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상상했던 공간이 눈앞에 나타날 확률(1)
가장 큰 미지수였던 동료들을 찾았으니, 이제는 우리의 그림을 걸어줄 공간을 찾을 시간.
너무 크면 부담스럽고 너무 작으면 세명의 그림이 다 들어갈 수가 없다. 시내에서 멀면 사람들이 오기 어렵고, 시내에 있으면 가격이 비쌀 것이고. 쉽지 않다! 처음엔 전시를 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저것 따져 보니 어디나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실 내 머릿속에는 완벽한 공간이 존재했다. 햇볕이 잘 들어 공간 자체에 따뜻하고 다정한 느낌이 깃들어있고, 세 작가의 그림이 조화롭게 나뉘어 같이 걸릴 수 있는 곳. 마지막으로는 그 공간자체의 성격이 우리와 맞기를 바랐다.
최초의 선택지
공간을 찾겠다고 결심한 후에 떠올린 대안이 두 가지 있었다. 아니... 있어 보였다. 한국 문화원에서 하는 선택지. 그리고 컬쳐스쿨에서 최근에 오픈한 작은 갤러리. 후자는 세명 이상이 모여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빌리면 대여비를 안내도 된다는 사실도, 위치도 좋았다.
문화원은 왠지 타국에서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 우리 젊은 작가들의 활동을 응원해주겠지 싶어서 승인이 날 것 같다는 기대를 했고, 다른 갤러리 역시 우리가 하려는 전시가 스웨덴에서는 꽤 특별하니 여기서도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까 했으나...
삶은 역시 맘대로 되지 않는다. 한국 문화원에서는 모든 행사는 1년 전에 계약하기에 안됨. 작은 갤러리에서는 이미 하반기 신청은 마감됐기에 안됨. 세상에?
이 두 공간을 전적으로 믿고 있던 터라 사실은 충격이 컸다.
이제 어떡하지. 엄청난 돈을 지불하고 전시를 하게 되는 건가.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동네에 있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하게 되나. 그런 불안감이 조금 일었다.
잘 생각해 봐
이 거절당한 시점은 여름휴가를 가기 직전. 이 문제를 휴가에까지 가져갈 수는 없다고 과감히 결정하고 잠시 내려놓았다. 휴가에서 돌아오고 나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생각을 했다. 아니 간절하게 생각을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예전 룸메의 친구가 시내에 스튜디오를 오픈한 것이 문득 떠올랐다.
혹시 모르니까 연락을 해보자 싶어서 7월의 금요일 오후 스튜디오 주인인 J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J, 오랜만이야. 나를 기억하는지... 우리는 이 년 전에 만났는데.... (이하 너무 길어 생략)'
'그래, 가능해. 월요일에 시간 돼? 12시에 스튜디오로 와서 얘기하자'
나의 장문의 메시지에 비해 그녀는 쿨하고 짧은 그러나 희망찬 답을 보내왔다. 공간도 안 봤고 계약서도 안 썼는데도 됐다! 하는 함성이 머릿속에 들렸다.
거절은 또 다른 시작
사랑이 끝나도, 직장에서 잘려도, 전시공간 대여를 거절당해도 우리에게 남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한 새로운 시작이라는 가능성이다. 첫 두 공간이 우리를 거절해 줬기에 J의 공간, 내가 줄곧 머릿속에서 그리던 공간과 일치하는 곳에서 우리가 준비한 것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다. 삶은 언제고 우리를 밀어내고 문을 닫기도 하는데 그건 다른 문을 두드려보고 새로운 방향으로 걸어가 보라는 작은 속삭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해를 거듭할수록 든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왜 이 공간이 꿈의 공간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사진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