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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Jan 05. 2023

사는 게 참.

부캐를 키우자

지난밤.

"당신은 나랑 있으면 행복해?"

"그럼. 자기는 안 그래?"

"... 그냥 나는 잘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도 다들 이렇게 사는 건지."


비상비상. 진돗개 아니, 데프콘 상황이다.

아니 왜. 대체 왜 자려고 하는 밤중에 이런 말을 한 단 말인가.

화가 나기도 하고, 뭐라고 더 대꾸하려다 말고는 몸을 돌려 누웠다.

불편한 정적이 흘렀다.

그 뒤로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 않았다.

똑딱거리는 시계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밤이었다.


다음날

간밤에 대화는 잊은 듯. 아내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니, 잊지 않았겠지.

사실 우리 부부가 이런 대화를 나눈 지는 좀 … 되었다.



우리는 7년 차 부부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1년 차부터 육아전선에 뛰어든,

맞벌이 부부다.


누가 등을 떠밀어서 결혼한 것은 아니다.

6년간 장거리 연애를 해오다가 서로가 직장에 자리를 잡은 뒤 남들이 다들 그렇듯, 결혼을 했다.


모든 불만의 시작은, 우리가

서로 바랐던 배우자 상이 다른 것을 그리고

서로의 진면목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진짜 내 모습을 아내가 늦게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같은 배우자를 원하는 나와

'키다리 아저씨'같은 배우자를 원하는 아내가 만나

'엄마'같은 아내와, '아들'같은 남편으로 생활하고 있다

한 편의 웃픈 코미디다.


연애할 때에는 다 받아주던 내가,

결혼할 때 손에 물 한번 안 묻히겠다고 약속한 내가,

왜 그때와 지금은 이렇게 다른지,

그때나 지금이나 키는 한결같게 작지만,

마음만은 컸던 나였는데, 지금은

좀스러운 호빗이랑 사는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은 같은데,

아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는데.

다른가 보다.


어쩌면 그때에는 이런 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가 어려웠나 보다.

그래 그랬나 보다. 근데 우리…

연애할 때에도 이런 비슷한 문제로 종종

다투곤 했는데. 그때 그 기억은 어디로 간 걸까.


참. 사는 게 어렵다.

누군가의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받아들이기가.

그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누군가면 더더욱.


서로 살았던 환경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습관이 다르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른 둘이 만나서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살면서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내가 그토록 원하는 '키다리 아저씨'같은 남편으로 가는 길은 험난하고 멀다.

마치 프로도가 반지를 녹이러 가는 길과 같다.

본캐인 나를 녹이고, 새로운 나로 거듭나는 길.

요새 부캐 만드는 게 유행이라던데,

집에서는 부캐로 활동해야 하나 싶다.


아내는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소중한 존재라면

적어도 나에게는 다른 사람이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노력할게" 이 말 밖에는, 지금은

아내에게 해줄 더 따듯한 말을 찾을 수 없다.


프로도는 샘이라도 있었지, 나에겐 샘도 없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함께 사는 동반자를 위해

나를 죽이고, 부캐를 키워야 한다.


아내가 기대고 싶을 땐 키다리 아저씨가,

집이 어지러울 땐 우렁각시가,

아이가 놀아달라 보챌 땐 메리포핀스가,

되어보자.


오늘의 신청곡은 싸이의 “연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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