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어제는 장례식장을 다녀왔습니다. 삶과 죽음이 한 데 어우러져있는 그곳에서 슬픔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아내와 두 딸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오전 10시30분 38휴계소로 가는 도로 교차로에서 신호등을 받고 있었답니다. 아마도 따스한 봄 햇살이 차장으로 밀려들어 창문을 열었겠죠, 어쩌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노랑나비의 날개 짓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분 후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모른 채 코끝을 간지럽히는 아카시아 향에 취해 있었는지도 모르죠. 그 찬란한 봄날의 짧은 순간에 신호를 무시하고 중앙선을 넘어 달려오는 거대한 화물차를 보았을까요? 저는 생각합니다. 제발 노랑나비의 팔랑거리는 날개 짓을 보느라 그 차를 보지 못했기를...
남편과 딸들이 잔뜩 어질러 놓곤 썰물처럼 빠져나간 집안 여기저기를 치우다 전화를 받았답니다.
“사고가 있었습니다. 병원 응급실로 오세요.”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답니다. 워낙 건강하고 강인한 사람이라 그냥 조금 다쳤으리라 생각하고 간 응급실에서 의사가 남편의 머리를 봉합하고 있었답니다.
“여보 정신 좀 차려보세요” 하며 남편을 흔드는데 의사의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습니다. “사망하셨습니다.”
B,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은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닌가요. 따스한 손길을 나누며 헤어진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별은 늘 우리 곁에 머물러 있는 공기와 같은 것입니다. 어머니의 탯줄로부터 분리되는 그 순간부터 만남과 헤어짐은 일상이 되어 버렸죠. 하지만 제 생각에 모든 이별은 준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필요하죠,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그래도 질병으로 떠나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는 대신 본인이나 주변사람 모두에게 삶에 대해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그 시간이 너무 길어 지겹고 지친다 해도 이별 뒤에 오는 회환과 슬픔을 줄여주니까요.
B, 혹시 아시나요. 요즘 임종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답니다.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우리 사회에 웰빙이라는 말이 커다란 화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자는 것인데 그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제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참된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으니 좋은 현상인 것 같습니다.
그곳에서의 체험은 5시간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데 먼저 유언장을 작성한답니다. 그리곤 영정사진을 찍고, 수의를 입고, 나무로 만든 2미터가 채 안되는 관속에 입관식을 거쳐 10분 정도 누워있어야 한답니다. 그 짧은 10분 동안 공포감과 함께 온갖 생각과 후회에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구치는 눈물을 흘린답니다. 못으로 봉인하고 흙까지 뿌린다니 대단한 체험일 수밖에 없겠죠. 언젠가 당신과 함께 그 곳에 가서 저도 꼭 한 번 경험해보고 싶습니다.
B, 아주 젊었을 때부터 저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집안을 유독 더 정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생각하지요.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때 나의 흔적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무엇이라 말할까, 그래서 여행을 떠나게 될 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곳인 양 잠을 설쳐가며 온갖 것들을 정리 정돈 합니다. 덕분에 여행은 늘 피곤합니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나의 정신연령은 외형적인 겉치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유아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구나 하고.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요, 20대 초반의 저는 가위에 자주 눌리곤 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때였습니다. 염세주의와 허무주의에 접하면서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마음이 육신을 지배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었다지요. 그 시절의 저는 마음이 온전히 육신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가위에 눌리는 그 느낌이 혹시 죽음을 맞이할 때의 그것일까요?
사지가 얼어붙은 듯 꼼짝할 수 없고 온 몸이 땅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 살려달라고 입으로 소리치고 싶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 공포감, 오랫동안 그런 두려움에 빠져 있다가 손가락 끝이라도 살짝 움직여지면 온몸이 가위에서 벗어나게 되죠, 임종체험의 오동나무 관에서 나올 때 기쁨이 그 순간 같을까요?
삶에 너무 무감각해져 버린 저는 이제 가위 같은 것에 눌리지 않습니다. 이기적이고 현실적 존재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저도 이젠 변해야 겠습니다.
“한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는가로 평가된다.” 라는 말이 있듯이 저도 이제는 타인에게 나누어주면서 살아야겠습니다. 돈이나 명예가 남보다 많지 않으니 저에게 주어진 작은 재주로 해야겠지요.
B, 원고지 20장도 안되는 수필 한 편 쓰고는 백 리를 걸어온 것처럼 다리가 휘청거리고 입안엔 온통 혓바늘이 돋아난다고 고백한 어느 수필가의 글이 가슴에 맺힙니다. 그 힘들고 어려운 작업을 이제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려 합니다. 밤새 컴퓨터 앞에서 씨름하다 바라보는 희뿌연 새벽, 그 여명을 바라볼 때의 감동을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가슴 한 구석에 늘 찬바람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바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런 감동을 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B,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장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을 나누며 즐겁고 행복하게 서로를 아주 많이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이젠 더 이상 여행을 떠나면서 정리정돈을 하지 않을 겁니다. 나의 흔적은 나의 글임을 명심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