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받아들여야만 할 때 생겨나는 것이 ‘고통’입니다. 예기치 않게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외부적인 충격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아픔을 느낍니다.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병을 내 몸에 받아들일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되고, 또 마음 적으로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을/사람을 혹은 사건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듯 고통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한 육체적/정신적 반응입니다. 이렇듯 고통은 나에게 ‘억지로’ 주어진 것입니다. 고통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위험에서 피할 수 있습니다. ‘고통’은 ‘고통받는 나’에게서 계속해서 나를 벗어나게 만듭니다. 고통을 통해 우리는 나를 바라보게 됩니다. 동시에 고통이 나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하기에, 다른 이들을 볼 수 있는 역할도 수행합니다. 즉, 우리는 고통이 있기에 자신에게서 초월하여 멀어질 수 있으며, 또한 자신의 얼굴에서 더 나아가서 타인의 얼굴을 향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에게 고통이 있기에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습니다. 고통이 있기에 타인이 나에게 부르짖는 소리를 신음하고 한탄하는 진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결국 고통은 우리를 참된 관계로 초대합니다. 고통이 있기에 우리는 관계할 수 있습니다(passion은 compassion을 위한 전제). 타인의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진짜 함께함을 느끼게 되고 상호 관계가 가능해집니다. 나와는 완전히 다른 타인(그 자체로 나에게 폭력으로 다가옴)을 받아들이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고통’인 것이며, 그 고통이 있기에 동시에 온전히 함께하는 관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죠.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있을 수 있게 하는 것,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고통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길이 됩니다. 타인의 얼굴과 마주하고 더 나아가 만나게 될 때 비로소 책임 있는 주체가 됩니다.
고통은 타인과 함께하는 길입니다. 타인과 함께하게 될 때 또한 우리는 ‘나’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온전히 나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과는 다른 진짜 내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바로 그 고통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통과 마주하십시오. 고통 속에 있는 다른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고통으로 다가오는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나의 진짜 모습을 찾게 될 것입니다.
*고통(크로키), 연필, 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