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이 무덥던 여름의 끝자락, 새벽공기가 유난히 차게 느껴진다. 삶과 죽음은 분리되지 않은 한 길임을, 태어나는 순간 이미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여정이 인생이라는 것을 늘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야위어만 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다.
2주일 전 병원을 퇴원할 때 보다 더욱 마른 모습이다. 어떠시냐는 의사의 말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식사도 잘하고 있으니 곧 회복이 되겠죠, 이번에 타 가는 약 먹고 괜찮아지면 이제 그만 와도 되죠?” 자신의 병명을 모르는 아버지는 곧 회복되리라 생각하시는 것 같다. 아니, 내색하지는 않으시지만 헐렁해진 웃옷 속에 감추어진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 듯 스친다.
등이 아프다며 바르는 물파스의 횟수가 점점 많아진다. “그냥 조금 쑤시는 구나” 하시던 아버지가 대화 중에 무심코 등이 대 송곳 여러 개로 막 찌르는 것 같다고 하신다. 자식들 걱정할까봐 통증을 숨기는 것을 느낀다. 이번 혈액 검사 결과 진통제 투여량이 하루 두 번에서 세 번으로 늘어났다. 아버지는 여전히 꼿꼿하시다. 짧은 식사 시간동안에도 여러 번 자리에 눕고 일어나기를 반복하지만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으신다.
아버지는 지금 인생의 긴 강을 거슬러 올라오느라 지친 몸을 누일 쉴만한 물가를 찾고 있다. 어깨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속으로만 삭이며 살아온 아버지, 지나온 길에 남겨진 흔적들을 뒤돌아보면 후회와 아쉬움이 왜 없을까만 담담하게 의사들에게 농담까지 던지는 여유로움을 보인다.
작년부터 살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워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자고 하면, 나이 들어 살찌면 혈압도 오르고 병이 온다면서 친구들과 함께 다이어트 중이시란다. 새벽에 운동 다니고 다시마와 버섯으로 만든 식품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살이 빠진단다. 평생 병원출입이 별로 없으셨던 아버지다. 늘 잔병치레를 하던 어머니는 그래서 아버지가 야속타고 했다. 나이 들어도 힘이 넘치는 아버지가 자신의 에너지를 다 빼앗아 간다면서.
컴퓨터 단층촬영, 의사가 손가락 끝으로 마우스를 톡톡 치자 모니터에 아버지의 몸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검은 꽃들이 여기저기 활짝 피어있다. 최첨단 동영상 기술은 상하좌우 어디든지 볼 수 있게 한다. 신기하기까지 하다. 의사는 그 꽃들이 아버지의 삶을 단축시킨단다. 언젠가 사진으로 본 종양의 모습은 세상 어느 꽃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장미를 그것에 비유할까. 사람들을 유혹해 아픔을 주는 독버섯처럼 그 꽃도 섬뜩한 두려움을 주었었다.
“산삼이나 상황버섯이 좋다는데 드시면 효과가 있겠죠?” 자식들의 걱정스러운 질문과 달리 의사는 덤덤한 어투로 “뭐 드시고 싶은 것 마음껏 드시고, 원하는 것 다 하시게 하세요.” 한다. 아무리 희망이 없는 환자라지만…, 의사에 대한 섭섭함에 명치끝이 통증으로 아려온다.
가시고기라는 물고기가 있다. 둥지 짓기부터 새끼들을 모두 떠나보내기까지 보름정도가 걸리는데 그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오직 새끼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는다. 주둥이는 헐고 화려했던 몸 색깔은 볼품없이 변해버리고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수컷은 그토록 애지중지 지키던 둥지 앞에서 홀로 숨을 거둔다. 며칠 후 둥지를 떠났던 새끼들은 죽은 수컷 주위로 모여든다. 새끼들이 둥지 주위로 모인 것은 자기를 위해 희생한 아비의 죽음을 슬퍼하기 위함이 아니라 아비의 살을 파먹기 위함이다. 죽어서까지 자신의 몸을 새끼들의 먹이로 주는 것이 바로 ‘가시고기’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라고 한다.
갑자기 아버지의 몸에 뿌리를 내리며 번져 가는 저 꽃들이 나와 내 형제자매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에게 큰소리로 야단맞은 기억이 없다. 언제나 야단을 치고 잔소리를 하는 사람은 어머니였고 아버지는 변함없이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산 같은 분이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별 말썽부리지 않고 무난하게 아니 흡족하게 잘 자라주었다고 자부하지만 어쩜 그건 자식들의 이기적인 생각인지도 모른다.
의학의 발달로 인해 사람 몸속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시대에 양친부모를 모두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잃는 심정을 의사들은 알기나 할까.
오늘 아침에 딸아이가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엄마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이야기해도 되나요.” 치아교정중이라 교정기를 윗니에 끼고 있는 아이는 간밤 꿈에 윗니가 몽땅 빠지는 꿈을 꾸었단다. “엄마 꿈인데도 정말 무서웠어요.” 한다. 꿈에 윗니가 빠지면 웃어른이 돌아가신 다는데…, 걱정스러운 마음에 얼른 전화를 드렸다. “기분이 좋구나, 내 걱정은 하지 말아라.” 목소리를 밝게 내려고 애쓰신다.
죽음이란, 새로운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다. 이제 자식들은 아버지의 여행 떠나는 모습을 지켜 봐야한다. 그 모습을 좀 더 오래 지켜보고 싶지만 고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라면 이제 그만 당신의 손을 놓아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