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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코모 Jul 02. 2021

"그땐 그랬지" 추억 떠오르게 만드는 레전드 국산차

  

사람들이 저마다 과거를 추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중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이면 당연, 자동차를 기억하며 바라보고 “그땐, 그랬지”라며 옅은 미소를 띨 것이다. 아주 오래전 기억 저편 어딘가, 우리들이 꼬맹이었던 시절에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타고 다니셨던 차를 기억하는가? 필자의 기억으론 아버지의 검은 초기형 르망이 기억난다. 참 오래도 타고 다니셨던 터라 여전히 아주 가끔씩은 그리울 때마저 있으니 말이다. 


오늘날의 자동차들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젠 좋아지다 못해 자동차가 운전자를 이겨먹으려 하는 요상한 시대다. 그런 하이 테크놀로지가 난무하는 시대에, 옛날 옛적 크루즈 컨트롤마저 귀하고, 파워윈도우는 고사하고 에어컨이라도 된다면 감사해야 한다는 그 시절, 그 시대의 차를 오늘날의 젊은 오너드라이버들에게 차 키를 건네준다면, 아마도 경험하지 못한 생소함에 사로잡혀 헤매며 운전할듯하다. 오늘 이 시간은 추억의 자동차 5종을 선정해 서술해보는 시간을 가지겠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LDriver 님

당시 소형차 사이에

주행능력 끝판왕

1986년 7월 어느 날 TV에서 월드카! 르망! 을 외치며 각진 자태를 내뿜는 차 한 대가 브라운관 안에서 요란하게 광고를 했다. 그 해 여름 대우자동차는 르망을 출시하게 되는데, 르망은 월드카 라는 부분을 강조하며 컴퓨터 제어 방식의 캬뷰레터를 달고 최대출력 89마력, 최대토크 12.9kg.m의 성능을 내는 MSTS 엔진을 달고 나왔다. 


월드카라 불렸던 이유는 3가지의 이유가 있다. 오펠은 자동차의 설계, 생산은 대우, GM은 세일링을 담당한다는 이유로 3사의 합작이라 불렸던 것이다. 오펠의 카데트 E의 보디를 베이스로 한국의 실정에 맞게 디튠하여 판매를 하였다. 출시하고 반응은 대단했다. 직선과 각을 주류를 이루던 당시의 자동차들과 달리 곡선형의 보디를 채택했다. 그러하다 보니 당시의 자동차들 보다 동글동글해 보이는 시각적 효과도 좋았고 하드웨어의 성능도 좋았다. 

출처 : 자동차생활

이유는 국산차 최초의 공기역학적 디자인이었다. 공기저항 계수라는 개념조차 뭔지 모르던 시대에 0.32cd라는 수치를 자랑했고, 당시의 최고의 기술력과 마케팅의 요소였다. 여기에 더불어 국산 소형차 최초로 LDC 전자 계기판을 장착해, 고급화를 꽤하고 첨단의 이미지를 굳히는데 성공한다. 이후 1987년 마이너 체인지를 걸쳐 상품성을 개선하며 라인업을 늘려나갔다. 엔진 또한 변했는데, 기존 MSTS 엔진을 삭제하고 TBi라는 당시의 최신의 기술력을 도입하여 1.5L 와 수출형으로만 제공되었던 1.6L 엔진도 제공되었다. 첨언으로 故) 아폴로 권 선생님이 국산차 중 주행성능이 가장 좋다고 극찬했었던 모델이기도 했다.


이후 1991년 10월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뉴 르망이 출시되었다. 너무 많은 트림에 혼란을 겪는 영업사원들과 소비자들에게, 싫은 소릴 많이 듣던 대우는 GTi, ETi, STi, RTi 4가지 트림으로 축소 및 개편하였다. 이후 1997년 2월 생산이 중단될 때까지 수출 및 내수 포함, 105만 대가 팔려 국민들에게 사랑받아 왔었다.

아니, 그때

나 1단이었어

현대자동차에서 1990년 10월 26일부터 1995년 11월 1일까지 생산한 전륜구동 준중형 차, 코드명은 J1. 코드명에서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눈치챘을 법 하다. 맞다, 그 차는 바로 엘란트라. 아반떼의 조상 격인 이 녀석은 한때 잠시 동안 아반떼라는 엠블럼을 붙여 나왔을 정도니 말이다. 이차의 기반은 미쯔비시의 랜서와 미라쥬의 파워 트레인과 언더 보디를 이용해 개발이 된 녀석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준중형 차의 새로운 장르를 만든 개척자다. 첫 출시 당시 휴먼 터치 세단이라는 컨셉을 잡고 나왔었으나 당시에 어정쩡한 소비자들의 반응으로 인해 바로 고성능 세단 컨셉으로 변경했다.


초기 모델의 경우 단순한 이미지메이킹을 넘어서 고성능 세단이라는 이름값을 실제로도 톡톡히 해냈었는데, 1992년에는 매일경제신문이 히트 상품으로 선정했고, 1994년에 한국능률협회 조사 결과 소비자 만족도 1위로 올랐었다. 1994년 단일 모델로서 100만 대 판매를 돌파할 정도로 내수 시장과 수출 시장 양쪽 모두 좋은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LDriver 님

특히, 시리우스 1.6리터 DOHC 엔진을 장착한 모델은 최대출력 126마력, 최대토크 15kg.m의 시대를 뛰어넘은 넘사벽 구동 성능을 갖춘 레전드 모델로 유명하다. 지금 현행 나오는 아반떼 CN7의 최대출력 123마력, 최대토크 15.7kg.m를 생각하면 대단하단 생각뿐이다. 1993년 4월 5일에 부분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한 뉴 엘란트라를 출시하여, 기존의 1.5L SOHC 오리온 엔진 이외에 판매량이 적었던 시리우스 1.6리터 DOHC 엔진을 단종시킨다. 


대신에, 1.5리터 DOHC 엔진과 1.8리터 DOHC 엔진을 추가하여 판매되었고, ABS와 운전석 에어백이 옵션으로 추가되었다. 하지만 1.6L DOHC의 모델에서 보여줬던 와일드한 출력에 비해 1.5L DOHC는 좀 쳐진다는 평이 대다수였으며, 1.8 DOHC는 극소수로 팔려 데이터가 없다. 후 1995년 3월에 2세대 모델인 아반떼(J2)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되며, 아반떼와 중복되는 모델인 DOHC 엔진이 장착된 1.5 DOHC, 1.8 DOHC 모델은 단종되고 이후 1.5 SOHC의 모델만 남겨 놓으며, 근근이 판매를 이어오다 같은 해 11월 엘란트라의 이름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기아의 첫

준중형 세단

1992년 9월 기아에서 작심하고 만든 세피아가 세상에 나왔다. 프로젝트명 S-CAR. 본래 일본 마쓰다로부터 323의 언더 보디를 들여와 상부 설계만 하여 제작할 계획이었으나, 포드 - 마쓰다 - 기아 3사간 합작 프로젝트의 효자상품인 프라이드의 생산 및 개량 과정에서 기아의 기술 습득 능력에 위화감을 느낀 마쓰다는 기아에게 언더 보디의 공급을 거절했다.


대신에 꿩 대신 닭이라고 과거 기아 캐피탈에서도 쓰였던 1.5L B5 엔진은 공급해 줬다. 이리하여 마쯔다제의 1.5L SOHC 및 DOHC의 엔진을 탑재하여, 최고 속도는 105마력 1.5 DOHC 기준으로 180km/h 페이스리프트 한 후 1996년에 출시한 1.8L 모델은, 기아에서 자체 개발한 139마력 T8D DOHC 엔진을 얹어, 수동 5단 기준으로 안전 최고 속도는 196km/h였다. 주행 성능, 핸들링 모두 동 시기에 출시된 엘란트라에 비해 스포티한 특성을 보이며 판매량 면에서도 나름 선전하였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LDriver 님

자체 플랫폼이라는 특성 때문에 여러모로 대한민국 자동차 역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거기에다 그 당시 동일사의 프라이드 보다 차체가 튼튼하단 평이 많았다. 여기에 컴팩트하고 가벼운 보디, 마쯔다 특유의 효율성 좋은 B5 엔진 거기에 기어비가 짧은 가속형 5단 수동변속기는 세피아의 상승세를 그려줬다.


과거 엘란트라와 마찬가지로 고속도로에서 좀 달린다는 오빠들에게 많은 인기가 있었고, 엘란트라와 더불어 1.5L DOHC 모델 기준으로 계기판을 꺾는 게 가능했던 몇 안 되는 모델 중 하나였다. 이후 1994년 초창기 모델의 하드한 승차감이 주로 지적사항이었던 탓에, 페이스 리프트가 되면서 하체의 세팅 변화가 생겼다. 보다 부드러워지지고 온순해진 외모를 가지게 되었고, 페이스리프트 이후로 엘란트라와 함께 판매량 1,2위를 다퉜을 정도로 성공한 케이스다.

시대를 앞선

파격적인 디자인

중형차 시장에서 쏘나타에 밀리던 대우자동차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차량으로, 이탈리아의 디자인 스튜디오인 그루포 베르토네가 디자인을 맡은 차로 유명하다. 전체적으로 길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차체 공기 저항 계수가 0.29로 1990년 당시에 나온 차종 중에는 상당히 낮은 편에 속해서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용어 자체도 생소했고, 딱히 저게 어떤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 뒷받침하는 근거를 영업사원들이 잘 몰라 크게 어필이 되진 못했다. 그러나 디자인은 국산차 치고,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을 들었을 정도로 세련된 차로 기억되는 모델. 


1990년 9월 26일에 첫 출시는 중형 급 모델로 출시되었고, 같은 해 5월에 먼저 출시된 르망 임팩트에 썼던 2.0L CFI 엔진이 탑재되었다. 옛날차 답게 엔진의 라인업 또한 화려했었는데, 이중 1.5L DOHC의 모델이 주력이었다. 하지만 세제혜택의 문제로 인해 2.0의 모델 판매량은 신통치 못했다. 그리하여 1991년 2월 대우 최초 자체 개발의 DOHC 엔진이 나오게 되는데, DOHC의 엔진 출시 초반은 부품의 정밀도가 떨어져 엔진오일이 새 거나 노킹 현상을 보이는 차가 많았고, 급가속 때 소음과 진동이 심했었다. 시간이 지나 이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후에 에스페로 판매량에 큰 오점을 남긴 사례가 돼버렸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LDriver 님

재밌는 사실 하나는 이 DOHC 엔진은, 하마터면 최초의 국내 개발 엔진이 될 뻔했다. 이 엔진이 발표되기 1개월 전에 현대가 알파 엔진의 개발을 완료하고, 먼저 발표하게 되면서 현대가 최초의 DOHC라는 타이틀을 가져가게 되었다. 하지만, 에스페로 DOHC의 시판이 1991년 3월이었고, 알파 엔진의 시초인 스쿠프의 출시는 1991년 5월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차에 탑재되어 시장에 나온 건 알파엔진보다 2개월 빨랐다. 여러모로 국내 정서와 맞지 않는 긴 기어비 세팅의 미션과 DOHC 엔진의 토크 밴드가 너무도 후반에 몰려 시내 도로 여건에 맞지 않았고, 여러 가지 품질이 떨어지다 보니, 평가절하가 계속 이어져 1997년 단종 때까지 총 수출 내수 총합 52 만대에 그치게 된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LDriver 님

당시엔 최고의 기술력인

전륜구동 타입의 세단

프레스토는 1세대 엑셀(X1) 포니엑셀의 세단형 모델로 대한민국 최초의 FF 세단이다. 1985년 2월 먼저 나온 포니엑셀은 현대자동차에서 가장 성공한 모델인 포니의 차명을 계승해 붙여진 이름이다. 이때에 나온 포니엑셀과 프레스토로 현대가 북미 수출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는데, 1986년 1월에 현대자동차는 비로소 미국에 진출하게 된다. 피워 트레인은 미쯔비지제의 1.3L, 1.5L 세턴 엔진을 사용하게 되며, 현대의 두 번째 자체 생산 차량이긴 하나, 엔진과 미션 그리고 서스펜션은 미쯔비시의 것 그대로를 사용한 흑역사를 가지고 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LDriver 님

포니엑셀과 프레스토를 엑셀이라는 차명으로 판매를 시작했고, 미국 진출 첫해에만 168,000여 대를 팔았을 만큼 큰 인기를 누렸었다. 이 기록은 미국에 첫 진출한 자동차 회사 중에서도 현재까지 가장 높은 기록이다. 그러나 너무도 잦은 고장과 열악한 AS 망으로 인해 사후 처리가 미흡했었다. 


그리하여 반짝하던 인기는 식어 판매가 감소했고, 현대차에 대한 이미지도 동시에 추락했다. 1986년 9월에는 미국 수출사양인 AMX(아멕스)가 출시되며 국내 내수시장에 북미 기준에 맞췄단 안전사양을 자랑하며 지속적인 판매를 이어나갔다. 이후 포니엑셀은 미국 판매명과 같은 엑셀로 차명이 바뀌게 된다. 1989년 자가용 모델의 단종까지 생산량 총 100만 대를 돌파해낸 이력을 가지고 있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LDriver 님

지금까지 추억의 명차 5가지를 추려봤다. 다들 하나같이 기념비적인 모델들이고, 이 자동차들 말고도 명차는 너무도 많다. 아마, 본인이 생각하는 명차가 안 나와서 뭔가  조금은 아쉬워하실 독자분도 계실 것으로 생각된다.


가만 보면 흑역사의 내막을 가진 녀석도 보이고, 정말 누가 봐도 저건 명차라고 칭송받아 마땅한 차도 있다. 글쓴이의 의도는 이러한 흑역사를 가진 차들 또한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에 밑거름이 되어, 오늘날까지 발전해 왔다는 걸 말해주고 싶어서, 최초의 타이틀을 거며 쥔 차들의 비중을 높였다. 과거 안될 것만 같았던 독자모델은 이제 우스운 이야기가 되었고, 이젠 자체적인 플랫폼까지 슝슝 찍어 만들어내는 세상이 과거와 오버랩 시킬 때, 새삼 좋은 시절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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