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좋아하는 일은 하게 되어있다.

달리는 일에 관하여

by 아무개요

만약 누군가. “근래에 당신이 가장 빠져있는 게 뭐요?”라고 묻는다면 (물론 주변에 이런 질문을 하는 인간은 없다. 애석하게도.) 나는 망설이지 않고 “달리기”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꾸준히 한 것은 아니지만 달리기는 꽤나 오래전부터 해 왔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차이점은 달리기를 대하는 태도다.


대학교 입시의 문턱을 갓 넘은 새내기였던 내게는. 20살이 넘어서야 갑자기 인생이 내민 가난이라는 도전장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소리 소문 없이 마치 열대우림에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처럼 찾아온 그것은 (아니 생각해 보면 우리 가족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천천히, 인지할 때 즈음에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될 정도로.) 이제 ‘대학교’라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아련하고 막연한 꿈을 가진 청년을 좌절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변변찮은 집 하나 구하기 어려운 신세에 소위 말하는 판잣집으로 들어간 부모님. 부유하게 자라 항상 ‘사장님’ 소리만 듣고 살던 아버지가 이제는 주유소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으로, ‘사모님’ 소리를 듣던 어머니는 시장으로 일거리를 찾아 분주히 돌아다니셨다.


듣기만 해도 숨이 헉- 하고 막히는 당신들의 사는 모습을 담담히 내게 쏟아내고 나면 항상 “그래도 이게 어디니. 하나님께 감사하자”라던 어머니의 목소리를 그때는 왜 그리도 듣기가 싫었을까.


갓 대학교를 입학한 모든 새내기들이 새로운 세상에 발을 디딛고 관계를 넓히며 즐거운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때.


오리엔테이션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술 한자 하자며 기숙사 방문을 두드리며 찾아와도. 오늘 밤에 그들과 나눌 용담호열에 대한 흥분보다는, 술값에 대한 걱정이 앞섰고.


기숙사 방에 삼삼오오 모여, 침대 위에 과자부스러기를 흘려가며 오늘은 어떤 여자애를 만났는데, 이랬다는 둥. 고백을 했는데 차였다는 둥의 연애사를 즐거운 표정으로 떠들어대는 친구의 무용담을 그저 무협지에나 나오는 딴 나라 세상 이야기로만, 그저 적당히 받아치며 흘겨 들을 수 밖에는 없었던 가난한 대학생 시절.


어머니가 부르짖던 ‘하나님’은, 그리고 ‘천국소망’과 ‘감사’따위는 내게는 없었다.


그저 홀로 4평 남짓한 기숙사 방 침대에 걸터앉아 깜깜한 암흑만을 위안 삼고, 판타지/무협 소설과 각종 드라마/영화를 어둠의 경로를 통해 섭렵하며 나만의 ‘천국’으로 도피하던 그때.


대학생활 내내 내가 꿈에도 원하지 않던 현실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살기에 바빴던 그때에도,


새 옷을 샀다며 자랑하는 친구들, 갑자기 휴학을 하고 해외로 여행을 간다던 친구들,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게 없다며 방탕하게 기숙사에서 뒹굴며 아무런 생각 없이 놀고 있는 그네들이 너무나 부럽고 부러워 사무치도록 가슴이 답답할 때에면 종 종, 아무 생각 없이 학교 주변을 정신없이 뛰었다.


참.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멍청했을 때가 또 없다 싶다. ‘가난할 수 록 멍청해진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가난’하기에 한 차 앞에 놓인 상황에만 급급할 수 없다는 뉘앙스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실로 그때의 내가 딱 그 상태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주변 친구들조차도 스스로 과외나 알바를 하면서 삶을 개척하기에 바빴는데. 나는 그저 현실도피에만 매달렸다. 아. 옛날이어. 과거로 돌아간다면 싸대 귀라도 한 대 갈겨주고픈 마음이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정신없이 뛰다 보면 어느샌가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잡생각으로 가득했던 머리가, 마치 누가 꽉 쥐고 있는 것 같던 가슴이 신기하게도 서서히 맑아지며 마침내에는 온통 내 숨소리로 가득해지는 순간이 반드시 왔다.


이마에 땀이 송길호 맺히고, 그저 내 앞에 놓인 길을 헤쳐 걸어간다. 숨이 차 온통 헉-헉-거리는 소리로 골이 울릴 때까지. 도저히 달릴 수 없을 만큼 숨이 벅차오르고, 고관절에서 삐걱 소리가 날 것만 같을 때까지.


특히 ’ 자존감’이라는 놈이 박살이 나는 날에는 날씨사정 따위는 아랑곳 않고 달렸고. 종종은 아니지만 불행히도 그런 일이 날씨사정 봐가면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에 가끔씩 우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당당히 밖으로 나가 뛰었다. (물론 그 뒤에 감기로 한 달 정도를 고생한 것은 자랑은 아니지만. )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만으로 겨우 겨우 생활하느라 변변찮은 러닝화도 없었지만, 컨버스로도 충분히 즐거웠다. 달리는 그 순간 만큼은 아무래도 좋았기에. 그렇게 죽기살기로 뛰어야 아이러니 하게도 '살고'싶어 졌기에.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남부럽지 않을 만큼 돈을 벌고 있는 지금도 여전히 간간이 달리기를 하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저 ‘기분전환’용으로의 달리기란. 아무리 달려도 그 실력의 향상에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깨달았다.


‘왜 나는 여기까지 밖에는 못 달릴까’, ‘왜 나는 이리 숨이 찰까’.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러닝화도 신고 있는데. 젊지만 가난했던 청년의‘독기’ 같은 게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지금 돌이켜 보면 그렇지 않다. 적어도 느낌상으로는 그렇다.


정확한 측정장비가 없었던 탓에 그때 당시 내가 뛰었던 페이스라던지, 거리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아마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못 할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이다.


요령 없이 오로지 독기로만 뛰던, 더군다나 제대로 된 신발하나 없이 그저 가슴속에 있던 분을 오로지 ‘토해’ 내기 위해 달렸던 놈이 달리면 얼마나 달렸겠는가.


즉, 내 달리기 실력이라는 것이 실로 그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고로. 아직도 내 최대 거리는 10km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아쉽다. 너무나도 아쉽다. 나도 언젠가는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다는 마음이 이제 어느덧 나이 40을 바라보는 시점에 생기고야 말았다.


이런 개인적인 성취나 목표와 더불어, 최근 러닝에 다시 빠진 또 다른 이유는 건강이다. 2년 전 즈음 이른 아침 공복상태에서 느껴지는 어지러움 그리고 매스꺼움과 점심식사 이후 빠져나올 수 없는 졸음에 방구석 의학전문가가 되어 열심히 찾아본 결과.


내게 불현듯 찾아온 증상들이 죄다 당뇨와 관련이 있다는 진단을 스스로! 내리게 되었다. 참 대단한 의사 나셨다. 흠흠.


마침. 매 년 연례행사처럼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권고하는 직장인건강검진 결과에도 ‘당화혈색소’ 수치가 꾸준히 우 상향하는 경향을 보이는 게 확인되었고. 아버지 쪽은 아니지만 어머니 쪽 친척들 대다수가 당뇨로 고생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다.


심각한 문제였다. 내 나이 40에 당뇨라니. 수년 전부터 당료로 고생하며 비쩍 말라 있는 우리 이모를 생각하자,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래선 안된다. 뭐라도 해야 했다.


그 ‘뭐라도’를 찾으려 약 1년간 점심시간 틈틈이 직장동료들과 근처 헬스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근력운동을 했다. 그 결과 체중이 불었고, 근량이 미약하게 증가되었으며 체지방이 줄었다.


운동을 시작한 뒤로, 아침에 느껴지던 어지러움은 해소가 되는 듯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화혈색소나 공복혈당 수치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결국 해를 넘기고, 재등록을 하는 시점에서 나는 동료들과 다른 배를 타기로 결심했다. 그간 재미있었다. 함께 땀을 흘리는 그 시간이. 서로 “하나 더!”를 외치며 상대를 독려하고 때로는 혹독하게 몰아붙여 스스로의 한계를 억지로나마 뚫게 하는 그 파이팅 넘치는 남자들의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가끔 시간이 도저히 안 맞아 혼자서 헬스장에 갈 때면 생기지 않은 의욕을 가까스로 붙잡은 채 꾸역꾸역, 그것도 원래 하던 무게에 한참을 못 미치는 것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스스로 참담함을 느꼈다.


모든 일에 왕도는 없고, 꾸준히 해야 성과가 나오는 법인데 헬스는 꾸준히 하기에는 내게 너무 버거웠다. 매번 짐처럼 느껴지는 운동을 어떻게 매일 한단 말인가.


물론 매번 운동 후에 먹는 단백질 보충제와, 하체운동을 하고 난 다음날이면 대략 삼일 정도는 엉거주춤 걸어야 하는 수고로움. 마치 오랜 가뭄에 수맥이 메말라버린 계곡물처럼 나오는 샤워실의 물줄기 등등이 기타의 이유라면 또 이유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그건 나도 안다.)


아무튼. 결국 돌고 돌아. 그렇게 다시 달리기로 돌아왔다. 적어도 내겐 달리기라는 것은 짐처럼 느껴지지 않는 유일한 운동이다. 아마 몸이 계속 이것을 찾는 걸 보면 대학생 때에도 가난해서, 그저 할 운동이 이것밖에 없어서라기보다는 그저 ‘좋아서’ 한 게 분명하다.


적어도 올해에는 하프마라톤을 완주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뛰고 있다.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훈련’을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큰맘 먹고 러닝용 시계도 구매했다.


근 두 달간 약 240km가 넘는 거리를 뛰었고 페이스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오래 그리고 길게 달리는 것을 목표로 뛰고 있다.


아. 이렇게 계속 꾸준히 뛸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불행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최근 매일 10km를 뛰고 있는데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생기고 말았다. 간단히 요약하여 항문의 사정이랄까. 나름 훈련된 사람에게는 10km는 웜업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지언정. 여태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않던 내게는 몸이 꽤나 장거리에 무리라고 느꼈는지, 항상 피곤하면 먼저 반응하곤 하는 내 엉덩이 센서에 신호가 온 것이다.


벌겋게 부어올라. 욱신대는 것이. 꼭 장거리? 달리기를 연달아하고 나면 심해지는 것이 못내 속상하다. 당뇨 위기에 치질이라니. 나약한 육신이여. 고통받을 지어다.


우습지만 섬뜩한 소리. 유전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최근 들어 항문에 대한 불평을 어머니께 해대니 아버지는 물론이거니와 고모들 대부분이 이미 오래전 수술을 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제기랄. 또냐.


살풍경한 수술대 위에 민망한 자세로 엎드려 치부를 드러내 놓고, 그렇고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고로, 일단 급한 데로 치질에 좋다는 좌욕기를 하나 장만해 꾸준히 달리기 전/후로 해주고 있다.


뭐, 엉덩이 아래로 자신의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선생님의 반응을 보니 제법 효과는 좋아 보인다. 제발. 제 발로. 수술만은 제발. 하나님은 왜 내게 강인한 응꼬를 주시지 않은 것인지 원망을 해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신발장에 고이 모셔둔, 제법 때가 묻은 러닝화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며 당장이라도 거리로 나가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결국 무언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일은 끝내는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따듯한 물에 좌욕 한번 한 뒤,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있다. 어제는 참아야지 쉬어야지 했는데. 엉덩이가 근질거려 가볍게 몸만 풀고 온다는 것이 8km를 뛰어버린 탓에!!


불쌍한 내 항문. 근데 러너들 커뮤니티에 보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 같던데, 어떠신지…


마지막으로, 달리는 사람의 마음을 이보다 담백하게 그리고 적나라하게 표현한 글이 있을까 싶을 정도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일부분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락을 발췌해 본다.


강물을 생각하려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중 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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