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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Jan 07. 2023

벌써 세 번째 사춘기

일 하기 싫다..

이제 곧 마흔이다. 

세월이 참 빨리 간다 싶다.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데 내 몸만 그 세월을 다 먹었다. 

내가 아는 친척 중에 가장 잘난? 우리 외삼촌이 내가 서른 즈음에 해 준 말이 생각난다. 

"나이 마흔에 찾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그 사람은 실패한 거야"라는. 

나는 실패하고 있는 걸까. 

끝난 것 같았던 나의 사춘기가 다시 오고야 말았다. 지긋지긋하다.


나의 첫 사춘기는 중학교 때다. 

대가 없는 사랑으로 항상 나와 동생에게 헌신하셨던 우리 어머니. 

진짜 호르몬의 영향이었을까, 그때는 유달리 어머니 잔소리가 듣기 싫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나의 첫 번째 사춘기는 어머니와 크게 다툰 후 깔끔히 완치되었다. 

안방에서 홀로 숨죽여 우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문틈 사이로 본 뒤였다. 


두 번째 사춘기는 대학원 때였다. 

아버지의 강권으로 억지로 대학원에 등 떠밀려 가게 된 게, 원인이었다. 

대학교 입학시절 급격하게 기울어진 가정형편 문제로 

빠르게 군입대를 하고 졸업해서 취업을 하려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생각에도 없던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방향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시작한 대학원 생활은 

마치 군입대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처럼 느껴졌다. 


애초에 하고 싶던 연구주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어서,  사실 매 순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 어려운 개념들을 깨우치기에는 내 머리는 지극히 평범했기에. 

불행 중 다행인지, 졸업에 관대한 지도교수님과, 

스스로 졸업할 생각이 없던 나를 벼랑으로 이끌어준 나의 아내덕에 

부끄러웠지만 졸업을 했고, 그렇게 나의 두 번째 사춘기가 끝이 났다. 

 

이제는 철이 다 들고 열매가 맺고 완숙되는 과정으로 가는 건가 싶었는데. 

오고야 말았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긴 겨울이. ( Winter is coming )

지난해부터 슬슬 본 업인 설계에 손에 잡히지 않고 

역량부족으로 또는 근무태만으로 쌓인 일들이 이제는 내 목젖까지 차 올라 

만성 소화불량에 걸린 것처럼 속이 거북하다. 


신기한 게 할 일은 태산 같은데,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언제까지 되냐는 업무지시에, 역부족이라는 변명만 하고 앉아있다. 

절대적인 일의 양이 많은 것을 떠나서, 도저히 할 의지가 생기지 않는 게 문제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내가 지금껏 걸어온 방향이 맞는 걸까.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내가 과연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해서 생겼다. 

곧 마흔인데, 이제 와서 삶의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니,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다가도

평균 수명 100세를 얘기하는 이 시대에 나이 마흔이 뭔 대수인가 싶다.


우리 집 거북이가 어항 가장자리에서 열심히 헤엄치는 것 마냥 

뭔가 열심히 하는데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기분이다. 

나를 막고 있는 이 벽을 계속해서 두드려 볼 수 밖에는 없다. 

두드리고 두드려서 깨질 때까지. 열심히 발버둥 칠 수 밖에는 없다.


앉아서 불평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봐야겠다. 

내가 헤엄칠 수 있는 스펙트럼을 넓혀야겠다. 

이런 이유로, 22년 말에는 브런치도 시작하고 아이패드도 구매했다. 

아직까지는 꾸준히 뭐라도 쓰고, 뭐라도 그리고 있다. 


내 방향을 찾기까지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이 사춘기를 

고통스럽지만 부지런히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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