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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Jan 02. 2023

소비, 취향.

feat. UniQLO

시간을 거슬러, 가난했던 나의 대학원생 시절. 

고작 월급 50만 원을 받고 다녔던 가난한 대학원생은 옷 하나라도 사려고 하면 한 달은 큰 맘먹고 

세 기중 두 끼를 굶어가면서 돈을 모아야 했다. 

그 당시 나의 최애 옷 집은 유니클로였다. 그 이전에는 동대문 보세였지만, 극강의 가성비를 갖춘 유니클로를 맛본 순간 매국이고 자시고 유니클로만 주야장천 다녔다. 물론 그때에는 반일정서가 이렇게 심할 때도 아니었고 내 주머니 사정상 매번 갈 때마다 나를 부자로 만들어주는 그 달콤한 유혹을 참기가 힘들었다. 

(유니클로의 대 성공 이후, 국내에도 SPA 브랜드가 여럿 나왔지만, 아직까지는 가격 대비 퀄리티는 유니클로가 제일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당시만 해도 십만 원으로 양말부터 바지 윗옷까지 모두 사고 나올 수 있는 곳은 흔하지 않았다. 

아무튼 하루에 한 끼를 제육덮밥을 먹으면서 한 달에 한 번은 꼭 유니클로를 들려서 무언가를 샀던 것 같다. 

물론 그 덕에 돈에 허덕이는 가난뱅이 대학원생 옷장에도 무려 안 입고 방치되는 옷이 쌓여있었다. 

지금의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고는 지출이 많아져서 이전보다는 덜 갈 수밖에는 없었지만, 옷이 필요할 때면

항상 나는 유니클로부터 찾았다. (쓰고 보니 유니클로 광고 같지만, 의도하지 않았다.)


아무튼. 연애하는 동안 밥벌이를 먼저 시작한 아내가 종종 내 분에 넘치는 비싼 옷들을 선물로 사주곤 했는데, 선물을 받을 때면 기분이 좋다가도 뭔가 내 몸에 안 맞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비슷한 수준으로 맞춰서 선물을 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 심지어 입사 이후로도 나는 한동안 유니클로만 다녔다. 내가 가장 좋아라 하던 유니클로 청바지는 근 6년을 입었는데 어느 날 거울로 보니 엉덩이 쪽이 다 늘어져서 자연스럽게? 배기핏이 되어있을 정도로 주야장천 싼 옷만 사서 입고 다녔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이, 유니클로처럼 싼 SPA 옷들의 특징은 일 년 정도 입다 보면 어디 한 부분은 늘어져 있거나, 닳아있거나 변색이 되어서 처음에 산 그 형태를 유지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아 물론 개인별로 시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같이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한동안은 그 옷만 입는 성격이면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할 거다.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닌데, 소득 수준이 늘어나다 보니 자연스럽게 씀씀이의 크기도 커지게 되었다. 

(같이 사는 누군가가를 보고 배웠.. 퍽)

유니클로가, 타미힐피거가 되고 폴로가 되었다. 아무래도 옷 자체가 같은 옷이라도 유니클로 옷의 최소 2배 이상은 비싸다 보니 한 번에 사는 옷의 양은 줄었다. 어느 날 옷장이 비좁아 정리를 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 누렇게 변색된 흰 와이셔츠, 엉덩이와 무릎 부분이 늘어진 청바지, 왜 샀는지도 모를 촌스러운 그래픽 티셔츠들을 다 버리고 나니, 옷장이 휑 해졌다. 비우는 과정에서 정말 이건 왜 샀는지 모를 물건들이 많이 나왔다. 기분이 좋아서,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냥 산 옷들이 많았다. 싸니까, 싸다는 이유로 다른 곳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었나 보다. 정리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제는 이렇게 개념 없이 소비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옷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그래야 어떤 옷이 좋은 옷인지, 값어치가 있는 옷인지 알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패션 관련 유튜브를 취미 삼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시험 삼아 여러 옷들을 입어보면서 내 몸에 맞는 옷이 무언지 알게 되었다. 옷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는 게 더 많지만 적어도 이제는 더 이상 무지성으로는 옷을 사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어떤 옷을 사더라도 항상 이유가 있었다. 왜 그 옷이어야만 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그 옷을 골랐는지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싼 맛에 산 옷은 이제 옷장에 없다. 


최소 5년을 입을 옷이 아니면, 단 하나도 옷장에 들여놓지 말자. 

스스로 다짐을 해본다. 이런 다짐이 비싼 옷을 살 때 나의 좋은 변명거리가 되는 부작용? 이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비싼 옷이 좋다는 주의는 아니다. 


나는 이런이런 옷이 이래서 좋아. 

내 옷에는 반드시 이런 부분이 중요해라는. 

내 취향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다. 


여전히 옷을 사는 일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다. 이제야 

'소비'를 위한 소비가 아닌, '취향'을 쌓기 위한 소비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앞으로도, 내 취향을 완성하는 소비생활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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