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유기

by 세헤라자데

일요일 오후 오랜만에 느끼는 느긋한 나만의 시간, 일없이 뒹굴며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보기에도 귀엽고 앙증맞은 강아지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요즘 공중파 TV에 어디 강아지만 등장하나, 보기에도 징그러운 뱀, 악어 등 각양각색의 동물들이 주인공이다. 돼지나 사자를 집안에서 자식처럼 키우며 한 침대에서 부둥켜안고 자는 모습 또한 비일비재하다. 어떤 때는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모호해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동화나라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얼마 전 출근길에서의 일이다. 봄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잎들이 너무 예뻐 무심히 바라보는데 바로 앞에 서 있는 소형 화물차 짐칸에서 이상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차체에 단단히 묶여 있는 굵은 밧줄이 작은 송아지만한 누런 개의 목을 겹겹이 감고 있고, 그 밧줄에는 붉은 피가 선명하게 배어있었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을 옭아맨 밧줄을 끊으려고 몸부림을 친 주둥이는 상처로 뒤범벅이다. 목에 밧줄이 감기는 그 순간부터 야금야금 조여 오는 죽음을 감지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렁그렁 눈물 고인 눈으로 나를 보며 누렁이가 하는 애원의 말을 차마 들어줄 수가 없었다. 개들 사이에도 족보가 있다더니 태어날 때부터 애완용이 아닌 보신용으로 태어난 개의 마지막 모습이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경제는 나날이 어두워지고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연일 가슴 아픈 사연들이 줄을 잇고 있다. 끼니를 굶는 아이들과 부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으로 내몰리는 동심들이 늘어만 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인간들의 동물에 대한 애착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요즘처럼 애완동물들이 호사를 누리던 때가 있었을까.

거리마다 애완용 가게와 병원이 즐비하고,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좋은 몫에는 빠짐없이 애완용 매장이 들어서 있다. 가격표를 들쳐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비싼 용품들이 수두룩하다. 온몸에 알록달록 염색을 하고 주인이 골라준 예쁜 옷을 입은 강아지, 때로는 주인과 강아지가 커플 티셔츠까지 입은 모습을 볼 수 있지만 내 눈에 비친 강아지의 얼굴에는 웃음이 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집 앞마당은 강아지들의 놀이터였다. 목욕을 자주 시키지 않아도 사랑스러웠고 대소변을 마당 구석 어느 곳에나 누어도 야단치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 종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흙 위를 뛰어다니다 낮선 사람이라도 지나가면 악을 쓰듯 짖어댔었다. 하지만 아무리 충성스럽고 믿음직스러워도 사람과 개가 한 상에서 밥을 먹고 한 이불에서 잠을 자지는 않았다. 그런데 애완동물을 가족처럼 소중히 여기는 요즘 사람들은 집안에서 강아지를 키우려고 끔찍하게도 소리를 내지 못하게 성대를 자르고 대소변의 뒤처리가 깔끔하지 않다고 꼬리까지 잘라버린다.


풍요로운 물질과 넘쳐나는 사람들 속에서도 현대인들은 고독을 뼈저리게 느낀다. 모든 것들이 개방된 것 같은 사회에서 사실은 우리 모두 마음을 굳게 닫고 살아감으로 외로움에 길들여지고 있다.

삶이 표피적으로 흐르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물질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되다보니 마음 둘 곳 없는 이 시대의 나그네들이, 충성심과 애정으로 똘똘 뭉쳐 순종하고 잘 따르는 동물들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것 같다. 애완동물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어쩜 고독한 현대인들의 본능적인 반응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여름 휴가기간이 긴 프랑스는 휴가철이 되면 거리마다 버려진 애완동물이 골칫거리라고 한다. 오랫동안 집을 비우게 되는 긴 여행으로 인해 애물단지가 되어버리는 애완동물들을 거리에 내다 버리고 여행을 떠나버린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 버리는 인간의 이중성이 잘 드러나는 예이다. 사람들이 떠나버린 텅 빈 도시의 거리에서 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던 동물들은 기다림에 지쳐 죽음을 맞이한다. 아마 그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자기를 버린 주인을 그리워하지는 않았을까.


집을 잃고 버림받아 거리를 떠도는 애완견들이 늘어간다.

“개 팔자는 뒤웅박 팔자?”

애견산업의 고급화에 따른 웰빙 바람으로 호사스럽게 지내는 애완견이 있는가 하면 경기침체로 인한 생활고로 버려지는 애완견도 있어 견공들의 처지가 대조를 이룬다. 버려진 애완견의 대부분은 다치거나 병든 상태이다. 책임감 없는 주인에게서 버림받은 그들의 아픔이 느껴진다. 버리는 주인이 있는가 하면 가난하지만 병든 그들을 거두어서 다시 보살피는 우리의 이웃들도 있다.


버려지는 동물들을 보면서 버림받는 우리의 아이들이 떠오른다. 미래의 희망인 어린 생명들이 하루 세끼 끼니 걱정을 하며 살아간다. 소년 소녀 가장들이나 거리의 아이들이 사랑 받고 대접받는 동물들을 보면서 느낄 절망감은 얼마나 클까, 동물보다 못한 대접을 받는 아이들, 사람보다 대접받는 동물들의 세상.

동물에 대한 사랑도 좋은 일이지만 그 애정을 어려운 이웃과 거리와 고아원으로 내몰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돌리는 것은 어떨까. 현대인의 질병인 외로움의 치료약은 말 잘 듣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사랑과 정을 서로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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