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와 나는 친하다. 아니 그냥 친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단짝 친구다. 버스를 타기 시작하면서부터 줄곧 나와 동행한 못된 친구….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이면 더욱 더 나를 끌어안고 못살게 구는 나쁜 친구다. 내가 그렇게 사랑스러운가?
멀미가 나를 괴롭힌 일은 무수히 많지만 유독 기억나는 사건이 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다. 교통이 불편했던 그 때는 차를 여러 번 갈아타면서 다녀야 했다. 어렸을 적부터 자매처럼 지내던 친구는 멀미가 심한 나를 옆에서 돌보아 주다 아주 황당한 일을 겪었다. 멀미라는 녀석 때문에 차를 탔다 하면 먹는 것과는 아예 담을 쌓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축 늘어졌던 나는 강원도에서 경주까지 가는 그 긴 여정에 거의 초죽음이 되어있었다. 오물투척 사건, 결국에는 이름도 거창한 그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목 끝까지 올라온 울렁거림에 이제나 저제나 차가 멈추기만을 고대하며 겨우 참고 있는데 드디어 차가 도착했다. 서둘러 내려야한다는 생각에 급히 일어나는 순간 그만 옆에 있던 그녀의 머리에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내 목구멍을 통해 올라온 것들이 그녀의 머리위에서 줄 줄 흘러내리는 모습에 주변이 정지한 것처럼 모두들 놀라있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 욱 욱 하면서 토하고 있었으니, 아니 먹은 것도 없는데 내용물은 또 왜 그리 자꾸만 나오는지.
삶이란 때론 의도하지 않은 쪽으로 우리를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 늘 함께 하며 사랑하고픈 것들은 멀리 떠나 있을 때가 더 많고, 불편하고 상실감을 주는 일들은 우리를 따라 다니며 함께 하기를 원한다. 어쩌면 집안에만 콕 박혀 있기를 좋아하는 수동적인 나를 만든 원인이 멀미라는 끈질긴 이 친구 덕인지도 모르겠다.
이십대 초반 서울로 출장을 갔던 때의 일이다. 여행하면 미리 겁부터 먹는 나에게 가장 부러운 것은 차가 휴게소에 잠깐 들렀을 때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우동 한 그릇에 구수한 어묵을 먹고 난 후 달콤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그에 반해 후줄근한 모습으로 파김치가 되어 화장실만 들락거리는 내 모습은 초라하기가 그지없다.
2박3일의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날씨도 화창하고 컨디션도 괜찮아 속이 좀 편안했다. 멀미하는 나에게 최대 고비인 대관령 아흔아홉 고개를 들어서기 전 마지막 휴게소인 대관령 휴게소에 차가 정차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는 고흐의 그림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별들이 폭죽을 터트리며 빛나고 있었다. 웬일인지 멀미를 하지 않은 나는 용기를 내어 어묵을 사서 먹었다. 남들은 일상처럼 편안하게 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부러워만 하다가 먹고 싶은 어묵을 먹으니 그 맛이 너무 좋아 입안에서 살살 녹는 기분이었다.
봄 꿈 같은 시간도 잠깐, 버스는 출발하면서부터 무엇이 그리 좋은지 온 몸을 흔들어대며 험한 산길을 내려오는데 나는 그만 콱 죽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버스기사에게 비닐봉지를 얻어 일을 치렀는데 어묵이 씹어 먹은 모양 그대로 고스란히 담겨졌다. 고흐의 빛나는 별들이 내 봉지 안으로 날아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와 함께 버스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괴로웠을 많은 분들에게는 나름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운전을 하면 괜찮다는 것이다. 조수석에 앉을 때에도 멀미 친구의 기분에 따라 내 건강상태가 좌우되니 안심할 수는 없다.
멀미와 나는 버스 안에서 서로 상처를 주며 괴로워하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별을 한다. 나는 생각한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다. 이 고통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잠깐 나를 흔들어 놓다가 지나가는 못된 놈이라고. 기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터널을 만나게 된다. 터널 안에서는 유리창 너머 모든 것이 깜깜하다. 검은 어둠속을 바라보다 보면 멀리서부터 흐릿하게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곤 밝은 태양이 환하게 빛나는 넓은 시야가 펼쳐진다. 풍성하게 잎이 푸른 나무들과 색깔 고운 붉은 꽃들 그리곤 뭉게구름이 펼쳐진 파란 하늘. 터널을 지나지 않았다면 그 파란 세상이 빛나는 존재감으로 내게 벅차게 다가올 수 있었을까.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밝고 눈이 부시다. 행복하기만한 여행이라면 그 속에서 내가 깨닫는 것이 얼마나 될까. 살아가는 날들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아마 자신이 행복하다는 사실도 잊고 더욱 더 많은 것을 얻으려고만 할 것이다.
몇 십 년을 함께 지내다보니 이젠 멀미 친구를 내 마음대로 조정하기도 한다. 마냥 끌려 다니기만 했던 관계에서 서로에게 관대한 사이가 되었다. 며칠 전 여행에서도 나는 이 친구를 다독이며 먹고 싶은 음식들을 겁내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견디고 지나왔더니 또 다른 나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