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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디대디 Jan 02. 2023

23년을 마주하며.

간절함을 섞어보자. 

허벅지가 간지러운 것이 전화가 온 모양이다. 

웬일이지, 근 5년 만에 받는 연구실 선배의 전화다.

무슨 일이지? 뭔지는 모르지만 왠지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잠시 고민하다

결국 전화를 받는다. 

'어 오랜만이다.'

'아 형. 오랜만이에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 

'야. 혹시 누구누구 아냐?, 너희 부서 사람인 것 같은데.'

‘왜요?’ 

‘응. 이번에 우리 쪽에 지원한 사람인데, 레퍼런스 체크 좀 하려고.’  

‘일은 같이 해본 적은 없는데, 주변에 물어보니 일은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일 잘하는 거 말고, 일은 다 잘해~ 다른 부분은? 그게 더 중요한데.’

‘어떤 부분이요? 원하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데요?’ 

‘궂은일 시켜도 군 소리 없이 할 수 있는 사람, 사람들이랑 잘 어울릴 수 있는 사람.’ 

한마디로 요약해서 팀플레이어가 필요하다는 얘기인 듯했다. 

'한마디로 팀플레이어냐 이 말이죠?'

'응 그렇지, 주변에 알만한 사람이 없네. 네가 좀 알아보고 연락 주라'

통화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는데 문득 내 머리를 스치는 생각.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여태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띵하다. 식은땀이 흐른다.

선배가 일하는 쪽이 워낙 좁은 바닥이고 소수가 함께 일을 하는 데라, 더 그런지는 몰라도

'관계'라는 것이 '업무능력'보다 우선 시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믿고 있던 '동아줄'의 한 가닥이 잘리는 느낌이었다.  


MBTI를 신봉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전형적인 I 유형의 사람이다. 

여러 번 테스트를 해봐도 앞은 항상 I였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일을 할 때에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는 편이다. 혼자서 일을 하게 되면 서로의 영역에 대해서 조율하는 일 따위의 불필요한 시간낭비가 없어서 좋고, 상대방과 얼굴 붉히는 일 또한 줄어서 좋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양만큼만 계획을 세워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더 좋다. 


일 할 때 가장 혐오하는 것이 내가 '회색영역'이라고 부르는 일이다. 

확실하게 내 일도 확실하게 남의 일도 아닌 어떤 영역, 애초에 기획단계에서 빠져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중간에 떨어지는 업무들이 이 영역에 속한다. 

이런 영역이 있으면 꼭 불필요한 조율의 과정이 필요하고 회의감이 드는 회의가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지며

서로의 업무영역 싸움으로 얼굴 붉힐일이 반드시 생기곤 한다. 


사람과 얽히는 일.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고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사람마음이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의외성을 볼 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기분이 들 때가 몇 번 있었다. 

매번 기대의 끝에는 항상 실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기대하지 않고 믿지 않는다. 

그 편이 나의 마음을 지키는 편이고, 

그 길만이 서로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유일한 해답이라고 생각하고 

오늘도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지금 회사에서 연차가 차서, 기가 차게도 팀장을 맡고 있다. 

잘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분명 허덕이고 있다.

도처에 산재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쌓이고만 있다. 멍하니 두 손 두 발 놓고 바라만 보고 있다.   

이미 문제가 너무 많다며, 꿍시렁 대면서 오늘도 새로 생긴 일을 쳐내기에 바쁘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나 스스로도 고통스럽다.  


이런 이유로 올 해는 생전 처음 대상포진이라는 병도 얻었다. 나름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고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는데, 내 몸은 확실히 나를 더 잘 아는 것 같다. 어깨와 팔이 아직도 찌릿하고 화상에 걸리듯 예민해졌는데, 심한 날에는 그냥 팔을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제 취업 6년 차, 4년 차 즈음 되니까 내가 놓인 상황이 명확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좋다던 파이어족을 나도 한번 해보고자 투자도 열심히 했는데 22년 연말인 오늘 파란색으로 물든 내 계좌 상태를 보니 그 길은 너무 요원해 보인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 

23년은 간절함을 섞어서 해봐야겠다. 

재주는 없지만, 꾸준히 글을 쓰는 내가 돼 봐야겠다. 

간절한 마음으로 로또 번호를 찍는 나는 이제 없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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