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과 파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울어본 적이 있나요? 하지만 바로 옆 사람의 삶 속에서 느끼는 모든 것에서는 그러한 공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계속해서 배우는 것은 절단하고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리된 모습입니다. 너와 나의 경계는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어떤 자격이 있어야 그 테두리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우리는 절단하고, 나누어 나만의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누군가는 더 많이 가지고, 누군가는 덜 가지게 되는 경계를 지으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테두리를 자신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는 노력을 하게 되죠. 자신의 자리를 더욱 넓히기 위해 우리는 노력하면서 지냅니다. 다른 이들의 경계를 무참하게 짓밟으면서, 다른 이들의 경계를 침범하면서까지 말이죠. 그러기 위해서는 이어지면 안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단절된 채로 남아있어야 합니다. 연결된다면 그 사람의 경계를 허물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절’과 ‘파괴’를 일삼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더욱더 우리의 자리를 넓히기 위해 가져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돈, 음식, 신발, 옷, 집... 등등,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많은 것들을 짊어지게 될 때, 우리의 자리는 넓어지나, 그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를 겪게 됩니다. 계속해서 자연스레 우리의 자리만 찾고, 지키게 되면서 그 자리에 누군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면서 살아가게 되죠. 자신의 경계를 넓히기 위해서 살아가지만, 오히려 그것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현실입니다. 계속되는 싸움의 연속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경계를 지켜야 하고, 또 누군가의 경계를 침범해야 하고, 마치 공성전을 하듯이 말이죠.
정말 경계를 확장하게 시키는 방법은, 내가 만든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경계가 없으면 모든 것에서 자유롭게 됩니다. 내가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내가 가진 경계에서 한 걸음만 나아가면 내가 지니지 못한 모든 세상이 내 경계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더하기가 나의 경계를 넓혀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빼기를 통해서 나의 것을 내 경계 밖으로 내어놓을 때, 나의 것이 있는 바깥이 곧 나의 경계로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다른 이들의 모습까지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와 온전히 함께하면서 말이죠.
나의 말과 행동의 차원이 잘하고, 잘못하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받아들이고, 찾아들 수 없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내 것들을 다른 곳에 두어야 할 때입니다. 그때 나의 것이 있는 외부 세계는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내가 가진 경계를 넘어서 자유롭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의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도 넘어서 지내게 될 것입니다.
*삶의 절심함, A5,수채화 물감과 수채연필, 종이 250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