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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Feb 17. 2023

새로운 경험은 언제나 옳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세상에는 몇 가지 빨이 존재한다.

옷빨, 머리빨, 장비빨, 기타 등등.


"남자는 역시 머리빨이지"

말은 들어본 적은 있어도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 줄 알고 살았던 나를

변화시킨 것은 동네에 생긴 작은 바버샵이었다.



바버샵이라는 존재를 몰랐었던 몇 해 전.


외출 준비에 거울 앞에 선 나.

‘하’

낮은 한숨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또 버섯이 되었다.

'죽이고 싶다. 미치도록'

내 머리를.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이듯

머리카락도 길면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하는데

휠 듯 말 듯 애매하게 뻗어있다.

앞머리만 이러면 큰 불편이 없겠다만도, 옆머리 마저

굽힐 줄 몰라, 이발을 하고 난 후 두 달 정도 지나면 나는 하나의 버섯인간이 되고 만다.  

드라이기와의 사투 끝에 어떻게 어떻게 팽이버섯 정도로 만들고 외출준비를 마친다.


이런 머리 덕분에 미용실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언제나 반삭 아니면 일명 스포츠머리였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

“반삭이요.”

"아 그리고, 제 머리가 많이 뜨거든요. 그래서 옆머리는 바짝 깎아 주시고, 그 라인을 위로 많이 올려서 쳐 주세요."

“아 그리고, 정말 심하게 뜨는 편이라,.. “

 주저리주저리.

머리 깎기 전에도, 머리를 깎은 후에도

이렇게 열심히 입으로 품을 팔아야 사람다워? 지는 머리카락.

남들과는 다르게 남들보다 빠르게 자라는 머리카락 덕분에, 한 두 달에 한번 가야 하는 미용실은 편한 공간이 아니라, 항상 긴장되고 진 빠지는 공간이었다.


지인들에게 내 머리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는 날이면 항상 이런 조언을 듣곤 한다.

‘머리를 더 길러봐, 그럼 아마 차분해질걸?‘

‘그래. 파마를 해봐 ‘


그래. 파마!

나라고 안 해본 게 아니다.

단지 오지게 실패했을 뿐이다.

거금 15만 원을 주고 파마를 하고 온 어느 날이었다.

머리카락이 생각보다? 굵어서 그런지 파마약을 두 번이나 처방? 받은 탓에 장작 4시간 이상을 미용실에서 보내고 초주검이 되어 돌아온 저녁 무렵.


“오늘은 절대로 머리 감으시면 안 돼요~”

원장선생님 간곡한? 당부를 듣고 온 터라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며

조용히 거실에 앉아있었는데,

‘탈칵’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들어오신 아버지께서

한 말씀하신다.

“뭐고? 가시나 가?.”

‘… 하’


거울 앞에 서보니,

과연 웬 여자가 서 있었다.  미용실에서 나올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가시나’라는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곧장 인근 미용실로 찾아가 반삭을 시전 했다. 그렇게 파마는 짧은 추억을 남기고 내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반삭을 하는 게 아깝다며, 한쪽 가르마는 반삭을, 반대편 가르마는 파마를 하라고 농담을 던지셨던  원장님. 실제로 중간에 그렇게 하시고 한참을 웃으셨던 원장님이 생각난다. 잘 살고 계ㅅ..


파마 이후, 시술로는 다른 대안을 찾지 못한 나는

그 후로 오랫동안 ‘모자중독자’가 되었다.

봄, 여름, 가을에는 볼캡을 겨울에는 비니를 항상 쓰고 다녔다. 내 머리는 항상 비타민 D부족이었고, 그렇게

볕을 보지 못한 개중 일부가 내 두피에서 탈출하려는 징후가 보인다는 충격적인 진단까지 받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게 베지터가 되나 싶었다.


그래 뭐 여차하면, 볼드 헤어다.

‘나도 브루스윌리스 형이나 주드로 형처럼 멋있는 탈모인이 될 수 있을 거야.’

라는 헛된 희망을 품은 채 굳건히 살아가던 나.


다행히도? 운 좋게 결혼을 하면서

서서히 머리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게 되었다.

(역시 잡은 물고기에는 먹이를 읍읍.. )

아니 사실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신혼생활 얼마 못하고 아들이 생겨버린 덕이다.


그렇게 지내기를 4년,

허벅지는 종아리만 해졌고,

배에는 선명히 석 삼자가 그려진 개구리인간이 되었다.


여전히 머리는 엉망진창인 상태로,

지겨워질 때까지 기르다가, 기회 되면

미용실에서 반삭 하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가끔, 아내에게 뽀뽀라도 할 때면

뭔가 더러운 것을 마주한 눈으로

신경질을 내는 것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러려니 했다.(어차피 잡힌 물고기 읍읍..)


그렇게 스타일이고 뭐고 다 내려놓고 살던 

어느날. 


자주 가던 백화점 꼭대기 층에

못 보던 가게가 생긴 것을 보게 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발소 같았다.

근데 가격표를 보니,

내가 알 던 이발소는 아닌 듯했다.

'음? 머리 깎는데 4만 원?'

돈 많은 부자들이나 가는 특별한 공간즈음으로 여기고는 관심을 껐다. 그 당시만 해도 미용실에서 남자 머리 깎는 비용의 2배에서 3배 정도의 가격차이었으니, 그럴 만도..


사치재와 같은 그곳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시기는

바버샵이 생기고 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너도 나도 파이어족을 부르짖던 그 시기.

멋모르고 시작했던 주식에서 운 좋게 수익을 냈다.

’ 내 인생 이렇게 피나‘싶었다.

'첫 끗발이 개 끗발'이라는 말이 있는데 딱 그 모양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거나 말거나,

처음으로 주식으로 돈을 벌어보니 마치 로또에 당첨된 기분이라 뭐라도 나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평소에 입고 싶던 비싼 옷, 비싼 신발은 샀으니 이제 비싼 머리를 한 번 하러 가 보자고 마음먹고 들어가게 된 바버샵.


"네. 예약하셨나요?"

"예약했는데요."

"성함이? "

"OOO이요"

"네. 자리로 안내해 드릴게요."


사람 서너 명 정도만 앉을 수 있는 동네 바버샵에는 벌써 두 명의 손님이 먼저 머리를 깎고 있었다.

마샬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경쾌한 재즈 피아노 소리, 면도기의 징징대는 소리, 그리고 가위질 소리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런 침묵은 남자의 것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머리를 깎기 위해 필요한 말 밖에는, 서로 묻고 따지지도 않는 분위기.

안내받아간 자리에는

장신에, 구레나룻에서부터 멋지게 턱수염이 이어진 선이 굵은 바버가 서 있었다.

살짝 걷어올린 셔츠 소매 밖으로 문신이 보였는데, 내가 자리에 앉자 말없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하얀 가운을 입혀줬다.

바버가 맞은편 거울을 통해 내게 눈 짓으로 물는 것 같길래 졸지 않고

바버샵에 오기 전, 블로그를 통해 공부한 내용을 기계처럼 읊조렸다.

"사이드 파트로 해주세요."

'후. 처음온 티 안 나게 잘했어. 라이코스'

문신이 보이는 팔로 가위를 드니 '스위니 토드'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비싼 돈 주고 깎는데

마음이 불편하면 안 될 말 씀이므로 가르마를 나뉘는 빗질을 느끼며 차분히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역시 긴장될 때는 눈을 찔끔 감는 게 수다.

대략 30분 정도 지난 후, 분주하게 가위질을 계속하던 바버가 이제 손에 면도기를 들었다.

'아 드디어 올게 왔나?'

능숙하게 면도크림을 바르더니, 섬뜩한 촉감을 남기며 면도기가 스쳐 지나간다.

눈을 떠 보니, 지금껏 보지 못했던 내가 거울 앞에 앉아있었다.

'와. 이런 머리도 되는구나.'

"머리 괜찮으세요?"라고 중저음의 목소리로 물어보는 바버.

머리 깎고 처음으로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 같다. 이런 목소리였구나. 너란 바버.

"네."

"마무리해 드릴게요. 스킨 발라드릴게요"

아니 굳이라는 대답을 하려는 차, 신속하게 바버가 스킨 뚜껑을 따고 머리에 발랐다.

와우. 이런 느낌이구나. 내 머리가 타들어가는 느낌이

엄청 아팠지만 참았다. 머리스타일도 너무 마음에 들거니와,

바버샵은 처음이라 다 이렇게 하는 건 줄 알았다.

'이렇게 진정한 남자가 되는구나' 정도의 느낌이었다.


만족스럽게 머리를 깎고 난 후, 집사람에게 보여줬는데 나를 불쌍한 눈으로 쳐다봐서 놀랐다. 짧게 깎은 머리카락 속 두피가, 마치 병든 개의 피부처럼 울긋 불긋하다고 했다. 두피에 난 여드름이 터지고 난 뒤,

아마도 그 자리에 스킨을 바른 탓이겠지.

(어쩐지 아프더니.. 바버 너란 남자 거칠구나. )

“그래도 뭐, 그것만 빼면 여태 자기 머리 중에서

지금이 가장 낫네. “

‘유레카!!’


그날 이후, 두 달에 한 번은 꼭 바버샵을 간다.  

매 번. 공식처럼 딱 딱 떨어져서 나오는 머리는

언제나 만족스럽다.

여전히 미용실에 비해서 비싸지만

만족도는 배 이상이다.

바버샵에서 머리를 하고 온 날이면 왠지

더 어른이 되는 기분이고

같은 옷을 입어도 더 테가 나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머리빨 제대로 받는다는 말이다. 후훗


머리스타일이 살아나니, 

주말에도 외출이 즐거워졌다. 

거울 앞에서도 당당한 내가 되었다. 

삶에 전환이 필요한 중년들에게, 바버샵을 적극 추천 드린다. 


역시, 새로운 경험에는 돈 아끼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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