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겨울연가'로 한류 붐이 일고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앞뒀던 2001년, 현대차는 당시 한·일 관계의 훈풍을 타고 일본 시장에 진출했다가 실패의 쓴맛을 봤고 결국 8년 만에 승용 시장에서 철수한 이력이 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올해 2월, 현대차는 일본 전기차 시장에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다시 한번 도전했다.
그동안 많이 달라진 현대차는 자동차 본고장인 유럽과 북미 시장에서도 인정받은 만큼 자신만만했다. 아이오닉 5를 시승해본 일본 언론인들은 비약적으로 발전한 현대차의 상품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이대로라면 의미 있는 성과를 기대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완전히 달랐다.
보수적인 일본 시장
수입차의 무덤다워
중국, 미국 다음가는 규모를 자랑하는 일본 자동차 시장은 성공하면 대박이지만 그만큼 공략하기 어렵기로 악명 높다. 자국 브랜드 충성도가 높아 전체 시장 점유율 중 무려 94.6%를 일본 브랜드가 차지하며 수입차 중에서 그나마 잘나가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점유율이 1.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수입차들이 일본에서 고전하는 이유로 자동차 관련 규제와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 비싼 유지비 등을 꼽는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일본 시장은 '수입차의 무덤' 혹은 '갈라파고스'라고 불리며 일본에서 성공했다면 나머지 국가에서의 성공은 사실상 보장됐다고 보는 분위기다.
긍정적 반응에 컸던 기대치
반년 동안 224대 판매 기록
지난 5월 일본에서 아이오닉 5와 넥쏘의 본격적인 판매가 시작되자 현지 언론 및 유튜버들의 시승기가 줄줄이 공개되었다. 이들은 "언제 현대차가 이렇게 치고 올라왔지?", "이 차가 일본차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왜 토요타는 이런 차를 못 만드나" 등의 반응을 보이며 극찬했다. 한 자동차 전문 기자는 "하드웨어는 세계 톱 레벨이고 전체적인 완성도는 벤츠 EQA보다 높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자동차 수입조합(JAIA)의 통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 8월 76대가 등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2월 일본 진출 이후 누적 판매량은 224대를 기록했으며 법인차와 상용차를 제외하고 일반 고객에 인도된 승용차는 7~8월 종합 136대를 기록했다. 긍정적인 반응과 달리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일본 수입차 시장 감소세
이번에도 과거 전철 밟나
설상가상으로 일본 자동차 시장 규모는 하락세다. 1990년 778만 대로 최대치를 기록한 일본 내수시장은 2000년 596만 대, 2010년 496만 대에 그쳤다. 수입차 판매량 역시 감소했는데 올 1~8월 일본 수입차 전체 등록대수는 14만 8,291대로 전년 동기(17만 5,311대) 대비 15.4% 줄었다.
이러한 하락세는 인구 감소 및 고령화, 가처분소득 감소, 도시 인구 증가로 인한 대중교통 이용 증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어려운 상황에서 현대차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고 일본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