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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진영 Jan 08. 2019

‘소련’으로의 시간여행, 뺘티모르스크

마더 러시아, 볼고그라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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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평원을 달리고 달려 도착한 마을, 뺘티모르스크 (Пятиморск).

볼가 강과 돈 강을 잇는 볼고-돈 운하의 돈 강쪽 입구에 위치한 마을로, ‘다섯 바다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운하로 두 강이 연결되어 다섯 바다(흑해, 아조프해, 카스피해, 발트해, 백해)가 연결되었다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 마을에는 아무것도 없다. 웬만해서는 러시아의 많은 여행지들을 다른 이들에게 추천하는 나도 차마 여기로 가라고는 말을 못 한다. 왜냐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


마을 중심가. 말 다했음

그러면 정말로 별 볼일 없는 시골 마을인 것인가, 하면 그런 것은 또 아니다. 뺘티모르스크는 한편으로 20세기 소련의 흔적이 뚝뚝 묻어나는 곳이기도 했다. 도착한 후 마을의 작은 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세트장 같았다. 벽에 걸려있는 레닌의 초상화와 소련의 신문 기사들, 벽에 걸린 붉은 깃발 등등 전부 요즘 러시아에서도 보기 힘든 것들이라서 마치 50년쯤 전으로 시간여행을 온 기분이었다.


예컨대 공고문 형태로 돼있던 어떤 편지? 상소문? 제목을 보니 뭔가 익숙한게 북한 말투랑 똑같아서 그랬다. ‘볼가-돈 건설노동자들로부터 소비에트 인민의 위대한 지도자이자 교육자인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 동지에게’ 어쩌구저쩌구.


하지만 한국 사람으로서 스탈린을 미워할 백만 가지의

이유는 차치하고서라도 당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시킨 것도 모자라 심지어 이 곳 볼고그라드까지 이주시킨 것을 생각하면 그닥 내키지 않고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기도 했다. 하필이면 러시아에서 제일 사막에 가까운 척박한 곳들만 골라서 보냈으니...



대충 이정도만 보고 얼른 배를 타고 싶었다. 여기까지 온 유일한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름 휴가를 내서 왔으니 배 타고 아이스크림 먹으며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곳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작은 유람선에 올라타 시원한 선실 내부로 들어갔다. 배 위에서 본 볼가 강은 역시나 거대했다. 강 위에서 수평선이 보일 정도니 이 곳이 강인지 바다인지 사진만 놓고 보면 모를 것 같았다.



배고파서 선실 옆에 있는 매점에 가 봤는데 먹을 건 없고 아이스크림 밖에 없었다. 허기진 배를 아이스크림으로 차우고 바깥을 보니 운하의 갑문을 지나 이미 돈 강으로 넘어와 ‘칼라치’ 주변을 떠다니고 있었다. 강가 주변으로 거대한 동상들과 가이드의 이런저런 설명(이 운하가 얼마나 대단한지(?) 등등...)이 계속됐지만 그닥 관심가지 않았고 그저 돈 강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멍때리며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맞다, 나 지갑 잃어버렸지.....’ 얼른 핸드폰을 켜서 마지막 희망에 기대를 걸어본다. 마지막 희망은 다름이 아니라 공항 분실물 센터. 인터넷으로 브누코보 공항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전화를 해 본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브누코보 공항 분실물 센터인가요?”

“Да” (yes)

“금요일 저녁에 국내선 14번 게이트 앞에서 지갑을 잃어버려서 전화 드립니다....흑...”

“이름이 뭐죠?”

“췬뇬(진영чхинён...)이요...ㅠ” (사실 이미 거의 낙담한 상태였음)

“아, 있네요.”

“네?????”


귀를 의심했다. 진짜 있다고?! 감격하면서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단어로 이름 모를 그분에게 나의 환희와 감사를 표현하고 전화를 끊었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내 이름가지고 그게 찾아지나? 또, 위치 하나만 알려줬는데 그게 나오고, 그동안 공항 한 가운데 놓여있는 지갑을 아무도 손을 안댔다고...? 뭔가 이상하고 께름찍해서 일단 내 눈으로 볼 때까지 너무 기대하진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돈 강 유람은 끝이 났고 배는 다시 뺘티모르스크로 돌아왔다. 그 다음은 비치! 볼가 강변의 모래사장에서 자유시간이다. 이번 투어 가이드와 샤슬릭을 먹으며 잠깐 얘기를 나누었는데, 볼고그라드 고려인 사회 얘기를 해주면서 고려인 센터 ‘미리내’에 꼭 들러보라고 했다.


나도 궁금했기 때문에 꼭 들러보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그날 저녁 광장에서 우연히 만난 ‘소피아’가 다음날 시내를 구경시켜주느라 들르지 못했다 ㅠ



어쨌든 그렇게 늦은 오후에 투어는 끝났고 다시 볼고그라드로 돌아왔다.


뭔가 아쉬워서 땅거미가 질 때쯤 ‘마마예프 쿠르간’(Мамаев курган)으로 향했다. ‘마마이의 언덕’이라는 뜻으로 볼고그라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이자 2차대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가장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2차 대전이 끝나고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소련에서만 약 2천700만명의 희생자가 나왔는데, 그 중 스탈린그라드 전투 하나에서만 200만명이 희생되었다. 가장 격렬했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의 중심, 마마예프 쿠르간은 전쟁 이후 2차 대전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가 되어, 그 자체로 기념비가 되었다.


마마예프 쿠르간


전쟁이 끝나고 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볼고그라드 전체를 ‘전쟁 기념비’화 하면서 여기저기에 전쟁 기념 박물관을 세우고, 폭격을 맞은 건물의 잔해를 보존하고, 참전용사 기념비와 희생자 추모비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그 절정이 소위 ‘마더 러시아’라고 불리는 ‘조국 어머니 상’(Родина мать — зовёт!, 조국 어머니가 부른다!)이다.


모티프는 승리의 여신 니케와 당시 스탈린그라드 주민인 이조토바라는 여성이다. 하지만 아마도 소련의 2차대전 참전 독려 포스터인 ‘어머니 조국이 당신을 부른다’(РОДИНА МАТЬ—ЗОВЁТ!)에서 가장 큰 모티프를 얻은 것 같다.



그리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희생자 추모관을 볼 수 있다. 벽에 색유리 모자이크로 희생된 군인의 이름을 하나하나 새겨놓았고, 그 한 가운데에는 횃불을 들고 있는 손


영원히 타오를 것 같은 그 횃불은 바로 이 언덕 위에서 죽어간 200만 명의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기념공원의 한 거대한 벽면에는 당시 종군기자였던 그로스만의 수필 한 구절이 씌어 있었다;


Железный ветер бил им в лицо,

а они все шли вперед,

и снова чувство суеверного страха охватывало противника:

люди ли шли в атаку, смертны ли они?

무쇠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때렸지만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으며

미신적 공포가 다시 한 번 적들을 휘감았다;

공격하러 가는 저 사람들은 산 자들인가, 죽은 자들인가?



다음 날에는 전쟁기념관을 구경했다. 전날 셀카봉 들고 바보같이 서있는 내가 불쌍했는지 어떤 러시아 여성(이름은 소피아)이 다가와 ‘사진 찍어줄까요’ 라고 물어보면서 친구가 되었고, 그 친구의 친구(이름은 안나)가 이 박물관에서 가이드로 일하고 있었다. 덕분에 무료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구경할 수 있었다!


볼고그라드 전쟁기념관은 ‘파노라마’로 유명한데, 아날로그 식으로 360도를 주위에 빙 둘러 그림을 그려놓아서, 당시 볼고그라드 상황이 어땠는지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랫층에는 여러 전시들로 가득 차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고 재미있었다. 북한에서 보낸 축전도 구경할 수 있었다! (조금 섬뜩했다...)



그렇게 새로운 인연으로 러시아 친구들도 생기고, 아직 식지 않은 월드컵의 열기가 가득했던 볼고그라드, 비록 볼거리는 없고 여름의 날파리 떼와 40도의 폭염에도 앞으로 잊지 못할 볼고그라드!



그리고 모스크바로 돌아온 순간 공항 분실물 센터에서 되찾은 지갑!!! 이건 기적이야...


(하지만 그렇게 기적적으로 찾은 지갑은 소치에서 또 다시 분실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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