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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징구리 Jun 01. 2021

나는 식물입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

   나는 식물입니다. 햇빛 앞에 서면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아침이면 햇빛 앞에서 나는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햇빛 앞에 있을 때마다 나는 생명을 얻습니다. 햇빛은 나를 비춰주며 나를 빛나게 하고 있고, 나를 감싸면서 나를 지켜주고 있으며, 나에게 영양분을 주며 나를 크게 만들고 있습니다. 햇빛이 없으면 나는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햇빛은 나의 전부입니다.


   그렇게 매일을 살고 있던 어느 날 애벌레가 찾아옵니다. 애벌레는 나에게 새로운 친구가 되자고 다가왔습니다. 애벌레는 나에게 다가와서 나의 무료함을 달래주었습니다. 매일 같은 지루한 삶에 애벌레는 말동무가 되어주었습니다. 그 애벌레로 인해서 나의 존재는 확인받았습니다. 애벌레는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또 다른 요소가 되었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확인할 수 있는 대상. 그것이 나에게 애벌레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애벌레는 계속해서 내 잎을 갉아먹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잎들은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계속해서 기운이 빠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힘이 되는 것은 ‘애벌레는 끝까지 나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나는 애벌레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어놓았습니다. 애벌레는 절대로 나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햇빛 앞에서의 내 모습은 초라해져만 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기 싫어서 계속해서 자신을 숨기려고 했습니다. 햇빛 앞에 나가기가 꺼려졌습니다. 생각해보면 애벌레와 함께하기 시작하면서 햇빛에 다가가는 시간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애벌레와 함께 있는 것이 재미있었기 때문입니다. 애벌레만 바라보고 거기에 집중하고 열중하면서 지냈습니다.


   시간이 또 흘렀습니다. 애벌레는 일찌감치 나를 떠나버렸습니다. 나에게서 먹을 것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남은 것들은 애벌레가 갉아먹어 뼈대만 남아있는 잎들과 햇빛을 보지 못해 떨어지기 일보 직전인 노란 잎들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는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내 삶의 이유조차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혼자 남겨졌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던 중에 저 멀리 빛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빛은 앙상하게 남은 나에게 다시 한번 다가오라고, 지금의 모습도 괜찮다고 위로하며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웅크리고 혼자였던 나에게 빛이 다가와서 혼자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제 지킬 것도 없습니다. 내려놓을 것도 더 없습니다. 빛 아래에 다시 한번 섭니다. 오래전에 가졌던 생동감의 느낌이 듭니다. 처음에 기지개를 켰던 느낌, 내가 확장되고 펼쳐지고 살아나는 느낌.


   시간이 또 흘렀습니다. 나는 이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잎도 새로 생겨났습니다. 이제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나를 살리는 빛이 있기 때문입니다. 빛은 내 곁에서 항상 나를 살리는 존재였습니다. 그 빛 아래에서 나는 진짜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고, 나를 키울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 사람들이 어둠 속에 있는 이유는 빛으로 나오면 자신의 부족함이 모두 드러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둠을 감추기 위해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어둠으로 나아갑니다. 내가 가진 작은 것을 지키기 위해, 내가 그것을 독점하기 위해서 혼자 웅크리고 지냅니다.

   이제 나올 때입니다. 어둠은 나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거짓된 생명은 나를 어둠에서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계속해서 나의 부끄러운 부분들이 부각됩니다. 빛으로 나가면 누군가가 나를 버릴 것이라고 계속 생각하게 합니다.


   빛은 끝이라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나에게 비춰지고 있습니다. 다시 나를 살리기 위한 그 빛이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빛으로 다시 한번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빛과 어둠의 대비, 20.3 x 25.4cm 필름카메라(흑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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