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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징구리 May 20. 2021

취기(醉氣)

취한다.

   어떤 것에 몸과 마음을 빼앗겨서 몸과 마음을 제대로 가눌 수 없게 될 때 우리는 ‘취한다’라고 말합니다. 술에 취해 정신이 흐려지고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습니다. 분위기에 취해 마음이 쏠리어 넋을 빼앗기게 됩니다. 사람에 취해 정신 차리지 못하고 얼이 빠지게 됩니다. 나를 취하게 하는 그것은 나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듭니다. 내 마음도, 내 정신도, 내 몸도 말이죠. 그것으로 인해서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살아갑니다. 취기(醉氣)에 지내게 되죠.

   우리를 취하게 하는 것들은 단순히 술뿐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호응에도 취하고, 읽은 책이나 들은 음악에 취해 있기도 하고, 분위기나 열기, 혹은 사람에 취하기도 합니다. 그런 취기(醉氣)들은  생각과는 상관없이 나를 움직이게 합니다. 그것은 나를 흥분시켜,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 들게 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게 합니다. 용기를 가지게 하여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전달할  있게 됩니다. 취하게 될때 우리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합니다. 꽁꽁 숨겨두었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것이 취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봉인해제. 일상의 탈출구.  취함으로써 우리는 현실에서는 드러내지 못한 나의 모습을 드러낼  있습니다.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나를 취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취해 있을 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진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뒤에 숨겨진 부끄러움일 때가 많습니다. 술이든, 담배든,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그런 것들은 나를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에 취한다면, 그것에만 의지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을 얻을 때 진짜 나의 모습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얻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것들을 빼앗아 가버립니다. 한정적인 것들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렇게 취하게 하는 것은 내 생명을 얻게하는 것이 아니라 내 생명을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담배 A5, 크로키(croquis), 싸인펜,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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