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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Jan 02. 2023

작은 키로 산다는 것

호빗으로 산다는 것..

내 키는 166이다. 정확히 말하면 165.8cm이다.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그 

호빗이다. 

매 건강검진 때마다 아주 조금씩 바뀌긴 하는데 1cm 오차범위에서는 166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어차피 170cm도 안 되는 키에 166이던 165던 그게 무슨 상관이냐 만은. 

이 기분은 아마도 키가 작은 사람 말고는 모를 거다. 우리에게 그 1cm조차 얼마나 소중한지 말이다. 


생각해보면 내 키는 항상 작았다. 쓸데없는 곳에서 일관성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남들보다 작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이성에 눈을 뜰 무렵. 나의 황금 같던 20대가 시작하던 그 무렵이었다. 


지긋지긋했던 고등학교에서 벗어나 이제 막 해방감을 느낄 무렵. 

드라마에서만 보던 그런 캠퍼스 생활이 시작되는구나라고 꿈을 꾸던 그 시절에. 

왜 내가 호감을 가지던 이성들은 하나같이 키가 큰 남자들을 좋아했는지. 

참으로 개탄할 일이었다. 


사람의 키가 어떤 스펙이 되고, 비교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개탄스러운 것은 이제 와서 어떤 노력으로도 내가 작다는 사실을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평생을 이 작은 키로 살아도 큰 불편함 없이 살아왔던 나에게는 그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180 이하는 남자로도 안쳐준다는 어느 여자동기의 말은 쇼크 그 자체였다.)


작은 키였지만, 큰 불편함 없이 살아왔고 또 그게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 한 채로 

살아왔던 나날들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병신이라고 

너 빼고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나는 왜 이렇게 작게 태어난 걸까. 아니 왜 이렇게 작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해 본다. 

내 키가 남들보다 작은 이유를 꼽자면 이런 이유들이 있을 거다.  

어렸을 때 밥을 덜 먹어서, 밤늦게까지 노느라 잠을 덜 자서, 또는 

뛰어노는 것보다는 가만히 앉아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키는 거의 유전이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키를 가지고 평균을 내보니, 지금의 내 키가 나온다는 아주 과학적인 결론에 이르렀다. 

결국, 내가 어떻게 했어도 태어난 순간부터 내 운명은 정해져 있던 거였다. 


남자는 20살 넘어서까지 키가 큰다며, 

남자는 군대 가서도 키가 큰다며, 

옆 집 총각은 30 넘어서 키가 컸다며 

항상 이런 말들로 다독이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찾아오질 않을 기적을 향해서 기도했던 날들이 무색하게도 

왜 나에게만큼은 법칙은 예외 없이 적용되는 걸까.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처럼, 

내 키가 남들보다는 작고, 이게 단점이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후로, 

내 삶은 더욱더 소극적으로 변했다.  

옷을 고를 때에도 '그래 뭐 내 키에 적당히 싼 걸로 사서 입자. 어차피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다.'라는 생각으로 

매장에 들어가면 그냥 적당히 휘휘 보고 빠른 몸놀림으로 입어보지도 않은 채 결제 후 도망쳐 나오기 바빴다. 

그래서 번번이 제값을 주고 산 물건임에도 한 번도 제대로 입어보지도 않고 쓰레기장으로 가게 된 옷들도 많았다. 


마음에 드는 바지를 한 벌 사도, 기장이 맞지 않아 잘라야 했던 그 아까운 원단들. 바지 3벌 정도를 기장수선을 하면 바지 1개는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나오는데 어찌 내 짧은 다리가 원망스럽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뭐 그렇게 쭈구리? 같은 대학생활을 마무리하고, 

마찬가지로 쭈구리같이 평생 '연애'라는 것은 내 인생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던 그 시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나보다 큰 늘씬한 미녀?를 만나게 된 일이다. 지금은 아내가 된 이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은 

'운명'을 믿지 않는 나에게도 아직까지 미스터리다. 

무슨 장난인지, 원래 담당자였던 선배의 대타로 나갔던 그 자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또 그날은 무슨 용기였는지 평소에 하던 쭈구리 같은 행동은 하지 않고.. 꽤나? 신사적인 모습으로

자신감 있게 신발을 가져다주던 내 모습이 하필이면 좋아 보였을 줄이야.


뭐 그때 그일 이후로는 연애하는 내내 그리고 지금껏 살아오는 내내 

와이프에게 나는 그저 지질한 놈이 이지만 ㅋㅋㅋ 

와이프는 아직도 속았다며, 내가 이런 놈인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거라고 한다. 


아무튼 간에, 아직도 '작은 키'는 내 안에 콤플렉스와 같아서 나보다 큰 여자를 만나거나, 

하면 나도 모르게 몸이 자동으로 움츠러드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늙으면 변한다고 하는데, 내 안에 있는 내 자아는 아직도 대학생 때 그 어리숙한 그 쭈구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혹시라도 키가 작은 아빠 때문에 우리 아들이 어디 가서 기가 죽지는 않을지. 

혹시라도 키가 작은 아빠 때문에 우리 아들이 키가 작게 될까 봐 노심초사하며

혹시라도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며 원망은 듣지는 않을지, 이래저래 걱정이 앞선다. 


아내는 내가 이럴 때마다, 걱정도 팔자라며. 

아들이 키가 작더라도 그게 어떠냐며, 자기 팔자 아니냐고 

아들이 당신을 원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어른스럽지 못한 나를 타이른다. 


모든 게 그냥 내 생각이면 좋겠다. 


몸이라도 좋으면 그래도 어디 가서 무시는 안 당하겠지 싶어서 

아들이 태어난 후로 간간히 근력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3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키가 크던 작든 간에 나는 나인데. 

언제 즈음 이런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도 자기 전, 성장판 자극에 좋다는 다리 마사지를 열심히 

아들에게 시전하고 있다. 


한심하다는 듯 나를 보는 아내의 눈치를 모른 채 하며,

간지럽다는 아들의 아우성을 들으면서 

그렇게 열심히 문지르고 있다. 오늘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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