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마을의 축제인 분수 음악회가 열렸다.
화려한 조명 빛을 받은 분수대의 물줄기가 음악에 맞추어 이리저리 몸을 흔드는 것이 꼭 춤추는 발레리나 같다. 희뿌연 수은등 불빛을 쫓아온 불나방들도 흥에 겨운 듯 날개를 비비대며 사랑의 춤을 추고 있다.
무대 위에서는 가수들이 열창을 하고 열대야를 피해 공원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 노래에 맞추어 어깨춤을 추며 이웃들과 담소를 나눈다.
어린 시절 변변한 놀이터 하나 없는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소꿉놀이나 공기놀이가 전부였던 내가 화려한 외모의 배우들이 직접 나오는 예술 공연을 처음 본 것이 여성국극이다. 전 국민의 심금을 울리며 가는 곳마다 갈채를 받던 여성국극이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 가던 무렵 전국의 시골마을을 돌며 공연을 했는데, 그건 나에게 행운의 선물이었음은 물론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였다.
연극의 한 장르인 여성국극은 판소리를 바탕으로 국악과 기악. 무용과 같은 전통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국극의 레퍼토리는 야사, 설화, 전설을 사랑과 이별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멜로드라마인데 한국인의 정서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공연이 있는 날은 마을 사람들 모두 이른 저녁을 먹고 무대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서둘러 공연장을 찾았다. 공연장이라야 노천에 가설무대를 만들고 바닥에는 가마니를 깔아놓은 빈약한 것이었지만 그 날은 마을의 축제일이었다.
한국의 뮤지컬 혹은 오페라라고 할 수 있는 여성 국극은 여성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창극이다. 배우들의 특이한 분장과 화려한 의상, 여성 특유의 섬세한 연기와 애절한 가락이 심금을 울렸다. 남장을 한 여자배우는 박력 넘치는 칼싸움으로 영웅적인 남자 역을 연기하고 그 남자 역의 배우를 향해 여성관객이 황홀해 하며 오빠부대를 만들었다.
여성국극이 인기절정을 누리던 5,60년대는 TV가 없던 시절이라 관객들의 열기 또한 대단했다. 만삭이 된 임산부가 공연을 보러 왔다가 극장 안을 채운 관객들 때문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공연도중 애를 낳았을 정도로 공연장은 언제나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다.
예나 지금이나 스타들을 쫓아다니며 극성을 부리는 팬들의 열성은 변함없으니 작금의 십대들 행태가 이해되기도 한다.
어린 내 눈에 비친 『호동 왕자와 낙랑 공주』의 이야기는 너무 슬펐다. 낙랑에는 적군이 침입하면 스스로 울리는 북과 나팔이 있었다. 낙랑공주는 고구려 왕자인 호동의 달콤한 말에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살고 싶어 조국을 배신하고 그 북을 찢고 만다. 분노한 낙랑공주의 아버지 최리는 자신의 딸을 죽이고 어쩔 수 없이 고구려에 항복하게 된다. 서로 깊이 사랑하던 두 사람은 얽힌 정치권력의 희생양으로 목숨을 잃고 만다.
무대 정 중앙에 놓여있는 커다란 북을 낙랑공주가 울며 찢은 뒤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어린 나는 울었다. 나뿐만 아니라 가마니 위에 쪼그리고 앉아 연극에 취해 무아지경에 이른 마을 사람들 모두 울었다.
공연이 끝나는 시간은 늘 어두운 밤이었다. 부모님이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 자매는 친구들과 함께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운동장은 드넓은 우리들의 무대였다. 나는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인당수에 뛰어들어 연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심청이가 되기도 하고, 오른손에 나뭇가지를 높이 치켜들고,
“낙랑공주 나를 용서하오, 내 이제 사랑하는 그대를 따라가오.”
하며 가슴을 깊이 찔러 자결하는 호동 왕자가 되기도 했다.
조명등처럼 밝은 달 속에는 계수나무 옆에서 떡방아를 찧던 토끼가 박수를 치는 것 같았고 반짝거리는 별은 폭죽이 되어 우리들의 머리위로 쏟아졌다.
연극공연이 너무 보고 싶던 스무 살 늦은 여름, 신문을 통해 알게 된 연극을 보기 위해 토요일 오후 서울 행 버스를 탔다. 명동성당의 야외 공연장에 앉아 야간공연을 보았는데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 꾸벅꾸벅 졸았다. 내용도 배우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계단의 시멘트 바닥에 앉아 추위에 떨며 보았던 그 시간의 뿌듯함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예술의 여러 부문에서 공연문화가 대중화되어 있는 근래에도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는 좋은 무대를 접할 기회가 흔치 않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거주하는 곳에는 동계올림픽이 열리면서 아주 멋진 공연장이 들어섰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피아니스트 조성진, 뮤지컬 팬텀, 러시아발레단의 발레공연 등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공연들이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얼마 전 여성국극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배우들과 전문가들이 발 벗고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련한 향수로 남아있는 그 무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풍요로운 환경에서 스마트폰이라는 차가운 기계와 대화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허름하게 지어진 노천무대에 조금은 괴기스러운 분장을 하고 목청을 높이며 땀 흘리는 그들의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 무대 위에서는 합창단원들이 마지막 곡을 부르고 나의 팔엔 극성스런 모기들이 달려든다. 깔고 앉았던 신문지를 주섬주섬 치우노라니 가설무대 앞 가마니 위에 앉아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무대를 열심히 바라보던 어린 내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