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료”
소고기를 구워 먹습니다.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 우리는 그 위에 소금을 뿌려먹습니다. 국을 끓여 먹습니다. 뭔가 부족한 것이 느끼지기에 우리는 라면스프를 넣습니다. 내가 먹으려는 것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 우리는 조미료를 사용합니다. 음식에 맛을 더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 음식에 맞는 조미료들을 사용합니다.
사람들에게 조미료 맛은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그 음식의 맛이 조미료에 따라서 바뀌게 됩니다. 강하게 다가오는 그 맛, 즉각적으로 느껴지는 그 맛은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냥 소고기 맛을 보기보다는 소금으로 간을 한 소고기가 더 맛있습니다. 라면스프가 들어간 부대찌개가 입에 더 잘 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미료를 사용합니다.
우리 인생에도 그렇습니다. 내가 가진 나만의 맛이 있는데, 그 맛은 너무나도 밋밋해 보입니다. 나의 진짜 맛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데, 그 맛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의 인생에 조미료를 사용합니다. 그 조미료가 들어가면 나의 맛은 한층 더 강해집니다. 조미료는 즉각적으로 나의 모습들을 상대방에게 인지시켜줄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이끕니다.
그런 조미료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강한 맛을 내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죄”인 것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맛을 극대화로 올리기 위해서 우리는 거짓말이라는 조미료를 사용합니다. 내가 가지지 못한 맛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이 가진 맛을 빼앗아서 조미료로 사용하기도 합니다(도둑질). 내가 가진 맛을 알아봐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우리는 시기와 질투라는 조미료를 인생에 붓기도 합니다. 그렇게 내가 가진 맛에 만족하지 못하고 우리는 다른 맛들을 갈구 하면서 지냅니다.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다른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서 말이죠.
조미료들은 나의 맛들을 계속해서 잡아먹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고유의 맛은 그런 조미료들로 인해서 조금씩 사라지게 됩니다. 강한 맛, 바로 얻어지는 맛들로만 나는 기억됩니다. 그래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진짜 나의 모습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금속이 산소와 반응하여 녹이 슬어 그 금속이 가진 진짜 속성들이 사라지듯이, 음식에 곰팡이가 슬어서 음식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듯이, 나의 모습에 죄라는 이끼는 계속해서 나에게 붙어서 나의 진짜 모습을 가리고 계속해서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나에게 있는 고유한 맛들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조미료들을 털어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조미료들은 내가 가진 진짜 맛을 가리고 있습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여겨지면서 나의 멋을 뽐내기 위해서 입었던 여러 가지의 옷과 액세서리들은 오히려 내가 가진 진짜 모습들을 가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받아들여지고 위해서 우리는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맛이 아닌 다른 맛에 눈을 돌립니다. 내가 가진 멋이 아닌 다른 멋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될수록 우리는 스스로의 맛을, 그리고 스스로의 멋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의 고유한 맛을 보려고 하기보다는 나에게 부여된 조미료의 맛을 보려고 할 것이고, 내가 가진 고유한 모습이 아닌 내가 가진 액세서리들만 바라보게 될 것 입니다.
내가 가진 고유한 맛이 있습니다. 그 맛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내 가치는 어떠한 조미료보다 더 귀합니다. 건강하게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는 나만의 맛을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의 맛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