키인이 이런 인간이라니. 갑자기 여행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는 기분마저 들었다. 앞으로는 항상 긴장을 하고 다녀야 하나? 그런 걱정도 들었다.

 

그래도 다음날 일어나서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돈은 다 못 받더라도 기사에게 경고라도 주겠지. 그런 희망찬 생각과 동시에 '조금만 더 알아보고 오지 그랬어. 좀 더 신중하지 그랬어. 왜 엄마랑 왔는데 이런 일을 겪게 해.' 과일가게에서 산 달콤한 망고를 먹으며 이런 씁쓸한 생각도 했다. 덕희의 말을 기억하려고 애썼다. 


"당한 사람이 바보 같은 게 아니야. 속인 놈이 나쁜 거야." 


그래 넌 내가 결과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컴플레인을 걸어주마. 이를 갈며 간신히 잠에 들었다.


To be continued.

다음 날은 사실 더 고난도였다. 

30여 년 살며 생애처음으로 경찰서를 가게 되는데... 그게 서울에서도 스톡홀름에서도 구역만 리 떨어진 이스탄불에서 라니. 이 여행 참 재밌게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서에 간 이야기와 이 모든 과정을 도와준 은인에 대한 이야기는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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