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행운목이 꽃 피우는 날을 기다리며
죽음을 의식하고 사는 삶, 그리고 자유 여행처럼 사는 여정
-어른의 말 中-
며칠 전, 아주 묘한 경험을 했다. 거리를 걷다가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어머니를 본 것이다. 이미 돌아가신 지가 이십 오 년이나 지난 어머니를 북적이는 행인들 속에서 보았다니…, 화들짝 놀라 뒷걸음을 치며 두리번거리는데,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 가게 유리문에 어머니가 아니, 내가 서 있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데 예순여섯의 어머니는 오랜 투병 끝에 장작처럼 마른 몸이 되어 삶을 놓았다. 까다롭고 자존심이 강했던 어머니는 당신이 떠날 시간을 미리 아셨는지 돌아가시던 날 아침 아버지에게 온몸을 깨끗이 닦아 달라 하셨다. 그리곤 병실의 시트와 베개를 치우고 하얀색에 작은 꽃들이 수 놓인 새 베개와 이불로 마지막 길을 준비하셨다.
열아홉 어린 나이에 가난한 칠 남매의 외아들에게 시집온 어머니는 남편이 군대에 가 있는 몇 년 동안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다. 엄한 시어머니와 철없는 시누이들 속에서 조밥 한 공기를 놓고 어린 아들과 서로 미루다 함께 굶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내가 철이 없어 그랬지, 굶더라도 자식 입에 밥을 넣었어야 하는데” 하며 지난날을 후회하기도 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불길한 일을 겪었다. 결혼하던 해 내 집에 들어와 가족처럼 함께 지내던 행운목이 두 번째 꽃을 피웠다. 평생을 키워도 단 한 번 꽃 피는 것을 보기 힘들다는 행운목이 기특하게도 두 번씩이나 꽃을 피우기 위해 꽃대를 쭉 내밀었다. 처음 꽃이 피었을 때 어머니와 함께 기뻐하던 모습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다. 하얗고 작은 꽃들이 무수히 모여 진한 향기를 내뿜는 것을 바라보며 병원에서 투병 중인 어머니가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는 행운이 올 것만 같아 몹시 기뻤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던가. 잎사귀 사이로 쭉 뻗은 꽃대가 천정에 닿아있어 그것이 부러질까 봐 조심하며, 화분 받침대를 낮은 것으로 교환하다 그만 꽃대가 반으로 딱 부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심장이 내 몸을 빠져나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것 같았다. 그날은 종일토록 짙은 안개속에서 길을 잃은 아이 마냥 불안에 서성거려야 했다.
일요일 새벽 급한 마음에 버스를 타고 어머니가 계신 서울의 병원으로 달려갔다. 버스가 대관령에 올라서자 안개와 가랑비가 시야를 가리더니 횡계를 지나면서 갑자기 장대비로 변해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워졌다. 이 모든 일들이 나에게 닥쳐올 불행의 전주곡 같았다.
병실 문을 급히 열고 들어서니, 며칠 사이에 더욱 야윈 어머니가 자궁 속의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침대 모서리에 누워 있었다. 양수에 몸을 맡긴 듯 편안한 그 모습을 대하니 왠지 모르게 선뜻 다가갈 수 없었다. 귓불이 유난히 하얗게 야위어 있어 가슴언저리가 덜컹 내려앉았다.
다른 날 같았으면 물수건으로 어머니의 얼굴과 손발을 닦아 드렸을 텐데, 그날따라 나는 침대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만 할 뿐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어머니의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하고 강릉으로 내려왔다. 그것이 살아계신 어머니를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가끔은 <그때 행운목의 꽃대가 부러지지 않고 꽃이 활짝 피었다면 지금도 살아계실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머니는 친구들과 해맑게 뛰어놀 나이인 일곱 살에 모친을 여의고 혈육이라곤 하나뿐인 오빠와는 6.25 전쟁 때 헤어진 후 의모 밑에서 사랑을 모르고 외롭게 자랐다. 자식 딸린 홀아비에게 처녀 시집을 온 의모는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계모 허 씨만큼은 아니더라도 두 모녀사이가 원만하지는 않았었는지 얼마 후 어머니는 이웃에 있던 큰댁에 가서 살게 되었다.
혼인을 앞두고 돌아가신 모친을 그리워하는 딸의 마음을 알았는지 의모는 집에서 예쁘고 고운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방안 가득 솜을 깔아 놓고 원앙금침을 만드는데 품앗이 온 동네 아주머니의 어린 아들이 그만 이불에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그런데 의모는 새 솜을 틀어 이불을 만들지 않고 오줌이 묻은 솜을 그대로 사용하여 새색시의 이불을 만들어 주었다. 열아홉, 아직 어린 여자아이였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도 아프다.
어머니는 이야기하길 좋아하셨다. 또한 언어를 잘 요리하여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상처와 질병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삶이 재미있거나 아름다운 것으로 변하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주제가 대단하거나 유명한 고전들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모두들 깔깔 거리며 웃거나 진지하게 귀를 쫑긋 세우곤 했다.
어머니의 삶은 매년 꽃을 피우지 않고 오랫동안 준비한 후 꽃을 피우는 행운목을 닮았다. 몸이 아프니 삶 속에서도 늘 죽음을 생각했을 엄마, 평생 자신을 위한 자유로움이나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을 나의 엄마, 고단한 삶 가운데 유일한 낙은 아마도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집 행운목이 꽃을 피운 지 벌써 16년이 되었다. 해마다 봄이 되어 온갖 꽃들이 피어 날 때면 나는 매일 아침 행운목의 긴 잎을 닦아주며 속삭인다.
“올해는 꽃을 피워줄거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