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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체 Sep 19. 2020

스웨덴 서해안 여행기

01. 원하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이 떠들고 다닐 것

코로나, 그리고 여름 계획 


지난 3월 생각했다. '아 여름에 기차여행은 글렀구나.'라고. 



중국과 한국에서 코로나가 심상치 않은 형태를 보였으나 유럽은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자연재해도 피해 가는 북유럽은 특히나 더 괜찮지 않을까 하고 안일하게 생각했으나 마침 스웨덴에서는 스포츠 방학(Sportlov)을 맞이하여 대거의 스웨디시들이 이탈리아 북부로 떠났고 그 후 스웨덴 상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이퍼에서 공부하면서 매일이 즐거우나 동시에 전쟁 같았기 때문에 이번 여름은 누구보다 재밌게 보내리라 다짐하며, 같이 사는 친구 알리나와 기차로 말뫼, 코펜하겐을 거쳐 베를린을 갈 계획을 세웠었다. 베른하임도 가보고, 미술관이랑 갤러리도 마음껏 구경하고 여름의 베를린을 느껴봐야지 생각했으나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사태의 심각성을 빠르게 깨닫고, 그렇다면 여름에는 도대체 뭘 해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 베를린에 가기 전에 한국에서도 잠깐 시간을 보내고 오려했으나 역시 갈 수 없고 그렇다면 내 앞에 놓여있는 답은 딱 한 가지였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뭘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는 물론 천차만별이다. 친구의 여름 별장에 놀러 갈 수도 있고, 로드트립을 갈 수도, 하이킹을 가서 캠핑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치, 예산, 면허 무소지,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오는 스트레스 등등의 문제로 6월이 점점 다가오는데 나와 내 친구 루바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떠들고 다니자, 동네방네 얘기하자


6월 초 루바와 함께, 비즈니스 프로그램을 듣는 일본인 쥰상을 만났다. 우리가 평소에 좋아하는 멕시칸 타코집 라네타(LaNeta)에서 저녁을 먹으며 평소와 같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여름에 뭐할 예정이냐는 얘기가 나왔다. 나와 루바는 어떤 형태로든 스웨덴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은데, 코로나도 그렇고 예산이나 여러 가지 것들 때문에 아직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쥰상이 하는 말.


우리 반 친구 중에 말리라고 퀘벡 출신에 자연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친구가 있어. 이번 여름에 밴을 개조해서 여름 내내 로드트립을 갈 건데 컨텐츠를 만들고 싶어 하거든? 너희랑 서로 원하는 게 잘 맞을 수도 있겠다. 연결해줄까?


우리의 대답은 당연히 'OF COURSE!!!!'였고, 그는 속전속결로 우리에게 말리의 연락처를 넘겨주었다. 하이퍼 첫 주에 잠깐 통성명만 한 그녀는 키가 크고, 웃는 모습이 예쁘고 맑은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말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캐나다 출신에 비즈니스 프로그램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 밖에는 없었다.


산책,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간단하고도 건강한 방법


연락처를 받고 다음 날 우리는 말리에게 연락을 했고 우리는 말리가 잠시 친구 집에서 지내고 있는 롱홀멘(Långholmen)이라는 시내 한복판의 작은 그린 오아시스 같은 이 섬에 있는 까페에서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정했다.


이슬비가 내리는 어느 오후 우리는 롱홀멘의 까페 앞에서 만났다. 핫초콜렛을 마시며 아늑하게 까페 안에서 얘기하려던 우리의 기대를 또 무참하게 져버리고..(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안된다 2) 까페는 문을 굳게 잠그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이 귀엽고 아담하지만 나무가 울창한 이 섬을 산책하며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이건 우리 여행의 맛보기였는지도 모른다. 아늑함대신 자연에서 계속 몸을 움직이며 소통하는 것. 


캐나다, 퀘벡 출신의 그녀는 큰 호숫가 근처에서 자랐고, 부모님이 자연을 사랑하셔서 어릴 적부터 자연에서 놀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당연했다고 한다. 자연에 대한 관심은 쭉 이어져 생물학을 대학에서 공부하게 되었고, 스웨덴에서는 전공 관련 Ph.D를 하다가 그 분야에 비즈니스를 접목시키고 싶어서 하이퍼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의 여름 플랜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원래는 노르웨이 국립공원에 가서 가이드로 일을 하며 사람들에게 노르웨이의 자연을 보여주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으나, 코로나가 터지며 노르웨이로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번 여름을 집에서만 보내야 한다면, 집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서 자연에서 보내면 어떨까?'  


그녀는 속전속결로 스웨덴의 중고거래 사이트인 블로켓(Blocket)에서 작은 캠핑카로 쓸 수 있는 밴을 알아보기 시작해, 중고로 밴을 샀고 스스로 내부를 헐고 그 후에 전기공, 목수를 만나 차 내부를 개조하고 차 지붕에는 태양전지판을 달았다. 


말리의 계획은 7월 중순 서해안에서 1-2주 시간을 보낸 뒤에 북쪽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동해안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라고 했다. 여행 얘기를 하며 스웨덴 웨스트코스트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나와 루바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럼 말리가 서해안 여행을 하는 동안 합류를 하면 되겠다.' 하고. 


한 시간 정도의 산책을 마친 후, 비 온 뒤의 공기를 마셔서 그런지 머리는 맑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여행에 대해 얘기하는 열띤 대화로 마음은 들떠있었다. 산책은 새로운 친구를 알아가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필요한 건 두 다리와 걷기 좋은 공원뿐. 


일단 가기로 하고,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해


텐트가 있든 없든, 캠핑을 제대로 가본 경험이 없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 예측도 할 수 없어도 괜찮다. 하이퍼에서, 28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배운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무조건 붙잡을 것.' 


밴으로 2-3개월간 여행을 다니며 그 과정을 영상과 사진으로 남겨 컨텐츠를 공유하고 싶은 말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출발 2주 전 어느 화창한 날 공원에 앉아(누워) 그녀가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만든 셀프 브랜딩 프레젠테이션을 꼼꼼히 읽고 나서 우리의 아이디어, 레퍼런스를 공유했다. 


침낭만 어떻게든 구해서 가져오면 자기가 잠자리와 교통은 해결해줄 테니 꼭 오라고 했다. 페이스북에 우리의 계획을 적고 침낭 두 개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린 후 정확히 출발 일주일 전 천사 같은 친구가 침낭을 선뜻 빌려주었다. 침낭도 로드트립을 가고 싶을 것이라며. 


기회는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찾아내면 된다. 차를 타고 셋이서만 다닐 수 있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자연을 잘 아는 친구에게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그렇다. 하고 싶은 것,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항상 떠들고 다닐 것. 남이 초대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먼저 가도 되는지 물어볼 것. 2019년의 모토였던 'Invite yourself'는 2020년에도 쭉 이어진다. Invite yourself, Invite yourself, Invite your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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