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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Jan 02. 2023

2.0 TDI GOLF

오래봐도 좋은 차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날 아내가 말을 건다. 지금 타고 있는 골프가 오래되었으니 더는 불편해서 못 타겠다는 말이었다.

"여보 이제 골프는 불편해서 더는 못 타겠어. 아무래도 차를 바꿔야 할 것 같아"

"그래, 오래 탔지, 지금 얼마나 탔지?"

"이제? 이제 14만 인 것 같은데"

"14만? 진짜 많이 탔네, 그게 지금 10년 되었지?"

“응.”

“바꾸자 그럼" 


석사 졸업 후, 

본가와 2시간 거리의 거제도로 첫 직장을 잡은 아내는 당장 차가 필요했었다. 한참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결정한 차는 구 르노삼성 현 르노의 소형 SUV QM3. 내 기억으로는 국내에 이런 세그먼트의 자동차가 그때에는 이 차가 처음이었고 크기도 부담스럽지 않아 사회 초년생 차로는 딱이다 싶었다. 그런데 부산에 위치한 매장에 들어가서 무사히 시승을 마치고 난 뒤, 아내의 표정이 영 시원치 않았다. 자동차 내장이 너무 장난감 같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뒤로 고급 외제차 매장에도 들어갔었지만 시승은 해보지도 못하고 나왔다. 가격표를 보니 도저히 살 수 있는 차가 아니었다. 다시 국산차로 갈까 했지만, 한번 올랐간 눈이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머리로는 답이 나오는데 몸이 안 따라오는 느낌이랄까. 결국 아무것도 고르지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며칠 후, 

늦은 시간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를 샀단다. 

"골프라고 폭스바겐에서 나온 차" 

"얼만데?"

"중고로 샀어. 리스로" 

그리고 며칠 후 나는 우리의 골프를 실제로 보게 되었다. 이게 중고차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 이상으로 작았다. 아니 이런 작은 차를 그 돈 주고 사다니. 그래도 외제차라 그런지 지난번 시승했던 차보다는 내장은 훨씬? 고급스러웠다. 역시 작아도 독일차인가 싶었다. 데이트 때마다 걷고, 지하철 타고, 걷고, 버스 타고의 연속이었는데 이제는 차로 다닐 생각을 하니 내 차도 아닌데 괜히 내가 다 설레었다. 이제 아내의 운전 실력만 늘면 어디든 시간문제였다. 대체 나는 언제 내려주는 건지 벌써 이 골목만 3번 돌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가 결혼을 하고 아들이 생기고 그 아들이 아직 어릴 때까지 골프는 우리 집의 유일한 발이었다. 대궐 같은 공간은 아니어도, 장인어른, 장모님, 나, 아내 그리고 작은 아들까지 온 식구들이 다 타고 인천공항까지 그 많은 짐을 싣고 달려도 큰 불편함이 없는 차였다.


아이가 크고,

맞벌이라 번갈아 가면서 어린이집에 등 하원을 해야 해서 급하게 차를 하나 더 구매했다. 기아 스포티지. 그 후 지금까지 스포티지와 2년을 함께했지만 딱히 나무랄 데는 없었다. 처음부터 가성비만 보고 적당한 차를 골랐기에 불만은 없었지만, 다른 말로 하면 애정 또한 생기지 않는 차였다. 내관은 어느 정도 볼만 하나, 외관이 영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면 이유다. 타면서도 불만이 생길 때면 '응 그래 이거 이 가격에 샀었지, 이 가격 주고 어떻게 이런 차를 사나' 하면서 위안이 되는 그런 차였다. 


아내가 차를 바꾸기로 결심한 그날 밤 이후, 

우리는 고민에 고민 끝에 크게 흠이 없고 아직까지 새 차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스포티지를 중고차로 팔고, 10년 된 그리고 14만 km라는 긴 주행거리를 자랑하는 골프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아무래도 스포티지는 정이 안 간다는 내 의견이 많이 반영이 되었고, 마침 중고차 가격도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 이상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골프는 팔아봤자, 큰 도움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는 함정.


중고차 플랫폼을 통해 평가사 방문을 신청한 뒤, 

짧은 정이 들었던 스포티지는 좋은 가격에 팔았다. 뒤끝 없는 깔끔한 이별이었다. 추억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차인데, 이상하게 가는 날도 섭섭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부디 새 주인 만나서 관리도 잘 받고 이쁨 받으면서 오래오래 달리기를 바랄 뿐이다. 

 

나와 골프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골프를 얼마나 더 탈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내가 나름 관리를 잘하면서 타 오고 있어서 큰 고장 없이 타고는 있었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에게도 기계에게도 긴 세월이다. 당장 어디가 고장이 나도 충분히 납득이 되는 정도의 시간이랄까. 최악의 경우 지금 중고차 가격만큼 수리비가 더 들어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선택한 차니까. 앞으로도 멋지게 즐겁게 타보려고 한다. 이제 모든 것이 구식인 차지만 연비 하나는 아직도 끝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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