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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징구리 May 12. 2021

스펙

“인생 설명서”

   취업을 위해서 필요한 스펙들이 몇 가지나 될까요? 할아버지 세대는 면접만 보면 취업이 되었고, 아버지 세대만 해도 자격증만 있으면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삼촌 세대는 대학만 나오면 회사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는 학벌, 학점, 토익이 중요하게 생각되었고, 시간이 지나니까 어학연수나 자격증, 공모전. 이제는 봉사활동이나 대외활동, 아르바이트까지 있어야 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않은 스펙을 가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다른 이들과 차별되는 스스로에 대해서 내세울 수 있게 되었고, 또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이룩하고자 하는 것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스펙이 왜 필요하게 되었을까요?


  스펙은 Specification의 약자로 “설명서”나 “사양”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과는 특별난 것을 항목화 하여 명시한 것이 스펙인 것이죠. 내가 가진 것을 드러내는 것이 스펙입니다. 컴퓨터에 딸려 나오는 설명서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드러내고, 나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드러내는 것이 스펙인 것이죠. 어쨌든 “나는 이런 것을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사용해줘”라고 말하는 설명서에 몇 줄 더 늘리기 위해서 우리는 인생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설명서가 필요한 이유는 제품을 문제없이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조심히 다뤄지길, 혹은 제가치대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자는 설명서를 만듭니다. 하지만 나의 설명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용서라기보다는 증명서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나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해 증명된 기간에서 따낸 여러 가지 모습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드러나기 위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드러나는 것에 집착하는 이유는, 혹은 증명서를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서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할 때 나타나는 가장 큰 모습은 “확인”입니다. 사랑을 확인받기 위해서 그에 따른 여러 징표인 물건을 우리는 요구하면서 지냅니다. 여자 친구 또는 남자 친구를 믿지 못할 때 계속해서 여자 친구 또는 남자 친구의 행방을 추적하고 확인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그 사람이 지내왔던 시간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그 사람이 가졌던 마음의 고생도, 그 사람이 가진 보이지 않는 가치도 바라보지 않고 있습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우리는 계속해서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면서 지내고 있을 뿐입니다. 어디에 기대야 할지 모르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가요?)

  그래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은 “내가 기댈 수 있는 다른 것”을 만드는 것입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무엇을 만듭니다. 또 그 믿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위해서, 믿게 만들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킵니다. 확인시켜주기 위해서 직/간접적으로 내가 가진 것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이죠. 내가 가진 지식, 내가 가진 물건, 내가 가진 사람, 내가 가진 명예가 전부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또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해 보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가진 것을 늘립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내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 너무나도 많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 드러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입고 있는 옷 입이다. 나를 드러내고자 내가 입은 그 많은 옷은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할 뿐더러 나의 모습을 더 감추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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