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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Feb 28. 2023

바버 바보바버 바보

난쟁이 너 내가 찾고야 만다.

일주일 전,

멘탈이 탈탈 털린 나.

아뿔싸.

정신 차리고 보니, 평소 사고 싶던

바버재킷과 청바지를 질러버리고 말았다.

합이 80만 원... 미쳤지 내가.  


그날의 분위기.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이었다.

"아 해."

'아 -'

초롱한 눈으로 시선은 티비를 향해 고정한 채, 아기 새와 같이 입만 뻥끗 거리는 아들.

유산균 두 알을 아들의 입으로 골~인.

목 막힘 없이 깔끔하게 잘 투척되었는지 마지막? 까지 확인한 뒤, 냉장고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곧 봄이 오려나 싶은데, 냉동실 안은 시베리아였다.

마치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는 듯 서로 얼어붙은 채로 포개어 있는 식빵들.

냉동실에서 꺼내어 야무지게 칼로 둘 사이를 갈라놓는 데 성공했다.

아내가 결혼하기 전부터 자취방에서 쓰던 미니 오븐기를 열고,

식빵을 가지런히 눕혀 놓은 뒤,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200도에 5분.

얼어붙었던 빵이, 온기를 되찾고 다시 살아나는데 필요한 골든 룰이다.


식빵이 제 얼굴을 찾고 있을 무렵.

프라이팬 위에는 계란프라이가 준비되고 있었다.

써니사이드 업.

취향이 영 다른 우리 부부도, 계란프라이 취향은 같다.

계란 흰자 가장자리가 보기 좋은 브라운으로 물들 무렵이 딱이다.


"띵"

토스트가 다 되었다는 알람소리에, 냉장고 문을 열고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은 뭘로 할까?"

"크림치즈 발라줄까? 아니면 잼?"

".... 치즈"

시선은 여전히 티비에 고정한 채로, 시크하게 대답하는 아들.

티비는 요물이다. 언젠가 내가 고물로 만들고 말 테다..


자꾸 튀어나오려는 한숨을 갈무리하고

토스트와, 우유 그리고 갓 건져 올린 싱싱한? 계란프라이를

사랑하는 아들 앞으로 대령하는 나.

좀 만 더 커봐라. 얄짤없을 줄 알아라.

".... 치즈는?"

아차. 딴생각하느라 치즈를 깜박했다.


아무튼, 별 것 없지만 구색은 맞춰 아들의 아침상을 차려준 뒤,

커피타임을 가졌다.

근처 카페에서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선한 원두를

핸드 그라인더에 털어놓고 거실 바닥에 쭈그려 앉아 갈기시작했다.

'아. 괜히 핸드 그라인더 사자고 우겨서. 내가 이런 고생을 사서 하지'

분노의 그라인더 질을 마치고, 곱게 갈린 원두를 잘 접어 펴 놓은

필터 안으로 조심스럽게 투척했다.


2년간 사용하던 네스프레소 머신을 정리하고

결국 우리 부부의 취향에 맞게 정착한 것이 바로 필립스 커피메이커다.

현란한 기술은 없지만, 고압으로 취출 할 때 느껴지는 그 쓴맛을 싫어하는 우리에게는

부드러운 맛은 유지하고, 핸드드립보다는 덜 번거로운 요게 제격이다.

거실에 커피 향이 퍼지자, 아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커피?"

"응. 당연하지."

"그래."

나 한잔, 여보 한잔.

식탁 위에 가지런히 컵을 올려놓고 식빵 두장을 한번 더 오븐에 집어넣었다.

이제 부모가 먹을 차례.


'아침에 듣기 좋은 재즈'

유튜브 뮤직에서 적당한 음악을 골라 스피커로 틀었다.

토스트, 커피, 잔잔히 울리는 재즈 피아노 소리와 거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

모든 게 아름다웠던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 이상한 대화가 있기 전 까지는.


기분 좋게 아이패드를 꺼내어, 얼마 전 취미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드로잉을 연습하고 있었는데,

"크로키해? 근데 그게 뭐야. 나 줘봐. "

"아니, 연습이라니, 연습"

"연습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아 정말. 왜 그래? 그냥 하는 거라니, 그냥."

뭐 대강 이런 대화의 흐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대관절 왜 남의 취미에

본인이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인지.

처음 하는데 못하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닌가.

잘하면 내가 이러고 있을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아니 그것보다 오늘따라 왜 유난이지?  무슨 일 있나?

싶었는데.


그 비슷한 대화가 몇 번 오가고 난 뒤 별안간

"어째 너는 변한 게 하나도 없어. 나 오늘은 교회 안 갈 테니 너 혼자 다녀와."

화를 내며 혼자, 후다닥 옷을 입고는 나가버리는 아내.

오늘도 역시 난이다.

이 집에서 로켓단 역할을 맡은 건 나인데 왜 본인이 나가는지..

황당한 채, 아무것도 하기 싫어

교회를 째고

아들과 하루종일 놀아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일주일이 지났다.

둘 만 있을 때면 불편한 침묵과 어색함이 감도는 집 분위기에

둘 중 한 명은 밖에 나가거나,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생활이 지속되고 있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온 불편한 침묵에 대상포진이 걸렸던 오른팔이 굵은 바늘로 찌른 듯 아파온다.

집이 아니라 가시방석에 앉은 느낌이다.


이상하게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은 어느 정도 선명히 묘사가 될 정도로

뇌에 남아있는데, 대화내용만큼은 흐릿하다.

설마 나 소시오패스?

아님 그냥 바보인가.

뭐 때문에 화가 났는지를 알아야 할 텐데

알 길이 없다.


뭐, 그러한 이유로

이러다 미쳐버리겠다 싶어

냅다 달려온 곳이 백화점이다.

현실도피성으로 이것저것 둘러보다

열렬히 구독 중인 유투버가 광고하던 바버재킷이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지만, 50만 원이 넘는 가격 덕분에

어슬렁 거리기만 했던 매장에 용기 내어 들어갔다.  

바버를 상징하는 녹색에 적당한 짧은 기장이 포말과 캐주얼의 중간을 지향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이었다.

그런 옷이 있다.

몸에 촥 감기는 옷이.

사기도 전에 내 옷이라는 느낌이 팍 들어, 고민 없이 질러버렸다.


어쩌면 국가가 허락하는 유일한 마약은

음악이 아니라, 쇼핑일 지도.

뭘 사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허겁지겁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양손도 무겁고, 발검음도 무겁다.


원래 이렇게 말초지향적인 쾌락에는

현자타임이라는 것이 반드시 오고야 마는데

오늘따라 현타가 빨리 찾아왔다.


도대체, 아내는 뭐 때문에 화가 났을까.

걷다 걷다 걷다

또 걸어본다.

어디서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뇌 건강에 걷는 게 좋다고 하니 계속 걸어본다. 양손 무거운 채.

이렇게 걸어도 저렇게 걸어도

기억이 더 이상 선명해지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그날 내가 아내에게 던졌던 그 공은

내 무의식의 영역에 살고 있는 난쟁이가 쏘아 올린 게 분명하다.


뭐,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하고 나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 있었다.


깜짝이야.

현관에 아내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집은 고요했고, 아내는 작은 방 안에 있는 듯했다.

'들어가서 속 시원하게 물어나 볼까?'

문고리를 노려보다

관둬버린다.

아마 잠겨있겠지.


오늘도 역시 물어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까치발로 조용히, 거실을 지나쳐

옷방으로 들어가 환복을 한 뒤

새로 산 재킷과 바지를 쇼핑백 그대로 옷방에 놓고

혼자 거실에 앉아 맥주 한 캔 마시고

잠에 든다.


내일은 꼭 물어봐야지.

바버 재킷을 산 나는 바보다.


하.

'환불해야 하나?'

아직 일주일 남았으니 천천히 고민하자.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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