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창고>와 그녀

by 세헤라자데

반짝이는 북두칠성 아래 홀로 서 있는 통나무로 만든 카페 <창고> 는 칡흑 같은 어둠속에서 창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줄기만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는 친구의 송별회 날이었다. 자정을 넘기고서도 서로들 헤어지기 아쉬워 머뭇거리는데 한 친구가 말했다.

"기억하니? ㅇㅇ. 고향에 홀로 내려와 카페를 한다는데 우리 거기로 갈까?"

미술을 전공한 그녀가 손수 인테리어 했다는 실내는 촛불과 마른 장미꽃이 어우러져 한 점 그림을 연상시켰다. 진흙으로 빚은 커다란 페치카에서는 통나무가 불똥들을 날리며 활활 타오르고, 어두컴컴한 실내엔 아련히 느껴지는 촛농 타는 냄새 사이로 촛불들의 그림자가 하늘대고 있었다.

대학교 재학 중 한 남자를 만나 학교를 중퇴한 뒤 소식을 끊었던 그녀가 3년 전쯤 고향에 홀로 내려와 카페를 차렸다는 것이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의 전부였다. 무심한 표정과 수수한 옷차림에 속삭이듯 이야기하는 그녀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너무나도 당당하고 세련되어서 숫기 없던 나를 질리게 하던 그녀의 모습은 간곳이 없다.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운 눈매만이 마흔 넘은 그녀의 나이를 짐작케 해주었다.


베일에 싸인 만큼 고통스러웠을 그녀의 과거에 연민이 느껴졌다. 사춘기를 보내면서 나는, 인생이란 원하는 대로 완벽하게 살아갈 수도, 또한 꿈을 마음껏 펼치면서 살아가기도 무척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한 여름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혀주는 외형적인 부채가 아닌 내 마음의 열정을 다스릴 풀기 빳빳한 부채를 가슴속에 간직하기 시작했다.

드러나진 않지만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누구나 자신만의 비법을 가슴속에 하나씩 숨기고 살아간다. 열정적인 삶을 살고 싶었던 나와 현실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내면의 싸움에서 평탄함을 원하는 마음속의 부채바람이 너무 강했나보다. 지금은 그저 그런 평범한 여자가 되어버린 나 자신을 볼때마다 후회스러울 때가 많다.

그 밤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나처럼 자신만의 부채를 간직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이 한결 따뜻해졌다. 세월은 우리들에게 현명함과 느긋함을 선물로 준다. 또한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뒤돌아보며 다독거릴 수 있는 힘을 주는 스승이기도 하다.


외로운 섬을 지키는 등대 같은 카페 <창고>와 그녀는 닮은 꼴이다. 이곳이 그녀의 상처를 보듬어 주었듯이 이젠 지친 영혼들의 안식처가 되었으면 한다. 그 날 밤 나는 마흔 고개를 막 넘긴 그녀의 앞날이 매일 매시간 햇빛 부드럽고 향기로운 가을 날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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