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울고 있다.
부서진 자주색 엘란트라의 핸들을 끌어안고 쓰다듬는 손길이 애처롭다. 그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의 주검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토해내는 여인을 닮았다.
얼마 전 묘한 전화 한통을 받았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당황한 듯 흥분해 있었다. 평상시처럼 나는 “다치신 곳이 없어 다행이네요. 차는 망가진 상태가 너무 심해 수리가 불가능하니 폐차를 시켜야 합니다. 그러니 내일 회사로 서류를 가지고 오세요.” 하며 통화를 마쳤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전화를 걸어 와 정말로 고칠 수 없겠느냐며 슬픔이 배어 있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묻고 또 물었다.
자동차 정비공장 사무실에 근무한 몇 년 동안 더 이상 운행이 불가능해 폐차장으로 간 차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지만, 망가진 중고차에 그렇게 애착을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어서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음 날 새벽부터 눈이 내렸다. 유리창 너머로 흩날리는 눈꽃송이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불러일으켰다. 그리움에 취한 듯 한 오후 시간에 자그마한 키에 총기 넘치는 눈빛의 예쁘장한 그녀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제와는 사뭇 다른 차분한 모습으로 서류정리를 마친 다음 그녀는 애마에게로 갔다.
부드러운 손길로 차의 내부를 쓰다듬으며 소지품들을 모두 챙긴 후, 발가벗겨 속을 드러낸 애마의 핸들을 끌어안고선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센치해져 있던 나에게 그녀의 순수하고 맑은 눈물은 내 가슴속 사랑의 심지에 불을 당겼다.
‘10년이나 된 중고차니 아마도 사연이 많을 거야,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이 남아 있는 차? 어쩌면 그 사람의 마지막 유품일지도 모르지’ 상상의 날개는 저 혼자 풍선처럼 부풀어 만 갔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특히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음으로 사랑을 이룬 연인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시리게 한다. 감성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인 나는 그 흔한 연애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중매결혼을 했다. 그래서인지 사랑이 주제인 드라마나 영화를 좋아한다. 때론 내용이 유치하고 작위적인 우연과 만남이 남발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사랑하는 연인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묘한 심리상태를 보며 나는 은근히 대리만족을 느낀다.
「에덴의 동쪽」, 「이유 없는 반항」, 「자이언트」 단 세 편의 영화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배우로 칭송 받고 있는 청춘의 우상 제임스 딘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슬픈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수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어떤 여자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던 그가 피어 안젤리라는 여배우와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제임스 딘은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흰 드레스를 입은 천사인줄 알았다고 고백했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 버린 열정적인 이십대 초반의 두 남녀, 이들의 사랑을 반대한 피어의 어머니에 의해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성격이 내성적이었던 딘은 그녀의 결혼에 충격을 받고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했다.
피어가 결혼 후에도 딘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자 그녀의 남편은 제임스 딘에게 찾아와 “피어는 내 아내이니 그녀를 잊어주시오. 그것이 그녀를 위한 최선의 길이오.” 라고 말했다. 남편에게 피어를 행복하게 해 달라고 부탁한 제임스 딘은 그 길로 자동차를 몰고 달리기 시작했다.
유난히 노을이 붉었던 1955년 9월 30일, 저녁노을 때문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제임스 딘은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차와 정면충돌했다. 촬영장에서 뛰쳐나온 지 정확히 20분 후, 스물네 살의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남겨두고 삶의 저편으로 떠나 버렸다. 딘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던 피어는 남편과 이혼하고 39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제임스 딘은 “빨리 살고, 일찍 죽는다. 그래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남긴다.” 라는 묘비명 아래에서 이제는 사랑과 평안을 찾았을까.
폭풍전야 같은 분위기에 압도되어 직원들이 서로 눈치만 보는데 드디어 그녀가 눈물을 추슬렀다. 애마를 뒤로하고 걸어가던 그녀는 다시 돌아와 한참을 차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바라보기를 두어 차례, 그녀는 돌아갔다. 우수에 잠긴 듯 한 그녀의 뒷모습은 청초한 한 송이 국화꽃으로 내게 다가와 긴 여운을 남겼다.
며칠 후, 소지품 몇 가지를 빠뜨렸다는 그녀의 전화가 왔다. 차는 이미 고철덩어리가 된 뒤였으므로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은 주유소에서 서비스로 주는 휴지, 쓰다 남은 화장품 샘플과 메모지까지 들먹이는 그녀의 행동이었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전화를 하여 사무실 직원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진실을 알기 전 며칠 동안, 나의 가슴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연인들을 생각하며 또한 그런 사랑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나를 동정하며 나름대로 슬픔에 빠져 지냈다. 그런 나를 배신한 그녀의 편집증적,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나의 아름다운 몽상을 산산이 부서뜨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물은 슬픈 사랑의 눈물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집착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