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고
나는 코로나19 현실이 안타깝지만, 이동 제한, 모임 축소 노력은 지지한다. 덕분에 지난 명절에도 바이러스가 많이 퍼지지 않았다. 모두가 노력하고 인내 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추석이라는 명절이 잠시 후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나는 조부모님, 부모님과 함께 문경에서 살았다. 특이한 것은 식사하는 모습. 식사 때마다 조부모님, 아버지, 나 이렇게 한상. 나머지 식구들이 한상. 남녀가 따로 차려진 상에서 밥을 먹었다. 그뿐이 었을까? 식사 중 말을 하면 혼날 정도로 엄격한, 극단적으로 고지식한 집안 분위기였다. 덕분에 명절에도 어김없이 남녀 구별 식사를 단행했었다. 20명이 넘는 친척들이 모여 식사를 했고 준비와 뒷정리는 여성들의 몫이었다. 2019년 추석에는 어머니의 아들이 설거지를 한 덕분에 아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아까운 아들 설거지시킨다고 어머니가 며느리를 돌같이 보셨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약간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애써 위로해 본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모인 친척들이 1박 2일 합숙을 한다는 무시무시한 일이다. 그 기간 뭐가 그리 좋은지 웃고 떠드는 분들은 60세 이상 남자들과 그들을 낳아 준 할머니뿐이었다. 아내는 명절이 다가오면 두통을 동반한 소화불량 같은 명절 전조 증상을 보였고 합숙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날 가끔 차창 밖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사촌 제수씨들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고 했다. 명절 동안 누가 무어라 하지는 않았다. 단지 어른들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말투 하나하나가 며느리들에게는 바늘처럼 느껴졌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다.
꼰대 끼가 많은 어른들은 이런 며느리들에게 가족 같은 데 불편할게 뭐냐고 한다. 정말 그럴까? ‘가족 같은’이라는 의미는 가족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짝퉁, 같은 것 같지만 다르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익숙한 강자들이 약자들로 하여금 과거에 행복했던 자신들의 삶을 유지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올해부터 진지한 효도를 하기로 했다. 명절에는 문경에 내려가지 않기로 한 것이다. 명절마다 이어졌던 말도 안 되는 1박 2일 합숙훈련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내도 나도 행복한 일이리라는 결론에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작은아버지들은 도리라는 말로 효도를 강요했다. 나는 효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모두 행복하면 좋지만, 그러기에는 주변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만만치 않다. 명절마다 합숙훈련을 해야 했고, 며느리들은 20명이 넘는 식사를 때마다 챙기고 설거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어머니와 며느리들은 즐겁고 행복했을까? 그분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도리는 너나 하세요" 글을 쓰니 스피아민트 껌을 씹은 것처럼 마음이 시원하다.
어른들만 행복한 게 어디 효도이겠는가? 며느리는 집에 가면서 울고 아들은 며느리 눈치 보느라 정신없는 게 진정한 효도인가? 내가 불행한 데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는데’라는 말로 효도를 강요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가? 시댁으로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부담인 며느리에게 최소한 화풀이는 하지 말아야지. ‘가족 같은’이 아닌 ‘진짜 가족’으로 대해 주어도 부담인 게 현실인데. 명절 전 후로 사과가 반쪽 나듯 집안이 반쪽 나는 일이 많다는 게 이런 일 때문은 아닐까? 나는 올해로 17년 간 유부남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모두 아내 덕분이다.
부모님은 명절 일주일 전부터 내려가셔서 준비를 하셨다. 친척들은 당연히 없었고, 벌초와 명절 음식을 두 분이서 대부분 담당하셨다. 덕분에 어머니도 명절 때면 당연한 것처럼 시골로 향하셨다. 1998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친정에 가지 못했다. 아니 그전에도 친정어머니를 뵙는다는 건 사치였다. 어머니는 시가에 들렸다 친정에 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숙모들은 다들 친정으로 가는 데 어머니는 시댁에서 가장 늦게 나와 아버지와 함께 인천 집으로 향했다. 명절을 모두 소비하고 집으로 오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하나 더. 나는 외가에 대한 기억이 없다. 외갓집에 간 기억이 없으니 당연하다. 조부모님도 아버지도 어머니를 배려하지 않고 인내를 강요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2015년 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시댁이 먼저인 어머니를 보며 왜 그렇게 살아야 되는지 궁금했다. 헤어지면 남인 것을 5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아오셨다. <파블로프의 개>가 생각나는 건 왜 일까.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합숙을 거부하고자 하는 생각을 했을까? 훈련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아내는 자존감을 접어 두고 무언의 강요 속에 살고 있겠지만, 훈련을 마친 후 피로감을 이야기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일 년에 2번씩 꼭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사랑하는 딸이 생각난다.
우리의 귀엽고 예쁜 딸은 똑똑하고 합리적이며 그림을 아주 잘 그리고 좋아한다. 딸아이는 이런 분위기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 인내하고 참는 것은 인격의 한 부분이지만 자존감을 높이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래 살아온 분들의 인격은 높고 남성이 우월하다는 생각은 틀린 말이다. 사람은 존재 자체가 소중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세상에 어른들이 말하는 당연한 것은 없다.
글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고.
PS.
나는 밥벌이로 장기간 회사를 다니고 있다. 편입해서 공부하는 학생이다. 내 아내의 남편이고 귀여운 딸아이의 아빠이며, 어머니의 아들로 살고 있다. 나의 할아버지도 장손, 아버지도 장손이다. 나는 명절 증후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7대 장손일 뿐이다. 그리고 스피아민트 껌은 롯데에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