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
일요일 아침. 늦장을 부려본다.
오전 6시, 단잠을 깨우는 시계의 알람을 끈 채로 다시 깊은 잠의 세계로 달려가본다.
지잉-
아씨 또 누구지.
어머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이제 7시 30분. 평소라면 일어나고도 남을 시간이다.
한쪽눈을 찡그린 채, 폰을 확인하니 사진이 포함된 문자 몇 개를 보내셨다.
"아 정말."이라 혼잣말을 내뱉고는 배겟머리에서 머리를 굴려 가로누워본다.
이리로, 저리로-
하...
잠이 다 달아난 모양이다.
예민한 성격의 잠 선생은 조금만 심기를 건드리기만 해도 금세 어디론가 가 버리고 만다.
돌아와요 잠선생. 오늘은 일요일이란 말이야. 아직 한참이나 시간이 남았다고.
"... 뭐 그런가. 그런데 어쩔 수가 없네. 규칙은 자네도 잘 알지 않은가. 애석하지만 그럼 이만."이랄까.
하여간. 그런 이유로 침대 위에서 계속 뒹굴다가 커튼을 신경질 적으로 확 걷고 일어난 시간이 대략 9시.
나도 참. 대단하다 장작 1시간 30분은 뜬 눈으로 뒹굴면서 보내다니.
젠장.. 그나저나 오늘이 몇 시간 남았지?
하릴없는 일요일 오전은 은근히 괴롭다.
더군다나 지금 시각을 보니 해님이 고개를 활짝 내밀고 계실 무렵.
굳이 나가보지 않아도 밖은 엄청나게 더울게 분명하겠지. 하며 블라인드까지 올리고 창문을 슬쩍 열어 고개를 내밀어 본다.
어라.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과는 달리 구름이 해님의 얼굴을 가리고 있다. 어쩐지 평소보다 좀 어둡다 했다.
이거라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지요. 나는 황급히 잠옷을 벗어던지고 조깅복으로 환복 한 뒤, 어깨를 요란하게 돌리며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 건물사이로 들어오는 골바람을 타고 전달된 공기의 습도와 온도가 나쁘지 않다.
시원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덥다고 할 수 도 없는. 발목을 가볍게 풀고 제자리에서 통통-뛰기를 몇 번.
띠-
얼마 전 훈련용으로 구입한 코로스 페이스 3에서 GPS 신호를 잡았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뛰시겠습니까? 응. 당연히 지금 뛰어야지. 날씨도 딱 좋다.
그렇게 하릴없는 일요일 오전.
선물같이 주어진 날씨를 마음껏 만끽하며 나도 모르게 10.5km를 내리 달렸다.
시계 구입 후, 역사상 최장 거리다. 이게 무슨 일?
아.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달리기란 참 즐거운 행위다.
운동에 그렇게 많은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적당한 신발 가벼운 반바지와 반팔 그리고 뛸 마음만 준비되어 있다면.
당신이 뛰는 그 길이 바로 운동장이 되어주니까.
차곡차곡 쌓아지는 훈련 마일리지를 보며 씩- 한번 웃어주곤 땀에 절은 운동복과 양말을 세탁기에 집어넣었다.
아직 시간은 10시. 시간 정말 안 가는구나.
대충 아침을 챙겨 먹고, 한동안 말없이 의자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며 멍하니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식탁 위에 올려놓은 무라카미 수필걸작선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책이나 읽자.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선생님은 소설도 수필도 그 특유의 유머를 빼놓지 않고 넣으신다.
가끔은... 좀 무린데 싶은 생각도 들지만. 뭐 그건 유머니까.
고집스러운 유머 감각이 약간 질릴 때에도 있지만,
대중에게 익숙한 단어들을 조합하여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또는 야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내다니. 하면서 매번 놀라게 되고 만다.
천천히, 음미하듯 그의 에세이를 읽고 있자니 어느덧 12시.
여름에 빠질 수 없는 비빔면으로 점심을 간단히 때우곤 다시 책을 들었다.
매 매 매-
해님이 구름에 가려져 과장을 보태면 약간 선선했던 하늘이 이제는 완연한 여름으로 바뀌고, 매미가 처연히 여름의 끝자락에서 열심히 구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더운 여름.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 식탁 위에서 책을 읽다 그대로 낮잠에 빠져들었다.
젠장.
의자 위에서 30분을 졸아서 그런지, 오랜만에 악몽을 꿨다.
회의실에서 정체불명의 회의를 하고 있던 나. 역시나 꿈에서도 졸고 있었는데. 드문드문 귓가로 상대방이 졸고 있는 내 태도를 지적하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역시. 꿈은 꿈인 듯, 상대의 화난 목소리를 듣고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나는 계속해서 졸고 있었다. 마치 가위에라도 눌린 듯.
제기랄. 좀 깨워주지. 지독한 개인주의다.
후텁한 공기 탓인지, 아니면 악몽 탓인지 일어나 보니 그 잠깐사이에 등이 완전히 축축해졌다.
여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