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뭇잎이 어우러지지 못하고 고독하게 홀로 피는 꽃 목련,.
하얀 봉오리들이 저마다 고개를 들고 그리움으로 하늘을 우러르다간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 버리는 목련이 피는 따뜻한 봄날 오후가 나를 유혹했다. 홀로 있길 좋아하는 나의 성향 탓인지 고독해서 순결해 보이는 목련이 필때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목련을 찾아다닌다
어제만 해도 제법 쌀쌀한 날씨였는데 봄 향기에 취해 조금 길다싶게 돌아다녔나 보다. 밤이 되자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두통이 심해졌다. 밤새 뒤척이다 잠을 설친 몸으로 출근을 했다. 퇴근 후 파김치가 되어버린 몸을 끌며 현관문을 들어서니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아이가 앞치마까지 두르고 새색시 마냥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스렌지 위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것을 컵에다 옮겨 담는다.
"아빠가 엄마 목 아프다고 큰댁에서 말린 모과를 가지고 오셨기에 끓였어요. 드시면 목이 하나도 아프지 않을 거예요."
백설공주를 도와주는 일곱 난쟁이 마냥 남편은 청소기를 돌리며 집안을 돌아다니고 딸아이는 주방에서 분주하다. 마냥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아이로만 생각했었는데 비 내린 다음날 성큼 자라버리는 들풀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딸아이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법석을 떨며 준비한 식사를 마치니 저녁 내내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며 시중들던 딸아이가 고무장갑을 낀다.
"저녁 설거지 제가 할게요, 엄마는 쉬세요."
못이기는 척 침대로 슬며시 몸을 들이밀었다. 전기장판 코드를 최고로 올려 놓고 베개에 머리를 깊숙이 묻었나 싶었는데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잠결에 어렴풋이 이불을 목 언저리로 끌어올리며 다독거리는 손길이 느껴져 눈을 뜨니 딸아이가 쌍화탕을 데워서 나를 보고 먹으라고 한다.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아 사랑스런 딸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언젠가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6시간 정도 걸리는 대수술이어서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 근심과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완벽주의자인 어머니를 간호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동안 제 가정 돌보는데 바빠 부모에게 무심했던 자신이 죄송스러워 나는 그 일을 자청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성품을 닮은 언니보다 당신의 성품을 더 닮은 나를 어렸을 때부터 믿고 좋아했다. 비슷한 성격 때문인지 모녀지간에 상처도 많이 주었지만 어머니는 수술 후 입원기간 동안 내가 간호해주길 은근히 바라시는 것 같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수술 후 위까지 삽입한 L-튜브가 문제였다. L-튜브를 제거한 후에 어머니의 목소리는 심한 허스키처럼 변해버렸고 목의 통증을 호소했다. 의사들은 희박하지만 간혹 수술 후유증으로 그런 환자들이 발생한다고 하며 별 조치를 취하지 못했고 이비인후과에서 여러 번의 검사와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자 어머니의 화살은 나에게로 돌아왔다.
며칠 밤을 간이침대에서 잠을 설치며 간호하던 나는 차츰 지치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신경질과 짜증이 도를 넘어 점차 심해지자 수술 전에 가졌던 어머니에 대한 애끓는 마음은 사라져 버리고 어머니가 중환자라는 사실조차 망각한 듯 나도 같이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수십 년 전 11월 눈 내리는 밤 어머니는 심한 하혈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의료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시골병원이었다. 통행금지 해지를 알리는 싸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는 시간, 나는 제왕절개 수술로 예정일보다 너무 일찍 세상에 태어났다. 인큐베이터하나 없는 시골 병원, 생사의 갈림길에서 부모님과 의사가 겪었을 갈등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산모와 태아 두 사람 모두를 살릴 수 없을 정도로 위급한 상황이었으니까.
돌아보면 부모님의 따사로운 손길과 희생 없인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렇게 자란 내가 단 며칠 고통스러움을 호소하는 어머니의 행동을 이해하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엄살을 피운 걸 생각하면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가벼운 감기 몸살인 나에게 베푸는 딸아이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행동을 보니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죄스러움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옛 성현의 글에 부모님께 효도를 하려고 하니 이미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계시지 않더라는 말씀이 있다. 오늘 따라 이 글이 왜 이리 가슴에 깊이 와 닿는지,
내일은 혼자가 아닌 딸아이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목련화를 보러 가야겠다. 삶은 홀로 고고한 것보다 어우러짐으로 함께 걸어가는 것이 진정 행복한 것임을 깨달으면서 봄의 선물인 모든 꽃들을 사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