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하얀 가운

by 세헤라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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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입학하는 딸아이를 데리고 미용실에 다녀왔다. 나를 닮아 곱슬머리인 아이는 친구들이 한 매직파마를 보고 찰랑찰랑 흔들리는 그 파마머리를 하고 싶다고 며칠을 졸라댔다.

이제 막 볼에 젖살이 빠지면서 제법 숙녀 티가 나는 딸아이가 파마기구를 두르고 있는 모습 위로 일곱 살 된 계집아이가 오버 랩된다. 목에 예쁜 천을 두르고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소녀의 뒤로 흰 가운을 입은 아버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각사각' 가위로 머리를 다듬어 주고 있다.


나의 고향은, 지금은 동해시로 지명이 바뀐 묵호라고 불리던 곳이다. 6,70년대의 묵호(墨湖)는 석탄가루가 날리는 작은 항구도시였다. 기차역 철로 주변으로는 산처럼 높이 석탄가루가 쌓여 있었다. 바닷바람이라도 심하게 부는 날이면 온 마을은 묵향이 번지듯 검은 가루로 덮여갔다.

늘 고단한 삶을 살아가던 고향사람들, 갯가사람들의 특징이라 할 거칠음과 무뚝뚝함 속에서 느껴지던 묘한 서글픔. 이제는 생동감마저 잃고 을씨년스럽게 변해 버린 그곳에 나의 아버지가 망부석처럼 살고 계신다.

중학교 시절 내 책갈피에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가슴정도까지 찍은 남자의 옆모습 사진. 언젠가 친구가 그 사진을 보곤 "너의 아버지 의사 선생님이니? 너무 멋지다." 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미처 대답을 하지 못한 그 다음부터 나는 아버지가 의사이길 바랬다. 마음 한 구석에 '아버지는 왜 의사가 되지 못하고 이발사가 되었을까?' 하는 원망이 일었다.



어렸을 적에는 늘 "이 다음에 자라면 아빠랑 결혼할거야"라며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는데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를 둔 친구들이 부러웠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버지가 졸지에 미움의 대상이 되어 나를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외모를 중시하는 세태의 흐름에 따라 젊은 남성들이 미용실을 찾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대던 「우리 이용소」가 황혼을 맞이한 것이다. 미장원에 밀려 사양(斜陽)길에 접어든 이발소에는 간간이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을 빼면 장기나 바둑을 두는 친구 분들로 채워졌다. 아버지의 일터는 점점 노인회관으로 변해갔다.

"나이가 들어서도 일이 있어야해. 일손을 놓는 순간 늙어 버리는 거야." 라며 자식들의 만류에도 고집스레 일을 접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늘 병치레를 떨치지 못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간판을 내렸다. 생의 마지막 책임을 다한 것이었을까?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나는 비로소 의사의 수술용 가위가 아닌 사랑이 깃 든 이발사의 가위가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이었던가를 깨달았다.



풀밭이나 뜰에서 들리는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가을을 재촉하면, 퇴근 후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영화관엘 다니곤 하셨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낡은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 뿌연 담배 연기 속으로 희망처럼 쏟아지는 영사기 빛줄기를 따라 펼쳐지던 또 다른 삶의 파노라마, 그때 보았던 쓸쓸함이 깃 든 아버지의 눈빛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잘 생긴 외모와 선량한 심성으로 마을에서 배우 최무룡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날개를 활짝 펴고 화면 속으로 훨훨 날아가고 싶지는 않았을까?

아버지는 친구들과 술이라도 거나하게 드시는 날이면 양손에 과자봉지를 들고 들어와 잠든 우리들의 얼굴을 비비곤 하셨다. 알싸한 술 냄새와 함께 까슬한 수염자리가 얼굴에 닿으면 따갑다고 밀어내곤 했는데 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며 과자봉지를 머리맡에 놓아두었다.

그 날 밤, 터울이 많이 나던 오빠를 제외한 우리 남매들의 행복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밤새도록 서로 눈치를 보며 몰래 일어나 살금살금 과자를 하나씩 꺼내 입안에 넣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오물오물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 머리맡에 남아 있는 빈 봉지들을 보며 깊이 잠들어 그 놀이에서 빠진 누군가는 내내 훌쩍였다.

잠을 설쳐가며 몰래 먹던 그 맛을 잊지 못해 나는 가끔 건빵을 사먹는다. 무지개 빛 별 사탕이 들어있는 건빵은 유년의 행복한 그 순간으로 나를 데려다 주는 타임머신이다. 나와는 달리 달콤한 초코렛과 비스켓에 입맛이 들린 두 아이는 맛있게 먹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떨떠름한 표정으로 쳐다보곤 한다.



결혼을 하고 집을 떠난 얼마 후 아버지의 가운을 본적이 있다. 기억 속의 그 옷은 늘 백옥같이 하얀색이었는데, 아버지가 입고 계신 옷은 당신의 얼굴과 팔에 핀 육신의 꽃인 검버섯처럼 검은 염색약이 여기저기 묻어 있고, 색깔 또한 누렇게 변해있었다. 야윈 아버지의 몸처럼 낡고 바래버린 가운은 이미 옷이 아니라 아버지의 또 다른 분신이었다

처마 밑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들려오던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와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내 머리를 예쁘게 다듬어 주시던 아버지의 손길이 오늘따라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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